이번에 북한이 감행한 제5차 핵실험 이후 합동참모본부의 일성은 일반인들은 처음 듣는, 생소한 영어 약자로 시작되었다. ‘KMPR’이라는 것으로 북한의 핵도발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KMPR이라는 용어가 군 내부에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언론 보도나 연구 세미나에서는 지금껏 알려지지 못한 새로운 개념의 군사전략이다. 문제는 KMPR이라는 개념은 갑자기 등장하여 생소할 뿐만 아니라,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기 매우 힘든 것이라는 점이다.
기존 북핵 대응 및 북 도발억제를 위해서 내놓은 군의 군사전략은 두 가지다. ‘KAMD’는 말 그대로 미국의 미사일 방어프로그램인 MD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해서, 주변국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 순수 북한 미사일 요격 전력을 건설하겠다는 뜻이고 ‘킬체인(Kill Chain)’은 미국이 이라크전을 두 번 거치며 열심히 연구한 첨단무기를 활용한, 적 핵심 역량을 신속히 타격하여 공격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방안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공격 단계를 줄여 적용한 것이다.
그런데 KMPR, 이 단어는 너무 생소하고 동떨어져서 많은 기자와 전문가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KMPR의 뜻을 풀어서 쓰자면 ‘Korea Massive Punishment & Retaliation’이고, 이것을 ‘한국형 대량 응징 보복 전략’으로 표현하는데, 합동참모본부에서는 이 전략이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징후가 확실할 경우 선제 타격으로 북한 지휘부를 격멸하는데, 이를 위해서 미사일과 특수부대를 이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아리송하다. 설명한 내용은 이미 킬체인에 상당부분 들어가 있는, 동어반복이기 때문이다. 킬체인은 적의 공격의도를 파악한 다음, 적이 공격을 결심하면 공격하기 전에 먼저 탐지, 식별, 추적, 공격, 피해평가를 해서 신속히 도발을 정리한다는 개념이다. 우리가 건설하는 킬체인은 당연히 북한이 사용할 핵무기나 무력도발을 막기 위해 모든 공격수단이 동원된다. 북한 핵 미사일을 실시간 감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핵미사일을 발사할 권한을 가진 지휘부를 공격하는 것은 이치에는 당연히 맞다.
그렇다면, KMPR이라는 개념 전에 우리 군은 킬체인의 공격 대상으로 북한 지휘부를 포함하지 않았던 것일까? 군 기밀이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킬체인의 모범적인 운용을 하는 미군은 지난 20년간 공습작전에서 적의 지휘부를 타격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대량 응징 보복’이라는 용어도 혼란을 가중시킨다. 대량 응징 보복이라는 용어와 가장 비슷한 단어로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이 채택한 핵전략인 ‘대량보복 전략(Massive Retaliation Strategy)’이다. 이 전략은 소련이 자유국가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침략이나 공격을 하면, 그 즉시 대량의 핵무기를 사용해서 몇 배로 되갚아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량보복 전략은 채택한지 머지않아 폐기되고, 유연반응전략이라는 것으로 대체되었는데, 소련의 핵무기 전력이 미국과 대등해지자, 더 이상 “조금만 공격해도 핵무기로 보복할 것이다”라는 협박이 통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량 보복전략과 한국형 대량 응징 보복 전략이 얼마나 유사한지는 알기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은 1950년대 미국과 달리 핵무기를 많이 가진 상대가 적게 가진 상대를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핵무기가 없는 나라가 핵무기가 있는 나라를 상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 지휘부가 핵무기를 사용할 유혹을 막기 위해서, 핵무기를 사용할 징후가 보이면 대량으로 응징하고, 핵을 실제로 쏴도 대량으로 보복하겠다는 말이 통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정답은 없겠지만, 현실적 가능성으로 보자면 아무래도 힘들 수밖에 없다. 핵무기 사용을 결심하는 북한의 최고지도부는, 한국전쟁 이래 핵무기 위협에 시달렸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 B-52가 출동하여 북한을 폭격할 준비를 하는 ‘풀 버니언 작전’을 하니 김일성이 마지못해 사과한 사건을 떠올려 보자.
북한은 그래서 핵심 지도계층과 군 최고지휘부가 있는 평양을 요새화했다. 요새화의 핵심은 지하화로, 김정일 이래로 북한의 전시 최고지휘소로 불리는 ‘철봉각’이 어느 정도의 깊이에 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한국에 있는 한미연합사의 지휘벙커 ‘탱고’ 등과 같이 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한 수준일 것으로 짐작된다.
유감스럽지만, 한국이 보유한 모든 미사일과 폭탄 중 지하 관통력이 가장 큰 ‘KEPD-350 타우러스’ 미사일과 ‘GBU-28 벙커 버스터’의 경우 6~10m의 콘크리트를 뚫을 수 있다. 핵무기가 아닌 이상 현재의 기술수준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데, 미 공군의 경우 개미를 본떠 땅을 파고드는 나노로봇을 담은 관통 폭탄 등이 연구 중이지만 실용화에는 아직 수십 년 걸릴 전망이다. 북한의 지휘부를 타격할 수 있는지 국내외 전문가들이 많은 의구심을 가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응징’이 잘 먹히기 위한 선제타격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적의 핵무기 사용 징후를 탐지하면 선제타격으로 응징하겠다는 것인데, 사실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이 핵무기를 사용하라는 명령을 도청이라도 하지 않으면 핵무기 사용 징후라는 것이 애매하다.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것? 아니면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을 실은 차량이 이동하는 것? 아니면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이 발사 준비를 하는 것? 그렇다면 핵포탄이나 비행기용 핵폭탄은 어떻게 핵 공격인지 알지?
필자의 의견은 이런 응징 보복 전략이 무용지물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며, 북한 김정은의 핵무기 보유를 방관하자는 의견은 더더욱 아니다. 문제는 군사전략에는 실행방안을 밝혀야 하고, 그 실행방안이 적군에게 공포를 주기 전에, 아군에게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냉전 시기 미국의 핵전략을 변경하는 가장 큰 이슈는 미국 자신이 자신의 전략을 실행 할 수 있는지 의심을 하는 경우였다. 국가와 국민들이 실제로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 의심하는 핵전략을, 적국이 그 전략을 인정할 수 있을까?
혹자는 적군이 나의 전략을 인정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반문할 수 있지만, 적이 내가 어떻게 싸울 것이다라는 것은 현대전에서 매우 중요하다.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려면, 적 스스로가 어떠한 군사적 행동을 할 경우 내가 어떤 식으로 대응해서 결과를 낼지 예측하고 짐작할 수 있어야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억지(the power to dissuade) 라는 개념이고, 현대의 거의 모든 최신 무기는 적이 전면전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단념시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MPR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밝히고, 그것을 충분히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 북한 핵에 대한 억지의 첫 단계이다. 가령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하는 의도를 미리 알고 선제 타격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어떤 행동’이 핵무기 사용을 의미하는지 합의하고 밝힐 필요가 있다.
가령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해서 특정 고도 이상에 진입할 경우 영공 침범 여부에 상관없이 무조건 요격을 한다고 밝히거나, 북한이 핵 도발을 할 경우 북한의 최고지휘부가 절대 도망치지 못하도록 평양의 모든 비행기와 활주로를 즉시 파괴하고, 평양에 비살상 탄두를 사용해서 북한의 최고 지도부가 지하에 갇혀 있어도 결코 도주할 수 없거나, 핵 발사 명령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게 만들 방안을 밝히는 게 순서가 아닐까.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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