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우리는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았을까. 지금 먹는 음식이 과거(적어도 조선시대)와 비슷한 걸까. 물론 라면이나 피자, 돈가스는 없었겠지만 ‘한식’이라 불리는 음식이라도 말이다. 특히 과거의 우리 음식은 이름은 비슷해도 현재와 맛과 재료가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들 추측한다. 기록된 ‘레시피’가 거의 없어서 그렇기도 하다.
이런 형편에도 옛 모습과 흡사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음식이 몇몇 있다. 설렁탕이 그 중 하나다. 특히 조선 말 서울에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관련 자료도 좀 있는 편이다.
“말만 들어도 위선 구수-한 냄새가 코로 물신물신 들어오고 터분한 속이 확 풀니는 것갓다. 멋을 몰으는 사람들은 설넝탕을 누린 냄새가 나느니 쇠똥냄새가 나느니 집이 더러우니 그릇이 不快하니 하지만 (중략) 鍮器나 사器에 담어서 파양념 대신 달은 양념을 넛코 소곰과 거쳥 고추가루 대신 가는 고추가루와 진간장을 쳐서 시험삼어 한번 먹어보아라. 우리가 보통 맛보는 설넝탕의 맛은 파리죡통만큼도 못 어더볼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종합잡지 <별건곤>에 나온 기사다. 상세하다 못해 지금보다 설렁탕이 더 맛있고 훌륭했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 기사의 제목에는 아예 ‘경성 설넝탕’이라고 박아 놓았다. 설렁탕이 서울의 원조라는 얘기다. 당시 평양은 냉면, 설렁탕과 해장국은 서울이라고들 했다.
이 중요한 맥으로 남아 있는 집이 서울에 지금도 건승하다. 바로 이문옥과 잼배옥이다. 그중 잼배옥 주인 김현민 옹은 1939년생이다. 창업자는 김희준 선생(작고, 1905년생)이고 그는 2대째 계승자. 잼배옥이 문을 연 건 1933년이다.
서울을 지탱했던 전설적인 음식 설렁탕. 그것을 가장 오래 이어오고 있는 집 중 하나가 바로 잼배옥이다. |
설렁탕은 일제강점기는 물론 현대사의 중요한 시기에 제일 중요한 음식이었다. 일꾼들이 먹던 노동음식이었으며, 막 발흥하던 사무직 노동자들의 점심 메뉴였다. 최불암 선생이 나오던 과거 <수사반장>에 단골로 나오던 배달음식이 설렁탕이었듯, 이 음식은 현대사의 숨은 주인공이었다.
잼배옥은 중앙일보 앞의 터줏대감이지만, 본디는 ‘잠바위’ 앞에 있었다. 서울역 근처 동자동 인근이 바로 잠바위골이고 대개 그렇듯이 상호도 없던 설렁탕집의 상호를 손님들이 만들어서 불렀다. 잠바위라는 지명에 일본식으로 식당을 뜻하는 ‘옥’을 붙인 것이다. 그것이 그대로 지금의 상호로 이어지고 있다.
설렁탕은 장국밥, 해장국과 함께 전형적인 서울 음식이다. 고기국물로 만드는 장국밥은 좀 더 고급한 음식이고 설렁탕은 전형적인 서민 음식이었다고 여러 기록들이 증언하고 있다. 서울 출신으로 동아일보, 한국일보 기자를 지낸 언론인 고 홍승면 선생이 설렁탕에 대해 기술한 내용을 보자.
“6·25 때까지만 해도 남대문 밖에서는 서울역 앞 동자동의 ‘잼배옥’이 손꼽혔다. ‘잼배’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언제고 한번 물어봐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6·25가 일어나 잿더미가 되었는지 온 데 간 데 없이 되고 말았다….”(저서 <백미백상>에서)
홍 선생은 어려서부터 설렁탕을 좋이 먹고 살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밖에서 놀다가 시장해져서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가도 집에서는 당황하지 않았다고 한다. 찬밥만 있으면 설렁탕 국물을 사와 말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같은 책에서 술회하고 있다.
잼배옥의 수육 모둠. 내장과 고기 모두 입에 달다고들 한다. |
2대 계승자 김현민 옹은 필자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아버지가 잼배옥을 자암비옥(紫岩飛屋)이라고 한자로 써서 간판을 걸어놨던 게 기억나. 먹붓에다가 뺑끼(페인트)를 묻혀 쓰셨지.” 그러고는 “육이오전쟁 삼 일 만에 삐이십구(B29)가 폭격을 해서 가게가 폭삭 무너졌어.”라고 기억한다. 그리하여 잼배옥의 서소문시대가 열린다. ‘잼배’라는 옛 지명을 그대로 달고.
잼배옥은 까다로운 손님 많은 신문사와 삼성 같은 재벌그룹 직원들을 단골로 삼아 영업할 만큼 정평이 나 있다. 뽀얀 국물에 밥을 말고, 간혹 수육 모둠을 시키면 내장과 고기 모두 입에 달다고들 한다. 거대 메트로 서울을 지탱했던 전설적인 음식 설렁탕. 그것을 가장 오래 이어오고 있는 집 중의 하나가 바로 잼배옥이다.
다시 뜨거운 국물에 김치 곁들여 설렁탕을 먹고 싶어진다.
필자 박찬일은 서울에서 났다. 1999년부터 요리사로 살면서 글도 쓰고 있다. 경향에 <박찬일셰프의 맛있는 미학>, 한겨레에 <박찬일의 국수주의자>(문자 그대로 국수에 대한 연속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단행본으로 한국의 오래된 식당을 최초로 심층 인터뷰하고 취재한 <백년식당>을 썼다.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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