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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8년 전 오늘, 2008년 9월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삼성전자는 미국의 플래시메모리 제조사 샌디스크(SanDisk)사 인수 추진설에 대해 “삼성전자는 샌디스크사 인수를 포함한 여러 가지 제휴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며 “하지만 현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공시했다.
삼성전자의 샌디스크 인수 검토 사실이 알려지자 시장에서는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는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인수·합병(M&A)을 추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샌디스크는 세계 1위 플래시메모리카드 제조업체였다. 삼성전자가 샌디스크 인수에 성공하면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50%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이에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그 동안의 ‘쇄국정책’을 깨고 M&A에 본격 나서 새로운 성장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고 긍정 평가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샌디스크 주식 2억 2500만 주를 주당 26달러에 매입하는, 총 58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인수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샌디스크 이사회는 삼성전자의 인수 제안을 만장일치로 거부했다고 한다. 삼성전자가 자신들의 가치를 과소평가했다는 것. 특히 이 과정에서 샌디스크는 삼성전자의 인수에 대항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라이벌인 일본 도시바와 제조합작회사를 설립, 도시바에 지분 30%를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자 공시를 낸지 한 달 후,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인수를 철회했다. 삼성전자는 샌디스크 측에 “삼성전자와 샌디스크의 합병으로 강력한 브랜드와 기술 플랫폼, 규모의 경제를 창출할 것이라 확신했으나 의미있는 진전이 없어 인수작업을 중단한다”는 인수추진 철회 서한을 보냈다.
특히 삼성전자는 샌디스크가 2008년 3분기 2억 5000억 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도시바 측에 성급한 자금지원을 요청했으며,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등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인수 철회 주요인으로 지적했다.
▲ 사진=샌디스크 공식 페이스북. |
이후 8년이 지났다. 샌디스크는 여전히 전세계 반도체업계 M&A시장의 중심에 있다. 우선 샌디스크가 지난해 10월 미국 저장장치 전문업체 웨스턴디지털에 인수된다는 발표가 나왔다. 매각가는 190억 달러(약 23조 5000억 원)였다.
그런데 이 발표가 있기 한 달 전인 9월, 중국 국영 반도체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은 38억 달러(약 4조 7000억 원)을 들여 웨스턴디지털 지분 15%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시장에서는 이러한 M&A를 두고 칭화유니그룹이 웨스턴디지털을 통해 샌디스크 우회인수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칭화유니그룹의 샌디스크 간접인수는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지난 2월 칭화유니그룹이 웨스턴디지털 인수 계획을 포기한 것. 웨스턴디지털 측은 “미국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양사의 거래를 조사하겠다 발표하자 칭화유니가 인수 합의를 무산시켰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웨스턴 디지털의 주가급락이 칭화유니의 인수 포기에 영향을 줬다고도 분석했다. 당시 웨스턴디지털의 주가는 하드디스크 업황 악화가 깊어지며 2016년 상반기에만 30% 가까이 떨어졌다.
칭화유니의 웨스턴디지털 인수가 무산되면서, 웨스턴디지털 역시 샌디스크 매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며 삼성전자의 샌디스크 인수설이 다시 관측되기도 했다.
칭화유니와의 무산과는 별개로 웨스턴디지털의 샌디스크 인수는 계획대로 이뤄졌다. 웨스턴디지털은 지난 5월 자회사 웨스턴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샌디스크 인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인수를 발표한 지 약 7개월 만이다. 특히 웨스턴디지털은 샌디스크 인수로 플래시 메모리 기반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시장에서 인텔(14.4%)을 제치고 삼성전자(39.1%)에 이어 점유율 2위(16.7%)로 올라서게 됐다.
한편 칭화유니그룹의 샌디스크 우회인수가 계획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국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칭화유니그룹의 자본력과 중국 정부의 지원, 샌디스크의 기술력이 합쳐질 경우 반도체사업 시장에서 막강한 지배력을 갖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타격이 될 것으로 우려됐기 때문.
그럼에도 삼성전자와 샌디스크의 시장 점유율 경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전자상거래사이트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점유율 33.6%로 1위에 올라있다. 도시바가 18.6%로 2위, 샌디스크가 15.8%로 3위를 차지했으며, 마이크론(13.9%), SK하이닉스(10.1%), 인텔(8.0%) 등이 뒤를 이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