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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비즈니스맨의 첫인상, 명함

종이재질, 글씨체 등 미세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멋

2016.09.26(Mon) 11:06:39

남자의 첫인상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명함이다. 작은 종잇조각에 불과하지만 인상을 결정하는 데 꽤 큰 영향을 준다. 명함은 비즈니스 카드다. 비즈니스할 때 자신을 드러내는 이름표이자 자신의 가치이자 지위를 드러내는 도구다. 

 

종이를 발명한 중국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명함과 같은 이름을 적은 쪽지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본격적인 명함의 역사는 17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는 부유하고 지위가 있는 사람들만 사용했다. 왕이나 귀족들부터 사용했으리라. 물론 용도는 비즈니스 용도로 시작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명함이 중산층까지 확산되기 시작되었다. 

 

시대별로 명함의 크기나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어도 모두가 네모난 흰 종이를 사용한 것이 기본이었다. 예전에 어떤 외국의 부자가 금으로 명함을 만들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런 명함을 건내는 걸 뇌물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마 받게 되면 절대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하려나, 아니면 돈 아쉬울 때 팔아먹으려나. 세계적인 명사나 대통령들의 명함도 종종 인터넷에서 볼 수 있었는데, 한결같이 우아함과 세련됨에 꽤나 신경을 썼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심플했다. 역시 최고의 우아함은 단순함에서 나오기도 한다.

 

2000년에 나온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를 보면 인수합병 회사의 부사장 네 명이서 명함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는 장면이 나온다. 같은 회사, 같은 직급의 동료지만 명함에 어떤 안목을 넣었냐는 사소해 보이는 차이에 아주 민감하게 배틀을 한 셈이다.

주인공인 크리스천 베일이 명함을 새로 뽑았다며 자랑의 포문을 연다. 옅은 베이지색에 실리안 레일이란 서체를 썼다고 으스대며 자신의 안목과 명함의 품격을 과시한다. 그러자 동료가 자신의 명함을 꺼내며 로말리안 서체에 달걀껍질을 갈아넣는 방식으로 만들었다며 당당하게 응수한다. 이번엔 그 옆의 동료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명함을 꺼내든다. 그 명함은 흰색에 페일 님버스라는 양각 문자를 넣었다고 한다. 

 

마침내 마지막 동료의 명함까지 꺼내본다. 그때 주인공 크리스천 베일은 혼잣말로 상대의 명함이 정교한 금색에 세련된 두께와 투명무늬까지 들어갔다며 감탄하고 심지어 땀까지 흘린다. 그 명함이 끝판왕이었던 셈이다.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명함 배틀 장면.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명함 배틀 장면.


사실 이렇게까지 명함에 민감해하는 이들이 있을까? 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 첫인상과 느낌만큼은 기억한다. 원래 아주 미세한 차이가 매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어떤 서체이고 어떤 종이인지는 몰라도 좀 더 멋지고 세련되다는 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난 명함을 오프셋(Offset) 인쇄기를 써서 만든다. 인쇄품질을 높인 일명 고급 명함을 취급하는 곳이 여럿 있는데, 같은 명함이라도 오프셋 인쇄기로 찍어낸 건 좀 다르다. 오프셋 인쇄는 컬러를 만들기 위해서 4가지 색을 조합하여 사용하는데, 이건 종이 한 장에 4가지의 컬러를 4번 인쇄하면서 색을 덧입혀서 구현하는 식이다. 가장 큰 장점은 색상 구현의 정확성이 높고, 글자가 훨씬 더 정교하게 구현된다는 점이다. 잡지나 카탈로그 등 각종 상업 인쇄물은 오프셋으로 많이 찍는다. 물론 시간이 좀 더 걸리고 좀더 비싸다. 

 

반면 요즘은 디지털 인쇄로 찍는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컬러 프린트 같은 거다. 한 번에 프린트되어서 나오면 그게 끝이다. 오프셋과 프린트는 작은 듯 큰 차이가 난다. 그래서 회사에서 만들어주는 명함 대신 자기가 직접 충무로의 고급 명함 인쇄하는 곳에서 명함을 따로 만드는 이들도 꽤 있다. 명함에서도 자기만의 ‘클라스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세련된 명함을 가지느냐와 함께, 어떤 명함지갑에서 꺼내느냐도 중요하다. 명품브랜드의 명함지갑을 쓰는 경우도 많다. 안목이 모자라면 명품 브랜드의 안목에 편승하자는 식이다. 가장 무난하기도 하다. 중요한 건 가격이 아니라 자신만의 안목을 담아내는 거다. 사소한 듯 보여도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안목이자, 그런 것에 쓰는 돈은 작지만 꽤나 매력적인 소비다. 

 

명함은 그냥 종잇조각이 아니라 당신의 첫인상이자 브랜드를 담고 있다. 명함케이스는 바로 당신의 첫인상을 꺼내는 중요한 도구인 셈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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