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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서답] 도시가 잠들지 않는 이유, ‘24/7 잠의 종말’

2016.09.28(Wed) 12:16:24

스마트폰을 처음 만져본 날을 기억한다. 조금 더 정확히는 카카오톡을 처음 써보게 된 그날. 나는 친구에게 계속해서 되물었다. 그게 정말이야? 3G망만 있으면 문자 비용이 따로 들지 않는다고? 게다가 상대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숫자 ‘1’이라니, 세상에….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스마트폰 없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 스마트폰을 꺼두면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불편해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사이 카카오톡은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처음에는 이 어플이 이렇게까지 업무적으로 사용될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24/7이다. 퇴근 시간 이후에도, 심지어 주말에도, 회사의 단체 카톡방은 쉬는 시간이 없다. 그곳은 언제나 즉각적인 답변을 요구한다. 숫자 ‘1’이 사라졌으니 못 봤다고 잡아떼기도 애매하다.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편의가 우리를 감시와 검열 사이로 몰아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 인간을 인간답게 지속해주는 마지막 보루는 잠뿐이다. 지금껏 잠듦과 깨어남의 주기적인 리듬은 자본주의도 쉽게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적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흘러가는 상황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현대 자본주의는 잠의 영역으로 침투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밤에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은 잠들지 않는다.


잠은 소진된 에너지를 재생시키고, 주기적인 삶의 균형을 유지해줌으로써 인간을 인간답게 해준다. 동시에 잠들어 있는 시간은 인간이 가장 취약한 시간이기도 하다. 산업화 이전의 국가 역할 중, 잠들어 있는 국민의 안위를 보장해 주는 역할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마음 편히 잠들 수 있는 국민만이 다음 날 더욱 강한 생산성을 만들어내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생산성은 기계가 대체한다. 돈이 돈을 벌게 되었다. 단순노동력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아졌다. 국가와 사회는 더 이상 국민의 잠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24/7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에 맞서 버티기를 종용한다. 국민이 잠들지 않을 때 국가는 돈을 번다. 그러니 모두가 깨어 있으라 말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TV나 통신 등을 위시한 기술의 발전은 점점 더 그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우리가 완전히 적응하기 전에 또다시 새로운 기술이 나타난다. ‘권력과 통제’라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관계는 그대로 둔 채 계속해서 새것만을 촉진하는 형태이다. 짧은 주기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은 사회의 이름으로 도태시킨다. 부적응에 대한 불안함은 만성적인 것이 되어간다. 자본주의는 기술의 발전을 통해 대다수의 피지배층을 비슷하고 밋밋하게 만들어 간다. 혁신의 결과물이다.

 

이 책은 우리를 옥죄는 자본주의의 압력에 맞서기 위해 먼저 개인의 잠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 <24/7 잠의 종말>은 자본주의와 기술의 발달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다. 책에서는 ‘테크노 자본주의’라는 용어로 서술한다. 200페이지 정도로 분량 자체는 그리 많지 않지만 문장들은 깊고 무겁다. SF 소설들에서 그려오던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성큼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책의 말미에 이르러 저자와 역자는 입을 모아 말한다. 우리는 잠을 통해 깨어나야 한다고, 우리를 옥죄여 오는 자본주의의 압력에 항거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의 잠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이다.

 

좋은 말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다 말고 졸고 있을 당신에게도, 아니면 사무실에서 꾸벅 졸다 민망해질 나에게도. 그렇다. 명분이 생겼다. 목격자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하자.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는 단순히 졸고 있던 게 아닙니다. 자본주의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온 인류를 위해서요.” 라고 말이다. 힘겨운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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