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가장 멍청한 스승이고, 실패는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성공 경험은 넘치지만 실패 경험은 부끄러운 일로 치부해 감추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패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일도 많습니다. ‘망했어요‘에서는 도전했다 실패의 쓰라린 맛을 본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봅니다. 그들이 겪었던 경험, 고충, 고난은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타산지석이자 오답 노트가 될 것입니다. |
김태용 씨(25)는 지난 2014년 만 23세에 가구 제조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현재는 미디어 스타트업으로 방향을 바꿔 ‘ALT’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 17일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김태용 씨를 만났다.
▲ 김태용 씨 사업 당시 모습. 사진=김태용 씨 제공 |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20대를 위한 미디어 스타트업을 준비 중인 김태용이라고 합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요.
“디자인 상품을 제조해서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디자인상품 제조업을 했어요. 군대 전역해서 예술가, 신진작가의 그림을 IT 액세서리나 폰케이스 같은 데 프린팅 해서 판매하는 사업을 했죠. 그러다 사업을 통해 알게 된 분이 가구사업을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그분이 규모가 큰 친환경 소재를 만드는 회사를 했거든요. 사실 그냥 소재 만들어서 파는 것보다는 소재로 제품을 만들어서 팔면 회사한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나온 제안이었어요.”
―흔치 않은 제안이었네요.
“(그쪽에서는) 젊은 친구가 디자인 상품을 만들어서 매출을 내니까 작게라도 뭐 하나 해보면 괜찮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가구사업은 제조업의 꽃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수락했어요. 제품이 크고 품질관리가 특히 민감한 분야고, 그리고 원가는 비싼데 판매가격도 비싼 그런 분야기 때문이죠. 젊은 나이에 큰 회사에서 제품 제조 등을 지원받아 가구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게 기회다 싶어서 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깨달은 건 기회다 싶어 사업을 시작하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설명을 들어보면 제품 제조 전반에서 지원해준다고 하더라도 가구사업 분야 자체가 굉장히 리스크가 컸을 듯하네요.
“그렇죠. 리스크가 굉장히 컸죠. 당장 팀을 꾸리는 것만 해도 지금 하고 있는 ‘20대를 위한 미디어’ 같은 경우에는 ‘20대 이슈를 그들 관점에서 직접 조명하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 거니까 젊은 친구들아 이런 걸 준비하라는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매체가 없으니 우리가 해보자’ 이런 이야기 정도만으로도 팀이 꾸려집니다. 하지만 가구 제조업은 팀을 꾸리는 데도 힘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세요.
“가구사업에선 타깃 자체를 신혼부부에 맞췄어요. 가구 자체도 가볍고 말랑말랑하고 변형 가능해서 신혼부부가 가구시장에서 제일 큰 시장이기도 하고, 집이 좁아 공간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아 그렇게 타기팅했어요. 하지만 제 주변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해 심적으로 공감을 하거나 그러진 못한 것 같아요. 문제인 건 알겠는데 제 또래들 사이에서 자기 일인 양 공감되진 않았던 거죠. 그래도 그때는 돈은 있었으니까 ‘월급 이만큼 줄게 같이하자’ 이렇게 팀을 모아가지고 시작이 됐죠. 그래서 먼저 가치나 비전을 공감해야 한다는 팀 꾸리기의 첫 단추가 거기부터 좀 잘못 끼워진 게 아닌가 싶어요.”
―팀 구성은 어떻게 했나요.
“잘 아는 건축디자이너한테 디자인을 맡기고, 나머지 물류나 제품 제조 등은 직원을 따로 뽑았죠. 처음에는 신생 회사로 지원자도 적고, 합격해도 나오지도 않고, 그러다보니까 채용 분야에서도 실수를 많이 했어요. 비전을 바탕으로 모였다기보다는 일단은 당장 해야 하니까 모였죠.”
―소설 <안나 까레니나>의 첫 구절인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처럼 안될 때는 다양한 이유가 겹칠 것 같은데.
“사업이 망할 땐 ‘복합적인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서’ 망한다고 생각해요. 꼼꼼하게 리스크를 따져볼 수 있도록 충분히 몰입할 수 있어야 하고,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도록 작고 유연하게 운영했어야 했는데, 둘 다 실패했다고 봐요.”
―제품 준비는 잘됐나요.
“사실 제품 개발에서 출시하는 데까지는 꽤 재미있었어요. 왜냐하면 제품제작비, 샘플비 이런 거는 협력 공장에서 다 대줘서 샘플을 마음껏 제작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 제 돈으로 했으면 진짜 못해볼 경험이었어요. 처음으로 제품을 대량생산했는데, 이게 트럭이 다섯 대 넘게 오는 거예요. 예상보다 부피가 훨씬 컸어요. 그때 생활하던 공간이 사무실이 열몇 평이었는데, 창고를 아직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물량을 전부 감당할 수 있는 창고는 너무 비싸고, 판매처는 생각보다 잘 뚫리지 않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 실패와 성공은 한 줄 차이. |
―문제가 하나가 아니었나 보네요.
“좋은 제품을 만들자! 하고 원가를 크게 고려하지 않고 좋다는 소재들은 제품에 다 때려 넣었어요. 원가가 지나치게 높아졌지만, 판매가격을 더 높일 수는 없었어요. 나름 프리미엄을 표방한다고 가격도 비싸게 잡았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유통수수료를 물고 소셜커머스나 홈쇼핑 등에 입점하기도 어려웠어요. 그래서 블로그, 페이스북, 육아 카페 등을 활용해 직접 마케팅을 했는데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하루에 아기 소파 15개는 팔아야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겨우 한두 개 팔았습니다.”
―손해를 좀 보더라도 증정이나 이벤트로 알려보겠다는 생각도 했나요.
“몇 개 증정해본 적은 있죠. 어린이 도서관이나 키즈카페 중에서 구매력 있는 사람들이 오는 강남 같은 데에 몇 개 넣어보고 전단지도 돌려보고 했죠.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거의 똑같았어요.”
―직원들 월급은 어떻게 했나요.
“협력하는 소재공장에서는 제조원가를 다 감당해줬어요. 직원들 월급은 벌어놨던 자금과 정부지원 받는 것으로 충당했어요.”
[망했어요] 가구제조 스타트업 김태용 스토리 2로 이어집니다.
김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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