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우승자 및 준우승자를 일렬로 쭉 세워놓고, 그 밑에 경쟁자마저 쭉 세워놓으면 대충 본좌-준본좌-4강권-8강권 등등이 보인다. 염보성처럼 실력은 좋은데 유난히 개인리그 성적은 그저 그런 선수가 있다. 공무원모드 김택용처럼 프로리그는 좋은데, 개인리그가 그저 그런 선수도 보인다. 어쨌거나 본좌들의 집권 시기마다 강력한 대항마가 꼭 있기 마련이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선수는 바로 ‘상욱곰’ 전상욱. 어린 곰 같은 순진무구한 외모와 달리 키가 무려 180에 육박했다. 생각해보면 스1 선수들이 유난히 키가 컸다.
전상욱은 지금은 잊힌 한국 RTS <킹덤언더파이어>의 초대 대회 우승자로서, 스타리그 최초로 2개 종목 우승을 기대받는, 신기한 선수였다. 어투도 신기했다. 말을 못하고 유난히 짧았는데, 특히 “없어요”에서 ‘요’ 자를 작게 말하는 바람에 전용준 캐스터에게 “없어”라고 들리게끔 말해버렸다.
여튼, 플레이스타일을 말하자면 지오테란+T1테란의 하이브리드형이다. T1테란처럼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진 못하나 유연했으며, 지오테란의 단단해서 최적화된 모습을 갖췄다. 좋게 말하면 하이브리드, 나쁘게 말하면 이도 저도 아닌 잡탕이다. 과장 좀 보태서 임요환보다 물량이 좋았고, 최연성보다 섬세했으며, 서지훈보다 유연했다.
테란임에도 불구하고, 토스전 괴물이었으며 저그전은 약간 막장본능이 보였다. 네오포르테에서 당시 촉망받는 유망주 송병구를 녹이던 토스전이 생각난다. 느릿느릿하지만 날카로운 벌처견제, 견제가 끝나면 묵직한 테란병력의 진군. ‘수비형 테란’ 혹은 ‘수면제 테란’으로 불렸으나 후의 멀티 - 수비 - 진출 방식의 ‘양산형 테란’들과는 격이 달랐다. 토스전을 보면 “진짜 어떻게 저렇게 하지?”란 생각이 들 정도로 괴물이었다. 메카닉 운영에 특화되어 바이오닉 위주인 저그전 막장 본능이 있었으나 저그 때려잡는 귀신이던 임요환과 당시 본좌 최연성의 도움을 받아 저그전마저 성장했다. 그 유명한 ‘가까우면 벙커링, 멀면 더블컴’ 전략으로 저그를 찢었다. 벙커링 도사 임요환과 더블컴 도사 최연성의 합작품이었다.
실제로 전성기 경기를 보면, 더블컴 도사란 느낌이 팍팍 들었다. 최연성을 제외하고 더블컴류를 가장 잘 구사했다. 최연성이 베르세르크 가츠처럼 드래곤슬레이어 들고 상대를 무참하게 찍어 누른다면, 전상욱은 캡틴 아메리카처럼 방패로 다 막으면서 돌격하는 느낌이다.
성적은 좋았다. 프로리그에선 믿고 쓰는 1승 카드였으며 개인리그에서도 4강 후보로 이름이 자주 오르락내리락했다.
토스전 스페셜리스트, 신형 엔진 등 여러 수식어가 있었으나 유독 개인리그와는 연이 없었다. 8강, 4강 등등. 임요환-이윤열-최연성-박성준·박태민·이윤열 3신전 이후 기를 펴보나 했는데, 마재윤의 독재가 시작됐다.
독재 초중기까지만 해도 팬들 사이에선 마재윤의 유일한 대항마로 불렸다. 실제로 프링글스 MSL 4강에선 2:3으로 안타깝게 패배했으며 온게임넷 신한은행 16강에서도 탈락했다.
피지컬도 좋고, 이에 기반한 기본기도 좋은 선수라 오히려 박태민 등과 같은 준본좌에 비해 롱런했다. 하지만 유난히 다전제에 약한 선수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 5전제 판짜기에 대한 코칭스태프의 조언 부족과 선수의 실력 부족이 겹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새가슴 느낌이 좀 난다.
T1테란 라인의 성골은 아니나, T1이 오버 트리플 크라운을 하며 ‘무적함대’ 소리를 들을 때 박용욱과 함께 왼쪽·오른쪽에서 성실하게 노를 저었다.
구현모 필리즘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