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롯데특별수사팀은 지난 8~9일 두 차례에 걸쳐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방문 조사를 실시했다. 검찰은 이에 앞서 7일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를 점검한 뒤 방문조사로 결정했다. 즉 소환조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못했다는 얘기다. 다시 신 총괄회장 건강상태와 이로 인한 파장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 이와 관련해 법원이 지난 2일 신 총괄회장에 대해 한정후견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나온 비화를 공개한다.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건강상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7월 18일 입원 40일 만에 퇴원하는 신 총괄회장. 뒤는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며느리 조은주 씨. 사진=연합뉴스 |
재판장: “올해가 몇 년도인지 아세요?”
신격호: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여동생 신정숙 씨가 법원에 성년 후견 개시를 청구한 것은 지난해 12월. 오빠인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을 판단해 문제가 있다면 의사 결정 대리인을 정해달라고 요청해 법적 이슈로 비화됐다.
9개월간 계속된 재판 끝에 서울가정법원은 “신 총괄회장이 질병과 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라며 한정후견 개시를 결정했다. 서울가정법원은 “신 총괄회장이 지난 2010년부터 치매 치료 약물을 복용하는 등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신 총괄회장 측은 “서울대학교병원은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재판 결과에 반발했지만, 취재 결과 신 총괄회장의 치매는 생각보다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 내용을 상세히 알고 있는 한 판사는 “신격호 총괄회장은 올해가 몇 년도인지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정도였다”며 “담당 판사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단순한 수학적 계산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치매는 여러 단계로 진행되기 때문에 단순 계산이나 암기가 안 된다고 해서 경영 관련 판단력까지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인데 신 총괄회장은 이 부분에 대해서 법원이 판단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을 정도라고 한다.
앞서의 판사는 “신격호 총괄회장 측에서 서울대학교병원 입원 검증을 거부해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누가 봐도, 비전문가가 봐도 ‘정말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만큼 치매가 진행됐다”고 단언하며 “치매약 복용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그건 정말 형식적인 문장에 불과하다. 직접 대화를 하면, 정말 좋지 않은 게 눈에 띄게 보일 정도”라고 설명했다.
치매가 심각하지만, 재산 관계가 복잡한 것을 감안해 한정후견을 결정한 법원. 법원은 롯데가 구성원 등 특정 개인은 배척하고 줄곧 외부 기관들 중에서 대상을 물색했는데, 신 총괄회장의 자녀들 사이에 신상보호나 재산관리, 회사 경영권 등을 둘러싸고 극심한 갈등이 빚어진 만큼, 그 중 어느 한쪽에 후견 업무를 맡기면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판단했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최종 타깃으로 놓고 진행 중인 검찰 수사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신동빈 회장과 관련해 신격호 총괄회장이 내놓는 진술들이 재판에서 어느 정도 인정되느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
형사 재판을 맡고 있는 한 부장판사는 “진술 증거 외에도 여러 증거들이 넘어오겠지만, 신동빈 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이 서로 배임 관련 결정 여부를 놓고 책임을 떠넘기며 법정 공방을 벌이지 않겠느냐”며 “이미 법원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해 ‘치매가 상당하다’고 판단한 만큼 신 총괄회장의 진술을 ‘그대로 다 믿을 수 없다’며 배척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검찰이 신 총괄회장의 진술을 ‘신동빈 회장 공격 카드’로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인데, 검찰도 이를 의식하는 눈치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의 상태가 올해 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며 긍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신 총괄회장 입장에서 재산 문제를 놓고 ‘한정후견 결정’은 원치 않던 것이 맞지만, 어째든 법원에서 ‘감형’을 희망할 때 근거로 쓰일 게 한 줄 더 생긴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94세 고령인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법원의 치매’ 결정은 불리하게 작용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치매가 상당함에도 수백억 원 상당의 월급을 그대로 가져갔다’며 횡령 혐의 적용이 가능한데, 한 변호사는 “치매에 따른 월급 횡령은 매우 드문 케이스”라고 전제한 뒤 “신격호 총괄회장이 치매 상태에서 내린 경영 판단에 대해서도 검찰이 배임 등으로 형사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남윤하 저널리스트
bizhk@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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