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법조 로비’ 사건이 자연스레 법원, 검찰 간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갈등의 불똥은 굵직한 경제사범 수사로 튀고 있다. 법원이 검찰이 청구한 주요 사건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잇달아 기각하기 시작한 건데, 검찰 내에서는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냐”는 반발도 나오고 있다.
▲ 법원-검찰 간 갈등이 롯데 수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7월 12일 롯데홈쇼핑 재승인 로비의혹을 받고 있는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이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위해 출석하고 있다. 법원은 강 사장의 구속영장을 증거부족으로 기각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
먼저 부장판사 수사 진행 상황부터 짚어보자.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는 정운호 법조비리에 연루된 김 아무개 부장판사가 뇌물성 물품들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김 판사와 ‘친분’을 쌓고 싶었던 정운호 전 대표는 애정 공세를 퍼부었다. 김 판사의 딸이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으론 부족했는지 차도 가져다가 바쳤다.
“차가 필요하다”는 김 판사 부인의 말에 성형외과 의사인 이 아무개 씨를 통해 5000만 원 상당의 명품 외제차 ‘레인지로버’를 공짜로 건넨 것. 또 정운호 전 대표의 돈으로 해외여행도 함께 다녀오기도 했는데 법원이 비상에 걸린 것은 당연한 결과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판사의 비위가 드러나면 법원 개혁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인데, 법원은 김 판사 관련 비위를 집중 보도한 매체 기자의 취재 과정까지 확인해 문제를 제기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법원은 기사 출처로 검찰을 의심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검찰에서 일부러 법원을 흠집 내려고 수사 상황을 흘린 것 같다”고 추측했다. 사실 홍만표, 진경준 전 검사장들의 잇따른 구속 기소로 자존심을 구긴 검찰이 판사 비리 수사를 돌파구로 삼아 ‘검찰-법원 간 균형을 맞추는 동시에 국정감사 타깃 만들기’에 나설 것이라는 건 법조계 관계자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 ‘나 살고자 서로 등 떠미는 구조’인 셈인데, 법원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 모양새다. 검찰이 진행 중인 주요 사건 피의자들의 구속영장을 잇달아 기각하며, 검찰의 ‘칼’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 대법원 전경. 사진=구윤성 기자 |
그 중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롯데그룹 수사팀. 정부를 상대로 270억 원대 ‘소송 사기’를 벌인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에 대해 법원은 영장 기각을 결정했다. 허수영 사장이 혐의 일부를 인정했음에도 증거 부족을 문제 삼은 것. 법원은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같은 취지로 기각하며 ‘속전속결’을 외치던 롯데그룹 수사팀의 발목을 잡았다.
혐의점을 찾아내 일부 인정까지 끌어낸 수사팀 내에서는 “수사를 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롯데그룹 임원들은 신격호, 신동빈 등 오너 일가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조사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영장까지 기각되면서 더더욱 진술을 받아내기 어려워졌다. 심지어 정승인 코리아세븐 대표는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면서 “불필요한 진술로 회사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며 바지 속에 ‘안중근’이라는 세 글자를 적어 검찰 수사를 받았을 정도라고 하니, 영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검찰이 ‘좌절’한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법원은 또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넥센 구단주 이장석 씨는 물론, 배기가스 조작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박동훈 폭스바겐코리아 초대사장에 대해서도 영장 발부를 거부했다. 올해 초 레킷 벤키저 가습 살균제 사건 때와 정운호 법조 로비 사건 때만 해도 영장 기각이 거의 없었던 터라, 검찰 내에서는 “법원이 갑자기 영장 발부 판단 기준을 높인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일관된 기준으로 영장을 발부하면 우리도 거기에 맞춰서 자료 등 증거를 제시하는데, 최근 부장판사 수사를 앞두고 갑자기 기준이 강화된 감이 있다”고 토로했다. 영장전담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법원이 유일하게 검찰을 막을 수 있는 카드가 영장 기각“이라며 “부장판사를 염두에 두고 영장 기각 결정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영장을 기각했을 때 부장판사 때문에 그랬다는 해석이 나온다는 것을 알면서 결정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남윤하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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