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뭐해?ㅎㅎ” 연휴를 앞두고 심심했던 저녁.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역시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평소와 다른 한 가지가 있었다면 내가 보낸 메시지 옆에 익숙한 숫자 1 대신 알파벳 X자가 떠 있었다는 것뿐. 카카오톡 메신저 앱이 불통이 되었다. 전화와 문자메시지도 마찬가지였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은 순식간에 카메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경주에 규모 5.8의 큰 지진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십여 분이 지나고 나서였다.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수많은 국민이 진동에 불안을 느꼈고, 실제로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몇몇 지대에는 균열이 발생했다. 피해 사례는 지금도 속속 올라오는 중이다. 그 시간 나는 멀리 서울에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다. 지진은 대한민국과는 무관한 것인 줄만 알았다. 지금껏 전문가들이 그렇게 이야기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전부 무의미한 이야기가 되었다. 일본의 지진 뉴스를 보면서 더 이상 안도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정부와 기관의 미흡한 대응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껏 크고 작은 지진들을 잘 버텨낸 일본의 대처 능력이 오히려 부러워지기까지 한다.
일본 도쿄 시부야의 거리 풍경. 일본은 장기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다. |
어쩌면 이는 지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갈라지고 침몰할 수 있는 것이 비단 지반뿐은 아니다. 경제가 그렇다. 일본의 장기 불황을 ‘잃어버린 20년’이라 칭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던 우리였다. 일본의 몰락이 우리의 눈부신 성장과 교차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교차가 아니었다. 양국의 경제는 비슷한 트랙 위를 달리고 있었다. 먼저 출발한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장애물을 마주쳤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장애물을 넘고 있는 중이다. 일본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우리의 앞에도 ‘장기 불황’이라는 장애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일본이 겪었던 ‘잃어버린 20년’의 5년차 구간을 지나고 있다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발언도 벌써 2년이 지난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그때보다 늘어난 건 국민들의 한숨과 국가의 예산뿐이다.
무척이나 퍽퍽한 상황이다. 저만치 앞에서 장애물을 넘고 있는 일본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휘청일지언정 넘어지진 않았다. 이제는 제법 장애물을 넘는 요령도 갖춰가는 듯하다. 뒤따라가는 입장이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간접경험이다.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분명 있다. 독도 분쟁, 위안부 문제, 역사 교과서 왜곡 등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서 무얼 하든 한일전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좋은 분석에는 객관성이 필요하다. 조금 더 차갑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이 책 『일본은 절대로 침몰하지 않는다』는 위와 같은 관점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재조명한다. ‘잃어버린 20년’, 그 실제는 잃어버리기만 한 시간이 아니라 연착륙에 힘 쏟은 시간들이었다고, 일본은 서서히 회복하고 있고 이후 10년은 ‘잃어버린 30년’이 되지 않을 거라 전망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크게 총리(官), 기업(商), 덴노(黃)의 세 가지 강점으로 풀어 설명한다. 전후 일본을 이끌어간 정치인 요시다 시게루, 기시 노부스케의 이야기를 다룬 3장과, 흔들리지 않는 R&D 투자, 효율적인 M&A, 모노즈쿠리의 사례를 늘어놓은 4장의 이야기는 무척 익숙하다.
이 책이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덴노, 즉 일왕의 존재가 일본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2장에 있다. 저자는 덴노를 모르고서는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일본 내에서 덴노가 차지하고 있는 존재감, 나라의 큰 어른이 조율하는 균형에 대해 풀어낸다. 우리에게는 한없이 불편한 존재인 덴노를 이토록 호의적으로 풀어낸 책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 주는 책을 펼쳐도, 책을 덮어도 쉽사리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제시간에 전달되지 않은 메시지 한 줄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메시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재난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피드백은 빠를수록 좋다. 중요한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사건 사고에 있어서 ‘절대로’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