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꽃(석죽과, 학명 Lychnis cognata)
유례없이 뜨겁고 길게 이어졌던 올해의 한여름 더위에 이열치열로 더위를 넘기겠다는 단단한 각오로 나선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지리산 종주길. 실로 수년 만에 나선 지리산 종주 강행이었다.
들꽃이 귀한 한여름이라서 많은 꽃을 만나지 못했지만, 산행 내내 끊임없이 만난 것은 ‘동자꽃’이었다. 둥글고 앳된 동자승의 얼굴과 발그레한 볼처럼 밝고 환한 모습으로 피어나는 한여름의 동자꽃. 하지만 동자꽃에 얽힌 전설은 애잔하기만 하다.
깊은 산 속 암자에 어린 동자승을 홀로 남겨두고 금방 다녀올 거라며 겨울 양식을 구하러 산에서 내려간 노승(老僧)이 갑자기 몰아닥친 눈보라를 만나 바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걱정으로 날을 지새운 노승은 눈보라 그치고 날이 개자 급히 되돌아왔지만, 암자 입구에서 노승을 기다리다 지친 동자승은 이미 싸늘하게 얼어 죽어 있었다.
노승은 암자 입구 양지 바른 곳에 동자승을 고이 묻었는데, 이듬해 동자승 묘에서 동자승 얼굴처럼 둥글고 볼처럼 발그레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동자승의 넋이 꽃으로 환생했다고 이 꽃을 ‘동자꽃’이라 불렀다.
해 짧고 추운 겨울날 기다림에 지쳐 얼어 죽은 동자승은 해 길고 날 뜨거운 한여름에 꽃을 피워 그 한을 달래나 보다.
동자꽃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꽃은 둥글고 크고 화사하지만, 그 사연은 애틋하고 애절하다.
동자꽃은 해발고도 1500m 안팎의 고산지대의 초원이나 깊은 산골짜기에서 자라며 꽃은 7∼8월 한여름에 핀다. 색깔은 드물게는 하얀색이나 분홍색도 있지만, 대부분 주홍색이다. 다년생 초본으로 산지의 반그늘이나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필자는 환경부 국장과 청와대 환경비서관,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다. 시집 <꽃 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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