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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노포열전] 맛배기, 깍국, 스무공… 곰탕의 전통, 하동관

수수께끼 같은 암호에 담긴 무형의 멋

2016.09.27(Tue) 13:22:47

오래된 우리 식당을 손으로 꼽으라면, 서울사람들은 반드시 이 집을 거론한다. 바로 하동관이다. 시내 수하동의 지붕 낮은 한옥집의 기억이 선명한, 유명한 곰탕집이다. 

 

서울의 명물 음식 중에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건 몇 안 된다. 설렁탕, 해장국, 곰탕이 대표적이다. 이 세 음식은 형제 같다. 모두 소고기와 부산물로 만든다. 서울은 오랫동안 평양과 함께 소를 가장 많이 잡는 도시였다. 물산과 사람, 권력이 모인 곳이니 가장 선호하는 소 도살도 많았다. 

 

하동관은 1939년 처음 문을 연 것으로 되어 있다. 서울의 음식점은 대개 청계천변을 중심으로 몰려 있었다. 이곳이 돈이 돌고 사람도 모이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창업자는 김용택 선생이었고, 그의 안주인 류창희 여사의 솜씨로 시작되었다. 

 

이 부부가 친분이 있던 장낙항 선생에게 가게를 넘긴 것이 1963년의 일이다. 장 선생의 안주인 홍창록 여사가 그 후 쭉 하동관을 이끌다가 1968년에 며느리 김희영 여사에게 국솥을 넘겼다. 김 여사는 이미 79세, 현재 가게를 총괄하고 있으며 외동딸 장승연 씨에게 사실상 하동관 곰탕의 열쇠를 넘긴 상태다. 하동관은 수하동 시대를 이미 마감하고 명동으로 옮겨서 성업 중이다. 

 

하동관은 우리 음식사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대물림, 한두 가지 메뉴에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 우리 음식의 특징인 탕반(湯飯)이라는 점도 그렇다. 그중에 주목해야 할 것은 메뉴는 하나이되, 먹는 방법은 십수 가지라는 점이다. 곰탕은 특과 보통이 있을 뿐이지만, 손님들은 각기 메뉴를 자작(?)해서 먹는다. 맛배기, 스무공, 넌둥만둥, 통닭, 깍국, 냉수… 끝도 없다. 하동관 단골들은 자리에 앉아서 제각기 원하는 주문을 넣는다. 그래서 홀 직원도 어지간히 숙련되어 있지 않으면 주문을 받을 수 없다. 

 

하동관의 주문서에는 '20공' '25공' '통닭' 등의 암호 같은 메뉴가 적혀 있다.

 

자, 그 수수께끼 같은 암호를 풀어보자. 

 

‘맛배기’는 밥을 많이 빼고 고기를 많이 넣은 것을 이른다. ‘뜨겁게’도 있다. 하동관 곰탕은 전통식대로 온도 70도 정도의 탕을 유기에 담아낸다. 펄펄 끓여 내는 방식은 90년대 이후의 유행이고, 여기서는 여전히 전통을 고수한다. 그래서 특별히 뜨거운 국물을 원하면 따로 기호를 표시해야 한다. 

 

‘스무공’은 2만 원을 의미한다. 예전 가격은 물론 열두공, 열다섯공 그랬다. 값이 오르면서 호칭도 변한다. 스무공에 스물다섯공이 공식적인 주문이다. 물론 서른공도 된다. 내포(포를 뜬 소 내장)와 고기를 듬뿍 얹어준다. 특히 스물다섯공부터는 소량만 요리하는 곱창을 얹어달라고 주문할 수 있다. 그 이하의 탕에는 주문이 불가하다. 이런 복잡한 방식은 거의 고차원 함수를 푸는 것 같다. ​​

 

4대(현 혈통으로는 3대)인 장승연 씨의 말이다. 

“저희가 만든 (특별 주문) 이름은 하나도 없어요. 손님이 스스로 만들고 하동관이 그걸 존중한 것이지요.”

하동관이 어떤 집인지 정확히 보여주는 상징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하동관 곰탕은 좋은 소고기에서 온다. 한결같이 특정 정육점에서만 고기를 받는다. 바로 국내 최고(最古) 정육점인 팔판동(국회의장 공관 앞 동네)에 있는 팔판정육점이다. 이곳에서 제일 좋은 한우 암소 고기와 내장, 뼈를 공급한다. 한우값이 아무리 올라도 절대 변함이 없다. 필자 생각엔 하동관이 한우를 포기하는 날은 우리 전통 요식업의 종말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안 남지요,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의 뜻이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스무공'을 주문하면 포를 뜬 내장을 듬뿍 얹어준다.

 

하동관에서 곰탕을 맛있게 먹는 법이 있다. 바로 ‘깍국’이다. 깍두기 국물의 준말인데, 곰탕의 맛을 돋운다. 이집 깍두기는 전형적인 서울 김치라고도 한다. 새우젓과 좋은 소금, 고춧가루, 설탕만 쓰는 방식이다. 탕을 어느 정도 먹고 깍국을 부어 먹으면 기름진 고기와 내장 맛이 씻겨가면서 개운해진다. 

 

그럼 ‘통닭’은 뭘까. 바로 계란이다. 단백질 부복의 시대에서 온 유물(?) 같은 주문이다. 값은 500원. 물론 그냥 날계란이다. ‘​냉수’​가 아주 특이하다. 이 집은 공식적으로 술을 팔지 않는다. 그러나 단골들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법. 예전에 500원을 슬쩍 직원 손에 쥐어주고 냉수 한 잔 주소, 하면 소주를 컵에 따라 한 잔 내줬다는 걸 기억하는 노인 단골이 많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공식화되지 않은 술 파는 법이다. 참 대단한 식당이요, 손님이다. 요새는 물론 값이 올랐다. 

 

참, ‘넌둥만둥’도 소개해야겠다. 해장으로 곰탕을 먹을 때, 아무래도 밥이 잘 안 먹힌다. 그러면 넌둥만둥, 하고 외치면 밥을 조금만 넣어준다. 국물이 당기는 해장용으로 제격이다. 이런 각별한 주문법은 아마도 민속박물관에 가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유형의 유물들 말고, 이런 무형의 것도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은가. 

 

“여기 스무공 하나! 통닭에 냉수 한 잔이요!”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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