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Art Market-Artist 9
낯선 도시 풍경으로 그린 현대인의 자화상-이혜령
예술가에게 지사적 삶을 요구하는 시대가 있다. 윤동주가 살아간 시절이 그랬다. 타고난 서정성 탓에 행동하는 지식인은 될 수 없었던 그는 시대에 대한 미안함을 참회의 고백으로 남겼다. 하늘, 별, 바람 그리고 시로만 시대를 견뎌야 하는 자신이 밉다고. 그게 자신의 모습이라고. 예술가의 진솔한 모습이다.
고난의 농도나 시대의 성분이 달라져도 예술가의 고민은 같다. 예술가는 시대 현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특히 30여 년 전 이 땅의 예술가들은 현실과 자신의 예술 사이에서 윤동주 같은 고민을 해야 했다. 시대가 예술가들에게 투사적 삶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예술가들도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시대적 목표가 뚜렷하지 않기에 예술가에게 실존의 모습을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The street(2013), 130×162cm, 캔버스에 오일. |
이혜령의 회화가 얘기하고 있는 것도 예술가가 시대와 현실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하는가 하는 문제다. 뉴욕 유학 시절의 경험을 바탕 삼은 회화에서 그는 자신의 실존을 건물 쇼윈도에 비친 허상에서 발견한다. 낯선 도시의 거리, 거대한 건물에 비친 그림자 이미지에서 뿌리 없이 유랑하는 우리들의 실존을 봤던 셈이다. 자연의 순리를 거슬러 건설한 화려한 현대 문명 속에서 예술가는 건물 유리에 비친 우울한 실루엣처럼 초라한 모습일 뿐이라고. 그게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
현대인으로 불리는 도시인. 그들은 화려하게 보이는 물질 속에서 삶을 키워왔고 정서를 다듬었다. 바로 이혜령 작가가 포함된 세대의 삶이다. 이 세대 정서에는 일정한 거리가 보인다. 직접 관여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소위 말하면 쿨한 정서다.
도시인은 비나 눈, 바람을 맞지 않는다. 거대한 사무실 창문이나 아파트 베란다쯤에서 바라보는 것을 즐긴다. 갓 내린 원두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2층 정도 되는 카페의 넓은 창으로 바라본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 눈 비 바람을 손수 맞지는 않지만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센티멘털한 정서를 도시인은 충분히 즐긴다.
Reflection I(2008), 122×87.5cm, 캔버스에 오일. |
매스미디어의 다양한 시각 이미지를 통해서도 도시인은 정서를 단련한다. 아프리카의 거친 정글, 히말라야의 원시적 풍광, 심해의 공포까지도 느낀다. 매스미디어가 만들어준 이미지 속에서. 가공된 정서다.
이런 정서를 공유하는 작가는 건물 쇼윈도에 투영된 이미지와 실물 사이의 거리로 현대인의 실존을 표현한다. 진짜와 가짜 사이의 거리만큼 우리의 삶은 불완전하다고. 가짜의 삶을 진짜로 착각하고 사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라고. 이를 표현하는 것이 이 시대 자신과 같은 예술가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bizhk@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