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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갤노트7 리콜로 얻은 것과 잃은 것

2016.09.06(Tue) 15:24:12

1995년 3월,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에 15만 대의 제품을 쌓아놓았다. 그 앞에는 2000여 명의 임직원이 있었다. 이내 큰 망치를 든 직원들이 쌓여 있는 제품들을 부수기 시작했고, 조각들은 다시 불태워졌다. 충격적인 불량품 화형식이었다.

이것은 사실 하나의 ‘쇼’였다. 어떻게 보면 매우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이지만 직원들에게는 불량품에 대한 경각심을 주게 됐고, 소비자들에게는 삼성전자의 품질 관리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애니콜을 비롯한 삼성전자 제품의 이미지가 크게 달라진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삼성전자는 품질과 서비스를 앞세우기 시작했고, 삼성전자가 지금의 자리에 올라서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21년이 지난 9월 2일 삼성전자는 그동안 판매된 신제품 갤럭시 노트7을 전량 신제품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회수되는 제품은 약 250만 대로 예상된다.

갤럭시 노트7은 발표와 함께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해외 IT 미디어들의 반응도 좋았고, 시장에서도 잘 팔렸다. 특히 국내에서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갤럭시S7에 이어 오랜만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 사진=삼성전자

하지만 그 기쁨은 길지 않았다. 갑자기 배터리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폭발로 의심되는 사건이 매일 이어졌다. 급기야 충전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진한 연기를 내뿜는 사고까지 생겼다. 잘나가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돌아섰다. 기존에 구입한 사람들도 불안해했다. 이제 ‘어쩔 거냐’는 시장의 분위기도 감돌았다. 잘 팔렸고 큰 관심이 이어진 제품이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사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리튬 이온이나 리튬 폴리머 배터리는 꽤 불안정한 상태라서 폭발 사고는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상당히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아마 폭발 사고 하나 없는 스마트폰은 없을 것이다. 다만 갤럭시 노트7은 그 빈도가 잦았다. 처음에는 ‘으레 있는 일이겠거니…’ 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이어졌다. 제품을 리뷰하는 IT 기자들 사이에서 ‘내 제품은 언제 터지나 보자’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쯤 되면 여느 배터리 사고와는 다른 국면에 접어든 셈이었다.

리콜, 혹은 배터리 교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난 2일, 삼성전자는 이 논란이 더 커지기 전에 답을 냈다. 전 제품을 새 것으로 바꿔주기로 했다. 전량 신제품 교체를 발표하던 날,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은 “9월 1일 기준으로 35건의 배터리 문제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8월 19일부터 판매를 시작했던 것을 따지면 하루에 2∼3대 사고가 난 셈이다.

일단 대책은 명확하다. 9월 3일부터 판매를 잠정 중단하고, 9월 19일부터 교체를 시작한다. 중간에도 불안하다면 임대폰을 빌려준다. 9월 19일 이전에는 개통 철회도 가능하다.

삼성전자의 대책은 꽤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사건이 의혹에서 불안으로 번지고, 불신으로 넘어가기 전에 대안이 나온 것이다. 삼성전자의 대응, 특히 그 과정과 절차는 높은 점수를 살 만하다. 소비자들이 불안해하는 데에 빠르게, 그리고 소비자들이 가장 원하는 답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조건도 없다. 특정 생산분이나 시리얼, 제조사를 구분했다면 혼란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상을 ‘모든 소비자’로 정하면서 메시지가 아주 깔끔해졌다. 위기 대응 교과서라 할 만하다.

삼성전자가 배터리 대신 제품을 교체해주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품의 특성도 있다. 갤럭시 노트7은 방수가 되고, 배터리가 분리되지 않는다. 이런 제품들은 대체로 한 번 분해하면 방수가 불안해질 수 있다. 수리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배터리만 바꿔주는 건 불안하다는 소리가 나왔고, 삼성전자도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11일 갤럭시 노트7 미디어데이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는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 고 사장은 20일 뒤 노트7 전량 신제품 교체를 발표하고 사과했다. 사진=고성준 기자

삼성전자가 너무 빨리 대책을 내놓는 바람에 오히려 정부기관들이 ‘절차를 지켜서 진행하라’는 주문을 내놓기도 했다. 정확한 문제점 파악과 리콜 계획서 등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삼성전자는 ‘교체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았을 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상세하게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한 결함과 달리 안전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대응은 적절했다. 특히 기어VR처럼 제품이 눈 가까이에 맞닿을 수 있으므로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교체에 대해 시장은 어딘가 흥분한 것 같은 분위기도 일고 있다. 하지만 과정을 떠나 이번 리콜 전체를 미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삼성전자는 품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촉박한 일정, 혹은 공급 부품의 관리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나오지만 결국 완제품을 내놓는 기업이 기본적으로 신경 써야 할 품질 관리를 완벽히 하지 못했다. 다만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한 것이 일을 더 크게 번지지 않게 수습한 것이다. 이 둘은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단순히 과장된 ‘쇼’로만 볼 수도 없다. 삼성전자로서는 아이폰7이 나오기 직전, 가장 예민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제품 교체와 판매 중단, 그리고 이미지 타격까지 삼성이 입은 손실 규모는 만만치 않다.

한편으로 삼성전자의 경쟁력 중 하나를 다시 되찾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품질과 서비스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리콜을 통해 오히려 품질에 더 신경을 쓴다는 이미지를 굳힐 수 있게 됐다. 소비자를 위해 빠르고 유연한 결정을 내린다는 이미지도 얻었다. 직원들에게도 다시금 긴장할 수 있는 요인이 됐다. 금전적인 손해는 입겠지만 무형의 소득도 분명하다.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역시 기업의 역량 중 하나다. 한편으로 불량, 혹은 하자에 대한 기업의 대응이 그동안 얼마나 소극적이었나도 돌아보게 된다. 새삼스럽지만 위기관리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최호섭 IT칼럼니스트

bizh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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