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꽃(용담과, 학명 Halenia corniculata (L.) Cornaz)
청명한 초가을, 화악산 정상 능선길에서 만난 닻꽃이다. 모양이 마치 닻처럼 생겼다.
너르고 푸른 하늘에 흰 구름 흘러가고 무성하게 우거진 한여름의 산천에도 세월 흘러 여름 가고 초가을이 성큼 다가왔나 보다. 구름 흐르고 세월 흐르고 모두가 흘러가니 무더운 한여름에 불같은 열정으로 키우고 꽃 피워 충실히 맺힌 온갖 꽃과 씨앗들, 무성했던 이파리들도 이제 떠나야 할 그날이 다가온다.
연약한 초목들을 봄부터 품 안에 거두어 함께 부대껴온 산과 들, 차마 보내고 싶지 않아 잡아두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단단히 동여매 두려는 심사인가. 소슬바람 일렁이는 초가을 능선길 곳곳에 닻을 내리듯 주저리주저리 닻꽃을 피우나 보다.
태산처럼 밀려오는 풍랑에도 끄떡없이 매어 두는 항구의 닻처럼 붙잡아 두고 싶은, 함께 했던 지난날의 숱한 사연들. 구름처럼 세월처럼 흘러감이 아쉬워 곳곳에 닻을 내리나 보다.
정든 사이의 석별은 자연이나 사람이나 다를 바 없을 터이니, 어찌 말 없는 산천인들 함께 지냈던 한 해의 인연을 지워버린 채 가을이라 해서 말없이 훌쩍 흘려보내고 싶겠는가.
네 갈고리 날 세운 이쁜 닻꽃 앞에서 흐르는 세월 붙잡아 매어두고 가야 할 하산길도, 흘러가는 시간도 잊어버린 채 하늘 보고 꽃 보며 머물고 싶은 것이 어찌 나 혼자만의 마음이랴.
닻꽃은 정부가 정한 멸종위기 2급 식물이며,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위기식물 목록에 등재된 국제적 희귀식물이다. 줄기는 곧추서고 4개의 능선이 있으며, 꽃은 6∼8월에 줄기 끝과 잎겨드랑이에 취산꽃차례로 달린다. 처음에는 꽃이 연한 황록색으로 피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붉은 빛이 돈다.
꽃 아래 갈고리 모양 네 개의 꽃받침이 배와 바다와 땅을 하나로 동여매는 닻을 닮았다고 해서 닻꽃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꽃말은 ‘어부의 꽃’이다.
박대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