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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텔링] 방산전시회의 품격

2016.09.13(Tue) 09:04:04

방위사업은 홍보와 판매가 매우 힘든 산업 중 하나이다. 현대전에서 쓰이는 최신무기들이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효과적인지, 이 가격이 합당한지, 납득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전쟁과 분쟁이 끊일 날이 없지만, 비정규전, 비대칭 전투로 요약되는 현대전의 특징은 값비싼 최신무기가 활약할 기회를 뺏어버린다.

그래서 각국에서는 방위산업체들이 참가하는 거대한 방산전시회를 만들어 홍보의 장으로 활용한다. 방산전시회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방위산업이 얼마나 발전하고, 또 얼마나 효과적인지 홍보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자 무기를 제작한다는 부정적 기업 이미지를 만회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산전시회는 그 국가의 방위산업의 척도이자 기준이 되기도 한다. 세계 최대의 방위산업을 자랑하는 미국에서는 AUSA 등 많은 전시회가 열리지만, 아직까지는 유럽이 방산전시회에서 더 주목받는 편이다. 특히 라이벌 관계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와 영국이 독보적인데, 영국은 판버러에어쇼와 DESi 전시회를, 프랑스는 파리 에어쇼와 유로사토리라는 걸출한 전시회를 가지고 세계 방위산업을 주도하는 국가로서의 위상을 뽐낸다.

   
2015년에 열린 서울에어쇼(ADEX) 행사 모습. 전시회의 절반 이상이 육상 장비였다.

한국은 어떨까.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서울에어쇼(ADEX)와 해양방산전시회(MADEX)가 있다. 여기에 제작년부터 DX Korea라는 전시회가 하나 더 생겼는데, 지난 9월 7일부터 9월 10일까지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개최되었다. 즉 한국은 대규모 방산전시회가 세 개나 있는 셈이다.

일단 방산전시회가 세 개로 나눠진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ADEX는 공군 위주, MADEX는 해군 위주, 그리고 DX Korea는 육군 위주로, 각 군의 무기체계별로 세분화하여 전시회를 연다는 취지는 일견 그럴듯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세 가지 방산전시회의 품목은 실제로는 중복되는 것이 너무나 많다. ADEX는 서울에어쇼라는 약침이 붙지만, 정식 명칭은 ‘서울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시회’이다. 육군과 해군 장비도 원칙적으로는 전시가 가능하다. 작년 ADEX에서는 육상장비 기동시범 장소를 마련하여, 20개국 이상 무관단과 수천 명의 관람객들이 전시기간 내내 육군의 발전된 무기체계 성능을 관람할 수 있었다. 전시회의 절반 이상이 육상 장비였다.

MADEX의 경우 대부분 해상 장비 및 해상 안보에 대한 주제였지만, 해군 특수부대인 UDT/SEAL 팀의 자동소총과 권총, 유니폼을 전시하는 행사가 있었다. 또 DX Korea의 전시장 부스 중 상당수가 항공산업체인 대한항공과 한국항공우주산업의 것이었다. 육군용 헬리콥터 사업에 전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전은 육상장비와 해상장비, 공중장비를 구분해서 기술을 적용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이기는 최고의 무기는 장르를 가리는 게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LIG 넥스원이 제작하는 지대공 미사일 천궁은 그 기술을 활용해서 함정에 탑재하는 ‘해궁’ 미사일을 개발 중이고, 한화 탈레스는 함정에 장착하는 적외선 추적 장비 기술을 우리 보라매의 4대 핵심장비인 EO TGT(전자광학 타기팅 포드) 개발에 활용한다. 해군용 미사일은 MADEX에서만, 육군용 미사일은 DX korea에서만 전시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전시회 한 번에 업체가 기울이는 수고와 노력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방산전시회는 방위산업 세일즈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이지만, 방위산업 계약은 수년간의 협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시회 출품으로 업체가 바로 이득을 얻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준비에 드는 비용과 시간은 TV 광고에 비견될 정도로 상당하다. 만약 탱크나 비행기 같은 무거운 물품을 행사장에 옮겨서 전시라도 하려면 그 수송비용은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업체로서는 사실 해외 수출을 생각하면 국내 전시회보다 해외 전시회를 가는 편이 낫지만, 기업 이미지와 여러 분위기 때문에 국내 방산전시회 출품을 거절할 수는 없다. ADEX, MADEX, DX Korea의 행사 주체는 주요 고객인 육해공 3군을 망라한다.

   
얼마 전 열린 DX Korea에서 홍보 부족으로 비어 있던 미국 헬기회사 B 사의 프레젠테이션 현장.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전시회의 전문성을 훼손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1935년 설립되어 수천 대의 민수용 헬리콥터를 만들고, 미국 해병대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AH-1Z 바이퍼’ 공격헬기와 수직이착륙기로 유명한 ‘MV-22 오스프리’를 만든 미국의 유명 헬기회사 B 사는, 얼마 전 열린 국내 방산전시회에서 큰 곤란을 겪었다.

자체 판단으로 부스 설치 대신 자사의 홍보 전문가들을 통한 기술 시연과 설명 세미나를 계획했는데, 주최 측의 실수로 그 어떠한 홍보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5명의 회사 직원들 앞에 단 두 명의 프레젠테이션 관객만 있는 모습은 관람객인 나조차 얼굴을 들기 힘들 정도로 부끄러웠다. 결국 B 사의 한국인 직원이 직접 방송실로 들어가 홍보 방송을 한 뒤에야, 몇 명이 더 들어와 세미나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해외 방산전시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방산전시회는 대국민 홍보와 함께, 참여하는 군 및 업체 관계자들에게는 최신 방위사업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의 장이다. 하지만 각 군의 이기심으로 인해 방산전시회가 찢어져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이런 상황은 정보의 장으로서 방산전시회가 잘 가동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관계자들의 인식개선과 효율성 향상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bizh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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