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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공시] 현대차 ‘녹십자생명 인수’ 부인 2달만에 변심

2011-8-30 야심차게 인수했지만 적자수렁 ‘처참한 성적표’

2016.08.30(Tue) 16:28:31

“계열사를 매각한다.” “합병설은 사실이 아니다.” “대표이사가 주식을 장내매수했다.”
기업들이 금융감독원에 신고하는 경영공시는 기업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반대로 기업의 과거 공시를 보면 해당 기업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때그공시’ 코너에서는 과거의 공시를 통해 현재 한국 기업의 히스토리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오늘, 2011년 8월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는 현대자동차와 녹십자홀딩스에 ‘현대자동차의 녹십자생명 인수 추진설’에 대해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당사는 녹십자생명 인수를 검토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녹십자홀딩스는 “당사는 녹십자생명보험 지분 매각과 관련해 현재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된 바 없다”며 “이와 관련해 추후 구체적인 사항이 확정되는 대로 즉시 또는 1개월 이내에 재공시하겠다”고 미확정 공시했다. 부인과 미확정 유보로 어감은 달랐지만, 당시로서는 녹십자생명의 인수가 추진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는 공통된 의견을 보인 것이다.

   
▲ 현대자동차그룹은 녹십자생명 인수 추진을 부인했다가 두 달도 안 돼 동사를 인수했다.

그런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경영진에게 갑자기 무슨 바람이라도 들었던 걸까. 공시를 발표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같은해 10월 21일, 현대차그룹은 녹십자홀딩스가 보유한 녹십자생명 지분 93.6%(1756만 4630주·보통주 기준) 전량을 모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녹십자홀딩스의 녹십자생명 지분을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와 기아자동차, 현대커머셜이 각각 37.4%, 28.1%, 28.1%씩 인수하는 방식으로, 인수가는 2283억 원 수준이었다.

녹십자생명은 녹십자그룹이 지난 2003년 7월 대신생명을 인수해 설립한 생명보험사다. 2010년 회계연도 기준 총자산은 2조 9732억 원, 영업수익 1조 362억 원, 영업이익 78억 원, 당기순이익 53억 원 수준으로 당시 23개 생명보험사 중 자산기준 17위였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당시 HMC투자증권-현대캐피탈-현대카드-현대커머셜로 이어지는 금융사업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어 녹십자생명까지 인수하게 되면서 보험업을 추가, 삼성그룹과 같이 은행·손해보험을 제외한 금융계열사의 틀을 갖추게 됐다.

인수를 발표하며 현대차그룹 측은 “자동차 할부금융 기반을 강화하고 자동차 구입 고객 편의를 증대하는 등 고객서비스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며 “동시에 소득수준 향상과 고령화에 따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생명보험 시장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녹십자생명 인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2년 안에 흑자를 내겠다”는 자신감을 비추기도 했다.

   
 

이러한 시너지 기대감 속에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녹십자생명은 현대라이프생명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하지만 현대라이프생명의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출범과 동시에 적자의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수익성과 건전성이 모두 악화된 것이다.

현대라이프생명은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각각 404억 원, 371억 원, 665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두 차례에 걸쳐 2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다섯 차례에 걸쳐 총 1600억 원의 후순위채권을 발행해 자본을 메꿨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2월 대만의 푸본생명을 파트너로 맞아들이며 해법을 모색했다. 푸본생명은 현대라이프생명 유상증자에 2200억 원을 투입, 지분 47.98%를 확보해 2대 주주로 등극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적자는 계속됐다. 현대라이프생명은 지난해에도 영업수익 1조 5267억 원에 영업손실 455억, 당기순손실 485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금융감독원이 지난 24일 발표한 ‘6월 말 보험회사 지급여력비율(RBC) 현황’에 따르면 현대라이프가 RBC 179.0%로 25개 생보사 중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RBC는 보험사가 고객에게 보험금 지급이 가능한 여력을 보여주는 수치로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쓰인다. 현대라이프가 25개 생보사 중 재무건전성이 가장 낮다는 의미다.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의 생보사라고 하기에 너무나도 민망한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민웅기 기자

minwg08@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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