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스마트폰 시장 분위기가 묘하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은 발표와 함께 기대 이상의 큰 인기를 누렸지만 배터리 사고로 인해 사실상 정상적인 판매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애플의 ‘아이폰7’은 여느 때처럼 9월 초 발표됐지만 국내 출시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 있다. 사실상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는 두 회사의 공백기인 셈이다.
이처럼 시장에 공백이 생기는 일은 흔치 않다. 국내에 스마트폰을 만들거나 판매하는 기업이 많지 않은 탓도 있다. 누가 이 기회를 끌어안을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 LG전자의 V20. 사진=LG전자 제공 |
여기에 떠오르는 첫 번째 대안은 LG전자가 있다. 마침 LG전자는 상반기에 야심작 ‘G5’로 자존심을 구겼기에 작정하고 후속작을 준비했다. 바로 ‘V20’이다. 고성능 프로세서와 오디오,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제품이다. 과연 LG전자가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시장에 또 다른 의외의 복병이 등장한다. 바로 블랙베리다. 블랙베리는 한때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나가던 스마트폰 회사다. 하지만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이 나오면서 스마트폰의 패러다임이 달라졌다. 일과 인터넷 검색 외에 게임과 영상 등을 즐기는 용도의 스마트폰 시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반면 블랙베리는 ‘업무용’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결국 2013년 들어 블랙베리는 신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국내 시장에서도 한 발 물러섰다. 철수까지는 아니었지만 꼬박 3년 넘게 신제품은 물론이고 마케팅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올 가을 드디어 신제품을 국내에 정식 출시했다. 세계 시장엔 지난해 내놓은 ‘블랙베리 프리브’다.
일단 블랙베리 프리브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다. 블랙베리가 만들었지만 기본 운영체제는 자체 OS 대신 우리가 흔히 쓰는 안드로이드를 그대로 쓴다. 심지어 화면을 블랙베리처럼 꾸미지도 않았다. 대신 브랜드를 상징하는 하드웨어 키보드와 보안시스템,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요소를 안드로이드에 녹여냈다.
기존 블랙베리 이용자들은 익숙한 습관 그대로 안드로이드 응용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고, 블랙베리에 호기심을 갖던 이들도 익숙한 안드로이드에 블랙베리만의 특징을 접해볼 수 있게 됐다. 낯설지만 스마트폰 이용자라면 한 번쯤 써 보고 싶던 블랙베리이기도 하다.
다만 제품이 지난해 발표됐던 것이기에 출시 시기가 애매하다는 약점이 있는데, 근래 스마트폰의 프로세서나 디스플레이가 급격하게 변화하진 않기 때문에 성능에 불편함은 없다. 디스플레이도 갤럭시에 들어가는 AM OLED에 QHD 해상도를 내는 고성능 제품이다.
▲ 블랙베리의 블랙베리 프리브. 사진=블랙베리 제공 |
다시 LG전자의 V20으로 돌아가 보자. LG전자가 스마트폰의 고급화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바로 카메라와 오디오다. 돌아보면 G시리즈나 G프로도 카메라의 센서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손에 꼽을 만큼 좋은 조건들을 넣어왔다. 아예 카메라를 두 개 달아 필요에 따라 망원으로, 혹은 광각으로 골라서 찍는 아이디어를 대중화한 것도 LG전자다.
오디오도 마찬가지다. CD로 시작된 16비트 음원이 더 풍부한 소리를 담는 24비트로 변화하고 있는데, LG전자는 이를 휴대폰에 가장 빨리 집어넣은 회사 중 하나다. 별도의 오디오 칩을 넣어야 하고, 이 때문에 설계가 복잡해지는 데 비해 아직 24비트 음원은 대중화되지도 않았음에도 LG전자는 계속해서 이를 키워왔다. 그리고 G5에 접어들어 외부 모듈을 이용해 32비트 음원도 재생할 수 있는 ‘오디오 괴물’이 태어났다.
돌아보면 LG전자가 G5에서 모듈로 강조한 부분도 사진과 오디오 두 가지였다. V20은 이 기술들을 그대로 다 끌어안았다. 특히 모듈로 어느 정도 차별화를 두었던 32비트 오디오를 기기 안에 품었다. 듀얼 카메라도 들어 있다. G시리즈가 LG전자의 주력 스마트폰이긴 하지만 V20은 현재까지 LG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담은 또 하나의 주력 제품이 됐다.
프리브와 V20, 두 제품 모두 기기 자체로는 부족한 부분이 없다. 스마트폰 자체가 이미 상향 평준화됐고, 둘 다 각 기업이 공들여서 만든 주력 제품이기 때문이다. 희비는 가격과 마케팅에서 갈린다. 프리브는 블랙베리 브랜드에 대한 걱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출시가가 59만 8000원이다. 중저가 스마트폰 가격에 포지셔닝했다. 요금의 20%를 깎아주는 선택약정 제도를 이용하면 부담이 꽤 줄어든다. 가격으로 몇 가지 사소한 약점이 덮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블랙베리 자체가 통신사를 통한 약정 판매가 없다 보니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유통구조를 이용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서비스센터에 대한 불안도 남아 있다. 무엇보다 블랙베리를 기다려온 이용자들에게 공백이 너무 길었다. 프리브 역시 마니아들은 이미 해외 직구 등을 통해서 구매한 사례가 많다.
LG전자는 고심 끝에 출고가를 89만 9800원으로 정했다. 사실 LG전자는 제품을 발표하고 나서도 한동안 가격을 발표하지 않았다. 시장은 그 고민을 공격적인 가격이 나올 것으로 해석했는데, 89만 9800원은 그 기대를 만족시키기에 다소 애매한 숫자라는 반응이다. LG전자로서는 프리미엄 제품의 이미지를 갖고 싶을 뿐 아니라 상반기의 실적부진을 해소해야 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값을 내리기도 부담스러웠을지 모르겠다.
가장 지적받는 것은 마케팅이다. LG전자는 V20 오디오를 강조했다. 마침 애플이 아이폰7에서 이어폰 단자를 떼어내면서 V20의 오디오가 주목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LG전자는 5000원을 더 내면 블루투스 헤드셋과 블루투스 스피커 등 20만 원 상당의 제품을 끼워주는 프로모션을 준비했다. V20의 특징인 고음질 오디오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블루투스보다 유선의 고성능 헤드폰이 더 효과적이다. 그래서 이 같은 프로모션이 오히려 무선의 시대가 온다는 애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이폰7이 나올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한 달 이상 걸릴 수 있다. 그 사이에 어떤 스마트폰이 이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한 달은 결코 긴 기간이 아니다.
최호섭 IT칼럼니스트
bizhk@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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