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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인류세, 여섯 번째 대멸종

2016.08.31(Wed) 11:30:41

우리 인류가 직접 당하지만 않는다면 멸종(滅種)은 무조건 슬퍼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사라지는 생명의 입장에서는 아쉽고 억울하겠지만 지구 생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일이다. 지구 환경은 변하는데 어떻게 모든 생명이 멸종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운 생명이 사라져줘야 그 자리에 환경에 잘 적응할 새로운 생명이 등장할 수 있다. 그러니까 멸종이란 자연환경이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이런 과정이 바로 진화다.

멸종은 생태계를 어떤 위험에 빠트리지 않는다. 한두 종이 멸종되어도 생태계에는 별 탈이 없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에 다시 새로운 생명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태계의 빈 틈새를 새로운 종이 채우기도 전에 또 다른 틈새들이 자꾸 생길 정도로 멸종의 속도가 빠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먹이그물이 붕괴되면서 결국 모든 종이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대멸종이 일어난다.

지금까지 지구에는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 가장 큰 대멸종은 지금부터 약 2억 4500만 년 전에 일어났다. 이때 지구 생명체의 95퍼센트가 멸종했다. 95퍼센트의 생명이 멸종했다는 것은 100마리 가운데 95마리의 생명이 사라졌다는 말이 아니다. 100종류의 생명 가운데 95종류가 한 개체도 살아남지 못하고 싹 다 죽어서 멸종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종류의 생명은 잘 살아남은 게 아니다. 이들도 거의 죽었다. 다만 멸종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대멸종과 함께 지질시대는 고생대에서 중생대로 넘어갔다.

   
다섯 번째 대멸종 때 공룡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미지=J.T. Csotonyi/CC BY 2.5

대멸종은 말 그대로 대재앙이다. 하지만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을 우리가 안타까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덕분에 우리 인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6600만 년 전 지름 10킬로미터짜리 거대한 운석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와 충돌했다. 열폭풍, 쓰나미가 몰려오고 이어서 지진이 발생하고 화산이 폭발하면서 지구 기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70퍼센트 이상의 생명이 사라졌다. 육지에서는 고양이보다 커다란 동물은 모두 사라졌다. 이때 커다란 공룡들 역시 모두 사라졌다. 다섯 번째 대멸종이었다.

나는 열렬한 공룡 마니아다. 하지만 거대 공룡을 전멸시킨 대멸종이 전혀 싫지 않다. 공룡이 아무리 귀해도 인류보다 귀하지는 않다. 공룡이 사라졌기 때문에 인류가 등장할 수 있었다. 공룡을 전멸시킨 다섯 번째 대멸종 만세!

공룡이 멸종한 6600만 년 전부터 비로소 신생대가 시작되었다. 신생대는 제3기와 제4기로 나뉘는데, 260만 년 전에 시작한 신생대 제4기는 다시 플라이스토세와 홀로세로 나뉜다. 홀로세는 약 1만 1700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는 시기다.

지금까지의 지질시대는 지각과 기후의 변동으로 정해졌다. 그런데 지질학자들은 최근 인류에 의하여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재의 지질시대인 홀로세를 끝내고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공식화하자고 주장한다. 이것을 결정할 권위는 여태까지 지질시대를 결정해왔던 국제층서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에게 있다. 아마도 올해 말에는 인류세가 도입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세는 언제부터일까?

   
지질시대 표에 곧 인류세가 추가될 것이다. 이미지=theoldspeakjournal.wordpress.com

홀로세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직후에 시작된다. 이때부터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홀로세는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황당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전까지 38억 년 동안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은 지구 환경에 적응하며 살았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라졌다. 생명의 존재는 자연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환경에 적응하는 대신 환경을 바꾸는 생명체가 등장한 것이다. 바로 농사꾼이다.

이들은 농사를 짓는답시고 멀쩡한 숲과 들판에 불을 질렀다. 굽이굽이 알아서 잘 흐르던 물길을 바꾸고 물을 가두었다. 필요 이상으로 거대한 포유류들을 사냥해서 싹쓸이했다. 인류의 활동으로 인해 바다와 대기 그리고 야생 환경이 급격히 변했다. 일군의 과학자들은 신석기 시대의 시작점을 인류세의 시작점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의미가 없다. 인류세가 지금 정해놓은 홀로세와 같기 때문이다.

다른 그룹은 산업혁명기를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석기 시대 시작부터 산업혁명 이전까지 멸종한 생물보다 산업혁명 이후에 멸종한 생명이 더 많다는 것을 강조하는 그룹이다. 지금의 멸종 속도는 역사상 가장 큰 대멸종인 세 번째 대멸종보다 더 빠르다.

하지만 지질시대를 단지 멸종만으로 나눌 수는 없다. 먼 후세의 어떤 생명체 또는 외계에서 온 지적생명체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지층의 특징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1950년을 인류세의 시작으로 보자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1950년대부터 전 세계에서 벌어진 핵실험으로 방사능 낙진이 지층 흔적을 남긴다. 플라스틱과 콘크리트 같은 기술화석(technofossil)이 지층에 축적되고 있다. 이번 주에 인류세 워킹 그룹(Anthropocene Working Group, AWG)이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만나서 1950년을 인류세의 출발점으로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말에는 국제층서위원회가 인류세를 지질시대 표에 도입할 것이다. 그 시점이 산업혁명기와 1950년 가운데 어느 것이 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인류세가 언제 시작되든 우리 인류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대멸종 기간이 500년이 될지 1만 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또 몇 퍼센트의 생명이 사라질지도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을 보면 당시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인류세의 최고 포식자는 누구인가?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과학계의 소문난 입담꾼.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를 자처한다.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을 역임한 후 현재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공생 멸종 진화>, <그리스 로마 신화 사이언스>, <과학하고 앉아 있네> 등 70여 권의 책을 쓰고, 감수하고,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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