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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핏에서] 부드러운 착륙이 기장의 실력일까

2016.08.22(Mon) 14:24:08

[하늘을 나는 비행기. 상상하면 여행의 기쁨에 신이 나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테러의 위협, 사고 가능성 때문에 겁이 나기도 합니다. ‘칵핏에서’는 비행기의 조종석 칵핏(cockpit)에 앉아서 조종하는 현직 조종사들이 비행기, 항공사, 조종사 등 사람들이 항공업계 전반에 갖고 있는 오해와 편견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는 코너입니다. 실제 조종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기분 좋은 휴가철. 즐거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오른다. 제주로 가는 승객도 있겠고 방콕으로 가는 승객도 있을 테고 괌으로 가는 승객도 있을 것이다. 목적지가 다가오고 좌석벨트 사인이 세 번 울린다. 그 소리와 동시에 객실 승무원의 방송이 나온다.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좌석 테이블과 창문 가리개를 열어주시고 좌석 등받이를 제자리로 해주십시오. 그리고 꺼내놓으신 짐들은 앞좌석 밑이나 선반에 올려주십시오.”

10여 분 뒤 착륙 장치가 내려오고 좌석벨트 사인이 한 번 더 켜지면서 비행기가 시끄러워진다. 객실승무원이 “우리 비행기는 곧 목적지 공항에 착륙합니다. 좌석벨트를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십시오”라고 방송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마른하늘에 비행기가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엔진출력이 들어갔다 빠졌다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비행기는 위아래로 마구 흔들린다. 불안한 마음에 긴장이 된다. ‘혹시 추락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 그러다가 땅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꽝 하고 공항에 내린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애인에게 한마디할 수 있다. “전에 탄 비행기 기장은 내린 줄도 모르게 착륙하던데. 이 기장은 실력이 형편없구나. 허리 나가겠다.”

하지만 비행기의 착륙이 늘 일정하지는 않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비행경력 15년에 총 비행시간 7800시간, 현재 타고 있는 제트기만 3800시간의 기장 시간을 가졌고 이착륙도 몇천 번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같은 랜딩(착륙)을 할 수가 없다. 실력이 있다고, 늘 똑같이 착륙하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항공기의 무게, 활주로의 길이, 제동거리, 날씨 등등. 이중에서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이 활주로 길이와 제동거리다. 일단 필자가 조종하는 비행기는 보잉737-800 기종이다. 승객은 180명 이상 탑승하고, 최대 이륙중량은 7.8톤, 착륙 중량은 6.4톤 정도이다. 하지만 보통 5톤에서 6톤 정도의 무게로 착륙한다.

착륙 중량에 따라 속도는 차이가 있지만 대개 150노트(약 시속 278㎞)의 속도로 접근한다. 6톤에 근접하는 쇳덩어리가 시속 278㎞로 착륙을 하게 되면 제동거리 또한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다. 5톤 정도면 약 1.3~1.5㎞, 6톤 정도의 무게이면 1.5~1.7㎞ 정도의 제동거리가 필요하다.

예전에 제주도에서 A 항공사 비행기의 앞바퀴가 파열된 사고가 있었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파열되고도 수킬로를 달렸다고 보도했다.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아마도 기자는 비행기 착륙이 도로에서 자동차를 세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항공기가 제동을 하는 데는 많은 거리가 필요하다. 제동을 위해 엄청난 브레이크 에너지를 쓰게 되는데 자칫 잘못하면 그 에너지로 인해 브레이크가 과열이 되고 심한 경우 브레이크가 녹을 수도 있다. 항공기 타이어가 파열될 수도 있다. 보통 공항의 활주로 길이는 3㎞ 정도이나, 간혹 등급이 낮은 공항의 경우 2㎞ 혹은 그 이하의 길이를 가진 공항도 있다. 긴 활주로를 가진 공항이라 하더라도 원활한 운영을 위해 활주로 중간지점에 설치된 고속 개방 유도로를 개방하도록 공항 내규로 정해놓아서 제동거리에 제약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드럽게 내리게 된다면 그것은 항공기 날개에 아직도 많은 양력(揚力)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착륙에서 플레어(flare)라고 하는 조종술이 있는데, 속도가 줄어드는 만큼 기수를 들어 양력을 계속적으로 발생시키면서 강하율을 줄여 땅에 내리게 하는 것이다. 이때 기수를 드는 만큼 속도가 줄어들지만 대신 그만큼 양력을 보상할 수 있기에 항공기가 적은 강하율을 유지하여 땅에 접지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착륙을 살살하게 된다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날개에 양력이 남아 있게 된다. 그 말은 비행기가 제대로 땅에 붙어 있지 않아서 제동력이 급감한다는 것이다. 바람이 강하거나 활주로 노면이 눈이나 비, 얼음 등으로 젖어 있는 경우에 이렇게 내릴 경우 접지력이 약해진다. 최악의 경우 항공기가 활주로에서 방향 조절을 할 수 없게 돼, 자칫 잘못하면 활주로 좌·우측 밖으로 나가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제동거리 또한 길어지게 되고, 역시 활주로를 넘어가는 상황도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바람이 심하거나 비가 오는 날엔 항공기를 강하게 땅에 접지를 시켜야 한다. 이를 항공업계에서는 펌랜딩(firm landing)이라고 부른다. 보통 소프트랜딩(soft landing)의 경우 항공기는 하중계수가 1.1~1.2G 정도, 펌랜딩의 경우 1.3~1.4G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하드랜딩(hard landing)이라 불리는 단계는 1.8G~2.0G 이상이고 2.1G 이상일 경우 기체 구조 점검을 한다. (G는 중력가속도로 롤러코스터가 공중제비를 돌 때 보통 1.5G~2.0G 정도가 나온다. 최신식 극강의 롤러코스라면 3G 이상이 나올 수 있다.)

보통 착륙할 때 텅 하는 느낌으로 내리는 것이 펌랜딩이다. 이렇게 내리게 될 경우 날개에 남아 있던 양력이 날개 표면에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다. 항공기를 땅에 더 강하게 접지하게 되고 이는 제동력을 상승시키게 된다. 날개에서 그라운드 스포일러(ground spoiler)라고 하는 조종면이 올라오면서 혹시라도 남아 있는 양력을 다 날려버리는 상황이 된다. 이후 트러스트 리버서(Thrust reverser)라 불리는 장비를 가동시켜 엔진 역추력을 만들어 비행기 제동장치의 하중(load)을 경감시켜서 비행기를 세운다.

   
 

비교하긴 조금 애매하지만 항공모함에 전투기가 내릴 때 꽝 하고 찍으면서 갑판에 설치된 착함구속장치(arresting wire)에 고리(hook)를 걸어서 세우는 장면과 비슷하다. 그것 또한 짧은 활주로에서 항공기를 빨리 접지해 장치에 고리를 걸어 제동시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혹시나 다음번에 비행기가 좀 강하게 내렸다는 느낌이 든다면 “기장의 실력이 형편없는 거다”라고 말하기 전에 기상 상태가 좋지 않거나, 활주로 노면 상태가 정상이 아니거나 바람이 지나치게 많이 불고 있어서 항공기를 빨리 세우기 위해 강하게 내렸다는 설명을 하면 애인이나 친구에게 좀 더 전문가적이고 멋있어 보이지 않을까.

스카이클리어(Skyclea·현직 민항기 조종사)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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