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장님께서 관심 있게 챙기는 기업이십니다.”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이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의 비서실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받아낸 진술이다. 검찰은 강 전 행장의 친구인 임우근 회장이 경영하는 한성기업의 모기업 극동수산이, 산업은행에 70억 원 규모의 대출을 신청하는 과정에 강만수 전 은행장이 개입해 압력을 줬다고 보고 있다.
▲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고등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
검찰은 강 전 행장의 ‘관심’이 개입이라고 판단한다. 2011년 극동수산 대출 관련, 비서실장에게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는데, 이에 강 전 행장의 비서실장은 대출부서에 “행장님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기업이니 확인해 달라”고 요구한 사실을 확인한 것. 행장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대출부서에서 극동수산의 신용등급을 조작해 특혜 대출을 해줬다고 검찰은 주장한다.
사실 산업은행 내에서는 ‘빈번한 일’이라고 한다. 대출부서에 근무한 적이 있는 산업은행 관계자는 “서류에 절대 기록을 남기지 않고, 대신 구두로만 메시지가 전달돼 내려온다”며 “행장뿐 아니라, 부행장 등의 이름을 누군가 대신 전하며 ‘관심 있어 한다’고 얘기하면 알아서 챙겨주는 게 관례다”고 설명했다.
대출을 도와준 강 전 행장은 한성기업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과거 한성기업 경영 고문으로 있으면서 사무실 운영비, 해외 출장비 등 금품을 지원받은 것. 골프 접대를 받은 것까지 합치면 1억 원가량 되는데, 한성기업은 강만수 전 행장이 산업은행을 이끄는 동안 시중 금리보다 낮게 240억 원을 대출받았다.
검찰은 강 전 행장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와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직접 주머니로 ‘현금’을 받은 적은 없지만, 대접을 받은 것 자체가 ‘포괄적 뇌물’ 성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한성기업이 강 전 행장을 고문으로 위촉한 것은 돈을 지급하기 위한 핑계를 만든 것에 불과하다“며 “당시 MB의 금융 ‘4대천왕’으로 막강한 힘을 과시했던 강 전 행장에게 꾸준히 금품을 대주고 대관 로비 창구 역할을 맡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이 밝힌 강 전 행장의 또 다른 혐의는 산은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을 통해 기자 출신 지인 김 아무개 씨의 바이오 업체에 50억 원이 넘는 지원금을 투자하게 한 것(제3자 뇌물수수 혐의). 검찰은 강 전 행장이 퇴임하자마자, 투자가 끊긴 점을 감안할 대 강 전 행장의 부당한 지시에 대우조선해양이 어쩔 수 없이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강 전 행장은 혐의를 강력 부인하는 상황. 강 전 행장은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법조계에서도 검찰이 적용한 혐의들이 법원에서 다툼의 소지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형사 재판에 밝은 한 변호사는 “강 전 행장의 혐의를 언론에 나온 것만 놓고 봤을 때, 직접 주머니로 받은 금품이 없고 고문 등의 직함이 있었기 때문에 뇌물이 아닌 정당한 비용 지급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변호사 역시 “강 전 행장의 지시로 투자를 결정했다고 하지만, 투자의 적격성은 사실 판단이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라며 “최근 법원이 기업의 투자 결정과 배임의 상관관계를 놓고 굉장히 높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느냐, 당시 시점에서 해당 바이오기업의 투자 가치를 어떻게 판단했는지 강 전 행장이 잘 설명할 경우 이 부분도 무죄 소지가 있다”고 귀띔했다.
검찰은 일단 강 전 행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강 전 행장의 신병을 확보해 강 전 행장으로부터 자백을 받아내려는 것이라는 게 검찰 내 중론. 하지만 발부 가능성을 놓고는 의견이 나뉜다. 검찰은 강 전 행장이 ‘위치’를 활용한 명백한 불법을 저질렀지만, 일각에서는 “도주의 우려가 없고 나이가 적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할 때 영장 발부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강 전 행장의 구속여부는 내일(23일) 저녁 늦게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남윤하 저널리스트
[핫클릭]
·
대우조선 비리 혐의 강만수, 검찰 구속영장 청구 방침
·
MB맨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 검찰 수사선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