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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알앵알] 냉알못, 필동면옥에 가다

2016.09.01(Thu) 15:46:28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반가운 소식입니다. 오늘만 버티시면 내일부터는 시원할 가을날씨…왱알앵알”이라는 기상청의 발표와 달리 폭염은 지치지도 않고 힘을 내고 있다. 이럴 때 꼭 그런 사람이 있다. “뜨끈한 복지리라도 먹자.” 맘은 이해하겠는데, 지금은 곤란하다 잠시만 기다려달라. (이 글은 무더위가 심했던 8월 23일 있었던 일이다. 한 주 만에 복지리가 어울릴 날씨가 될 줄은 몰랐던 내 책임이다. 지난 무더위를 추억으로 곱씹으며 읽어주시길 바란다.)

   
 

이런 폭염 속 가장 좋은 음식은 역시 냉면이다. 물론 냉면은 참으로 조심스러운 음식이다. ‘면스플레인’(냉면에 대해 자꾸 가르치려 드는 자세나 마음가짐)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냉면에는 엄격한 잣대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정치 9단인 것처럼 냉면에 관해서는 모두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라도 된 듯하다.

그래도 도전하지 않을 수 없다. 무더위가 한창인 8월 23일. <청춘씨:발아> 활동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구현모 씨, 김혜지 씨, 박진영 씨와 함께 충무로에 위치한 필동면옥을 찾았다. 특히 구 씨는 태어나서 냉면을 처음 먹어본다고 고백해 그의 후기도 궁금했다. 필동면옥은 흔히 서울 평양냉면집 ‘4대 천왕’으로 꼽힌다. 4대 천왕인 만큼 점심이 한참 지난 시간에도 꽤 사람이 들어차 있었다.

일단 필동면옥에 입성하자마자 별 이야기도 없이 냉면 네 그릇과 수육을 주문했다. 을지면옥에서 맛 본 편육을 주문하려는 의도로 수육을 주문했지만, 필동면옥의 수육은 소고기 삶은 것을 뜻했다. 을지면옥의 편육과 같은 메뉴의 이름은 제육이었다. 제육이라곤 제육볶음밖에 모르지만 어쨌건 이곳의 메뉴는 그렇게 꾸려져 있다. 이날 모인 4인은 마치 전투에 임하는 전사들처럼 비장하게 자신 앞에 놓이는 냉면을 바라봤다.

먼저 태어나 냉면을 처음 먹어본다는 구 씨가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셔 보았다. 구현모 씨는 “망한 오이냉채…. 지금까지는 얼음이 녹은 오이냉채의 맛이 난다”고 했다. 냉면애호가인 김혜지 씨는 “오이냉채는 신맛인데 냉면에는 신맛이 없다”며 구 씨의 말을 반박했다. 구 씨는 방향을 바꿔 “얼음이 녹은 뼈 국물. 뼈의 맛이 난다”고 말했다. 주위에선 “뼈 맛이 진짜 나냐”며 구 씨의 의견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필동면옥의 국물 맛은 ‘슴슴하다’에다 말로 표현 못할 애매모호한 무언가가 더 있었다. 디자인에서 1%의 차이가 감각적이다, 촌스럽다를 가르는 것처럼 미묘한 차이였다. 냉면 그릇 속 면발은 푸짐해 보였다. 처음 나온 수육은 부드러웠고 고소했다. 같이 나온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달콤한 맛에 새우깡에 손이 가듯 자꾸만 손이 갔다. 하지만 한 접시에 2만 원이 넘는 가격은 너무 비쌌고, 양은 너무나 작았다.

또 다른 냉면애호가인 박진영 씨는 “면이 엄청 많다. 다 먹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말과 달리 앞에 놓인 그릇에선 국숫발이 빠르게 줄고 있었다. 김혜지 씨는 “국물이 너무 맛있다”며 그릇째 들고 거침없이 국물을 마셨다. 이곳의 제육까지 맛봐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점점 현실화됐다.

   
 

제육 한 접시를 더 주문했다. 보통 주문할 때 예의상 사양이라도 하는 미덕 대신 그들의 눈동자에선 가득찬 무언가가 반짝였다. 이어 나온 제육은 정말 뛰어났다. 꼬들꼬들하면서 부드러운 고기가 일품이었다. 자칭 평양냉면계 권위자들이 ‘제육은 이곳이 최고’라고 꼽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구현모 씨는 “평양냉면을 처음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호감이다. 또 먹고 싶을 것 같다”며 “윤 아무개 씨 등 주위에 냉부심’(평양냉면에 대한 자부심)을 부리는 자들 때문에 꺼려왔지만 앞으로 을밀대 등 다른 평양냉면 집도 여러 곳 가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구 씨는 말하는 와중에도 제육을 향해 젓가락을 바삐 놀렸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면발의 메밀 함량이나 국물의 농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논하기는 힘들다. 다만 한 그릇을 뚝딱하고 나니 각자의 얼굴에선 만족스런 웃음이 희미하게 감돌았다. 입구를 나서는 그들에게선 평양냉면의 알 수 없는 맛처럼 알 듯 모를 듯한 뿌듯함이 감돌았다. 훌륭하게 전투를 마치고 돌아가는 4인의 전사들처럼 그들의 식사는 성공적이었다.

새벽 2시 기사를 쓰다 그날의 전사 중 구현모 씨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 제육이 또 먹고 싶다.” 잠시 후 구 씨에게서 답장이 왔다. “거기 제육 미쳤음. 레알(정말) 개찰지게 녹음” 얼마 뒤 서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필동면옥에 있을 것만 같았다.

김태현 기자

toy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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