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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은 되고 한진해운은 안 돼, 왜?

대우조선 4조 2000억 퍼준 반면 한진해운은…‘주인’ 달라서?

2016.09.09(Fri) 12:31:13

세계 7위, 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세계 각지를 돌던 정기선 97척 중 70척이 압류돼 운항을 못하고 있다. 짐을 맡긴 화주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글로벌 상선이 기일을 못 맞추니 계약에 차질이 생겼고, 손실은 15조 원대로 불어났다. 이 문제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한진해운 선원들은 적막한 바다에서 난민 신세가 됐고, 구조조정 위기에 내몰린 직원들은 서울 서소문 대한항공빌딩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은영 전 회장 등 전·현직 경영진의 무능력과 방만함이 매일같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 한진해운살리기 부산시민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상경해 지난 7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항공빌딩 앞에서 한진해운을 살리고 부산지역 경제를 살리자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이쯤 됐음 지원해줄 법도 한데 감감무소식이다. 인색함을 넘어 악감정이 있나 생각도 든다.”

한진해운 사태에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에 섭섭함 섞인 원망을 내놓는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민간 기업의 손실을 막는 데 국민 혈세를 쓸 수 없으며, 오너의 사재 출연 없이는 단 한푼도 내줄 수 없다고 한다. 문제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꿈쩍도 않는다. 한진해운이 담보를 제공하면 1000억 원의 장기저리자금을 지원하겠다는 대책이 전부다.

그런데 이상하다. 불과 2개월 전인 7월, 4조 2000억 원의 막대한 혈세를 대우조선해양에 ‘꽂아준’ 정부다. 5조 원대 분식회계와 임직원 유흥비와 로비자금으로 판관비 유용, 경영진·사외이사들의 무책임한 경영, 임직원들의 모럴해저드. 이런 사실을 모두 알고도 정부는 청와대 서별관회의(비공개 거시경제정책협의회)에서 자금지원을 결정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8일 국회 청문회에서 “최선의 결정”이라고 자평했다. 자금지원이 대우조선은 되고 한진해운은 안 되는 이유. 자못 궁금하다.

“자금을 넣으면 용선주, 항만 하역업체 등 해외 채권자가 다 빼간다.”

정부가 한진해운에 돈을 지원할 수 없다며 내놓은 공식적인 이유다. 한진해운이 해외에서 빌린 돈을 못 갚고 있는데, 이를 정부가 지원하면 국부를 외국의 빚쟁이가 가져가버릴 것이란 얘기다. 그렇지만 대우조선의 채무는 23조 원에 달하고, 이 중 상당한 액수가 외국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대우조선은 해외 자회사에서 2조 원대의 손실과 해외 프로젝트에서 4조 원대 손실을 입기도 했다. 국부 유출로만 보면 한진해운보단 대우조선이 몇 수 위다.

사실 정부가 민간 기업의 부채를 떠안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외환위기나 카드사태·글로벌 금융위기 등 특수 상황에서는 용인될 수는 있지만, 평시에 발생하는 기업 부도는 전적으로 기업 책임이다. 한진해운의 위기는 오너 일가가 사재를 내놓든 회사를 매각하든 결자해지해야 한다. 정부도 한진해운에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진해운과 대우조선의 결정적인 차이는 ‘주인이 누구냐’에 있다. 대우조선 문제의 발단은 어디인가. 대주주인 산업은행에서 찾는 시각이 우세하다. 산업은행은 기획재정부가 지분 100%를 보유한 공기업이며, 금융위원회의 관리를 받는다. 대우조선은 공기업인 셈이다. 정부는 시장실패에는 관심을 갖지 않아도 정부실패는 용납할 수 없다.

정부로선 산업은행에서는 경영실패 사례가 나와서는 곤란하다. 한 번 망한 기업을 되살리고자 공적자금을 부었는데 회생 과정에서 부도를 맞는다면, 모든 비난의 화살은 정부와 관료 사회에 쏟아지게 된다. 명분은 많다. 국부 및 산업 기술 유출 방지와 대량 실업 방지,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 붕괴 등. 결국 정부가 ‘좀비 기업’ 살리기에 공적자금의 주사바늘을 꽂아주는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가진 기업은 성장 모멘텀은 크지 않지만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고 했다.

   
▲ 5조 원대 분식회계 등 총체적 부실에도 정부는 4조 2000억 원의 막대한 혈세를 대우조선해양에 꽂아줬다. 5조 원대 분식 회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고재호 전 사장의 검찰 출두 장면. 사진=최준필 기자

만약 한진해운이 대우조선과 같은 처지였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깊게 따지면 대우조선은 재정부의 손자회사뻘 되는 기업인 데 비해, 한진해운은 해양수산부의 관리를 받는 민간기업이다. 해수부로선 해운업계의 생존을 바란다. 이에 지난 6월 김영석 해수부 장관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에게 “채권단의 추가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 이후로도 두세 차례 이런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애비(해수부 장관)가 힘이 없어 종형(사촌형, 산업은행)에게 맞고 다닌다”는 탄식도 돌았다.

해운업계로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2008년 이후 외국 해운사는 정부 지원을 등 업고 초대형선박을 신조, 주요 항로를 장악했다. 국내 해운업계도 톤세 도입·구조조정기금 등의 지원을 받았지만, 이미 해외에서 도입된 정책이거나, 효과가 미미한 정책뿐이다. 게다가 정부는 조선업계에는 수출금융지원과 금리·세금 혜택 등 막대한 지원을 쏟아 부었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은 지난 8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포럼에서 “정부가 일관되게 회사의 자구노력만을 요구했을 뿐 위기 극복을 위한 지원은 없었다”며 “해운업계가 법정관리에 돌입하면 17조 원의 피해와 2300개의 일자리 상실, 외국 선사에 대한 의존도 상승으로 외화 유출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해운업이 조선업에 비해 고용창출 및 산업유발 효과가 적다는 점도 지원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 등 조선 3사의 근로자 수는 총 5만 1353명(6월 말 기준). 협력업체 직원까지 합하면 1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대우조선만 따져도 협력업체를 포함해 4만 명의 근로자가 1000개 가까운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해운업계 근로자는 5000명 안팎에 불과하다. 해운업은 화물과 배를 관리하는 인력 외에는 많은 근로자를 쓸 일이 없다. 선거철 ‘표값’으로 따지만 조선업은 무시할 수 없는 유권자층이지만, 상대적으로 해운업은 소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에 따른 해운업황 악화와 과당 경쟁 등 구조적인 문제 역시 한진해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가로막고 있다. 1985년 지수 1000으로 시작한 발틱운임지수가 7월 707까지 떨어지는 등 업황이 나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 600대로 곤두박질친 뒤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선박의 대형화와 원자재 가격하락, 보호무역 강화 등은 해운업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했다. 

약을 먹어 나을 병이면 치료를 한다. 하지만 가망 없는 분야에 돈을 넣어봤자다. 손실을 계속 세금으로 막아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영국의 대형 해운사 골든포트도 지난 4월 6척의 벌크선을 한 척당 1달러에 처분하고 런던증시에 상장폐지를 했다. 배를 띄울수록 손해만 늘어난다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bizh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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