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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나들이] 이름마저 빼앗긴 가슴 아픈 우리꽃, 금강초롱꽃

2016.09.26(Mon) 15:09:46

   
 
   
 

금강초롱꽃(초롱꽃과, 학명 Hanabusaya asiatica Nakai)

 

한창 피어나던 여름꽃들이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만 계절은 바뀌어 산 골골이 소슬바람 언뜻언뜻 불어오고 구절초, 쑥부쟁이, 각시취 등 가을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새털구름 곱게 흐르는 하늘은 자꾸 높아만 가는 초가을, 한반도 중심에 경기에서 제일 높은 화악산 능선길에서 당찬 품새에 신비감마저 서리는 금강초롱꽃을 만났다.

 

청잣빛 하늘만큼 곱고 마력처럼 은은한 연보랏빛 통꽃, 어둑한 숲 속에서 요술을 펼치듯 시선을 당기면서도 당당한 풍채에 단아한 자태, 오묘한 색채에서 범접할 수 없는 기품과 품격 높은 위엄이 배어나는 꽃. 이 세상에 우리나라밖에 어디에도 없는 일당백의 당찬 꽃이다.

이 당차고 신비롭기까지 한 우리 특산식물 금강초롱꽃에 화관 깊숙이 숨겨진 꽃술만큼이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아픈 흔적이 깊이 남아 있다.

 

금강초롱꽃은 이 세상에 오직 1속 1종밖에 없는 한국 특산식물이다. 금강산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청사초롱 같은 꽃이라서 금강초롱이라는 이름을 얻은 전 세계의 자랑거리인 우리 들꽃이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통용하는 금강초롱꽃의 학명 즉, Hanabusaya asiatica Nakai에 가슴 아픈 슬픈 역사가 숨어 있다.

 

‘국제식물명명규약’에 따르면 학명 표기는 속명(屬名)+종소명(種小名)+명명자(命名者)가 원칙이다. 규약대로라면 일본인 식물학자 Nakai가 금강초롱꽃의 명명자인 만큼 금강초롱꽃은 ‘Campanula koreana Nakai’라고 해야 원칙에 맞는 학명이다. 그런데 실제는 엉뚱하게도 ‘Hanabusaya asiatica Nakai’로 명명되었다. 여기서 속명(屬名)에 해당하는 ‘하나부사(Hanabusaya)’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가?

 

‘하나부사’는 임오군란 당시 별기군을 총괄 지휘한 일본공사관 초대 공사인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를 가리킨다. 그는 임오군란이 발발하자 난을 피해 본국으로 도망쳤다가 군란이 진정되자 전권공사의 자격으로 되돌아와 조선과 제물포조약을 강제체결했다(1882). 군란 주모자 처벌, 피해 배상, 일본 병력 주둔을 내용으로 하는 조약체결로 일제 강점의 발판을 마련하고 후일 조선총독부로 이어지는 데 공을 세운 일본 외교관이다.

 

일본 식물분류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이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한 금강초롱꽃을 발견하고 학명에 일본의 초대 공사 이름을 집어넣은 것은 자신의 조선반도 식물조사, 채집 활동에 군 병력까지 동원하며 적극 도와준 조선총독부에 보은하는 헌정(獻呈)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우리 식물사에서 경술국치와 다름없는 치욕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를 담아 속명(屬名)에 하나부사(Hanabusaya)를 쓰다 보니 종소명에 ‘대한민국’이라는 koreana가 어색할 수밖에 없어 ‘아시아 지역의 식물’이라는 asiatica라고 표기함에 따라 세계 유일의 금강초롱꽃은 한국 특산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일본 식물 냄새 물씬 풍기는 학명이 되고 말았으니 이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슬픈 과거를 무엇으로 되갚을 것인가.

 

천상의 고운 빛깔로 어둑한 숲길에 청사초롱 꽃불 밝히는 금강초롱꽃!

 

해마다 가을이면 한 점 바느질 꿰맴 자리 없는 선녀의 날개옷처럼 천의무봉의 완벽한 꽃 자락을 펼쳐내는 신비의 꽃이다. 동시에 단아하고 당찬 기품이 은은히 풍기는 숭엄한 자태는 들뜬 황홀감 속에서도 섬뜩 전율이 흐르듯 옷매무새 다지게 하는 흐트러짐이 없는 우리 들꽃, 초롱 같은 기다란 통꽃 자락에 자지러질 듯 아픈 사연을 깊숙이 숨긴 우리 꽃이다.

 

금강초롱꽃 학명에 얽힌 우리 식물사의 슬픈 과거를 잊지 않으려면 우리 민족과 함께 이 땅에서 삶을 이어온 우리 꽃 사랑과 보전,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아직도 갈 길이 멀고도 먼 것만 같다. 주변의 화단과 공원, 도로변에는 요화 같은 외래화와 원예화에 우리 꽃은 잡초처럼 밀려만 가고 뽑혀 나가는 것이 요즈음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자생 들꽃을 남획하는 맹목적인 탐욕이나 싸늘한 무관심을 우리 꽃 사랑과 보전하는 마음으로 채울 수 있을까? 초가을 금강초롱꽃을 만나 학명에 얽힌 서글픈 사연을 들추어보면서 신토불이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우리 금강초롱꽃
 
하늘에 아스라이 흰 구름 날면
땅 위엔 청잣빛 금강초롱 불을 밝힌다.
 
작달 마한 몸체에 큼직한 꽃
당찬 품새에 고매한 아름다움
뀀 없고 접힘 없는 천의무봉 통꽃이여!
숭엄한 완벽미가 전율처럼 번지는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금강초롱꽃.
 
맞닥치면 황홀경에 홀딱 마음 설레고
다시 보면 서러운 사연에 가슴 저미는 꽃.
 
기다란 통꽃 자락 깊은 화심(花心)에
깊숙이 묻어둔 못다 삭인 응어리
심지 돋워 아픈 세월 불사르듯
슬픈 사연 곱게 태워 청사초롱 불 밝힌다.
별빛 함께 깊은 산 속 외로운 금강초롱.

 

 

*필자는 환경부 국장과 청와대 환경비서관,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다. 시집 <꽃 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bizh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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