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영장 발부를 자신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에 대해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이 청구한 사전 구속영장을 지난 24일 기각한 것. 영장실질 심사에 앞서 “마음이 아프다”고 심경을 밝혔던 강만수 전 행장은 법정에서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들에 대해 치열하게 반박했다.
그리고 법원은 “주요 범죄혐의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강 전 행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피곤한 표정의 강 전 행장은 “법원이 잘 소명해준 것 같아서 다행이다. 기각 결정에 감사드린다”고 밝힌 뒤 집으로 돌아가는 차량에 올라탔다.
법원은 통상 구속영장 발부나 기각 여부를 결정하면서, 한두 문장의 ‘설명’을 첨언하는데 강 전 행장의 경우처럼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는 것은 검찰이 주장하는 범죄 혐의로 보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강 전 행장의 혐의를 먼저 정리해보자. 강 전 행장은 지난 2008년부터, 고교 동창인 임우근 회장이 경영하는 한성기업으로부터 해외여행비와 골프 비용, 사무실 운영비 등 억대의 금품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특히 산업은행이 지난 2011년 한성기업과 관계사에 240억 원의 대출을 해 준 과정에, 강 전 행장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억대의 금품이 그 대가로 보고 있는데, 강 전 행장이 기자 출신 지인이 운영하는 바이오 관련 업체에 산업은행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이 44억 원의 돈을 투자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도 적용했다.
검찰은 “대가로 억대 금품을 받았고, 대우조선해양이 강 전 행장 사임 직후 투자금을 회수한 만큼 강 전 행장의 부당한 압력임이 드러났다”며 구속영장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지만, 강 전 행장은 법원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장관 때 청와대 회의에서 국정 과제로 정해졌던 것이었고, 2012년에는 에너지 가격이 배럴당 150달러까지 올라가는 시대였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 투자를 결정했다”는 것.
또 임우근 회장에게 받은 여행비 등에 대해서는 “대가성으로 받은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는데,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강 전 행장을 둘러싼 종친 건설사 일감 몰아주기 혐의 등으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검찰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대우조선해양 남상태, 고재호 전 사장 등을 구속하며 1라운드를 마무리한 검찰이 2라운드 타깃으로 설정했던 친MB계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 구속에 실패할 경우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 수사 등도 탄력을 잃을 수 있다.
때문에 검찰은 영장을 재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반부패수사단 관계자는 “영장 기각을 수긍하기 어렵다, 강 전 행장이 대우조선을 이렇게 만든 책임이 있는 만큼 재청구 여부를 포함해 향후 계획을 재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본 혐의를 볼 때 검찰의 강만수 전 행장 수사는 ‘맹탕’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검찰이 주장하는 범죄 혐의에서 직접적으로 현금을 챙긴 부분이 없기 때문. 자연스레 이번 영장은 청구될 때부터 ‘반반의 확률’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나마 죄질이 안 좋은 여행비 등 억대 금품도, 임우근 회장과 강 전 행장이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기존 관계가 입증된 만큼, 여행비 등 금품이 오간 시점과 특혜 대출 시점 사이 관계나 진술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으면(검찰이 하지 못하면) 재판에서도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강 전 행장이 70세가 넘은 고령이고, 또 도주의 우려가 없는 점도 강 전 행장에 대한 영장이 재청구되더라도 또 기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영장을 기각했다는 것은 범죄 혐의가 있어도 나중에 구속할 정도의 사건이 아니라는 의미도 있다”며 “반부패수사단이 무리하게 언론을 통해 강만수 죽이기를 시도했던 게 다 읽힐 정도였으니, 영장 청구는 다소 지나치지 않나 싶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놨다.
법원의 다른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받은 혜택과 특혜로 볼 수 있는 것을 억지로 연결한 느낌이 강해 혐의 하나하나마다 재판에서 치열하게 다툴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 역시 “검사마다 수사 스타일이 많이 다른데 반부패수사단은 어떻게든 잡아넣고 난 뒤 자백 형식으로 다 진술하게 만드는 팀”이라며 “영장이 기각됐으니 수사팀 내에서도 고민이 많겠지만, 법원의 영장 기각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대검찰청도 보다 신중한 태도를 견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윤하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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