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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눈물, ‘관람’ 대신 ‘공감’을

2016.08.19(Fri) 18:25:36

꼭 1년 만이다.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그녀’를 만난 것이. 작년에는 <조선일보> 사옥에 있더니 이번엔 일민 미술관에 있다. 멕시코가 사랑하는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전시회 광고판 얘기다. 올해는 지난 5월 28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 미술관에서 전시가 진행 중이다.

   
▲ 지난 5월 28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프리다칼로&디에고리베라>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같은 화가의 전시가 2년 연속 열리는 것은 흔치 않다. 프리다 칼로 전시는 지난해 6월에서야 국내에서 처음 열렸다. 당시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모든 국민이 공공장소에 가는 걸 꺼리던 때였다. 92일 동안 프리다 칼로 전시를 찾은 관람객 수는 15만 2728명. 하루 평균 15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았다. 낯설 법도 한 이 여인의 전시는 결국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내가 어느 날 우연히 눈썹 짙은 여인의 자화상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왜 그랬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림을 그렸을 때 감정들이 느껴진다. 바람과 희망이지만 어둠, 슬픔, 좌절이 묻어나오는.”

한 관람객의 감상평이다. 어린 시절의 소아마비, 교통사고와 다리 절단,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불륜 그리고 여러 번의 유산까지. 대중에게 프리다 칼로는 고통의 표상이다. 그에겐 늘 ‘비운의 여인’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언론은 반복적으로 ‘여자로서 견디기 힘든’이란 표현을 썼다. 고장 난 척추뼈를 코르셋으로 지탱한 <부러진 척추>는 자연히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이번 전시의 메인작이기도 하다.

지난해 8월 6일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가 세상을 떠났다. 언론은 그를 ‘한국의 프리다 칼로’라 부르기도 했다. 칼로와 마찬가지로 작품 이상으로 험난한 삶이 주목 받은 화가이기도 하다. 두 번의 이혼과 비현실적인 그림체는 그 불행의 증거로 꼽혀왔다.

   
▲ 프리다 칼로에 대한 언론보도는 ‘고통’이 유독 부각된다. 출처=KBS 뉴스 캡처

물론 예술가의 불행한 삶은 대중에게 늘 관심거리였다. 고흐, 베토벤, 에곤 실레 그리고 이중섭이 그러했다. 예술은 삶을 반영하기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성의 고통은 관심을 넘어 때론 작품을 압도한다. ‘색채의 마술사’, ‘초현실주의 화가’와 같은 흔한 수식어 대신 프리다 칼로와 천경자 앞에 늘 ‘고통’이 붙는 까닭이다. 이혼과 신체적 결함은 그녀들만 겪은 아주 특이한 일이 아닐 텐데도 말이다. 때문에 프리다 칼로의 고통이 아닌 작품의 기술적 특징, 소재의 의미 등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몇 년 전 소설가 공지영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비슷한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1994년 첫 이혼에 대한 심경이 반영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발표한 이후 자신의 기사에는 모두 이혼 얘기가 붙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이후 작품보다는 ‘이혼한 여성작가’로 화제가 되고 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 소설가 공지영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언론이 작품보다 이혼 경험을 부각해 보도한다고 토로했다. 출처=MBC <황금어장> 캡처

미국의 평론가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한 즐길 거리’쯤으로 여기며 내 일이 아님에 안도하고 손쉽게 연민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에 의하면 타인의 고통은 언론과 콘텐츠 생산자에 의해 공감이 아닌 ‘관람’의 대상으로 쉽게 가공된다. 천경자와 프리다 칼로에 비운의 여인이라는 딱지를 너무 쉽게 혹은 과하게 붙이는 걸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8월 3일 개봉한 영화 <덕혜옹주>가 18일 기준 누적 관객 수 433만 명을 돌파했다. 정신병원 감금, 일본인과의 강제결혼, 귀국 거부. ‘비운의 삶을 산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라는 선전문구 아래 이목을 끄는 고통들이 언론을 통해 나열된다. 반면 이건, 이강 등 다른 황실 자제들과 차별화되는 덕혜옹주의 정치적 견해와 같은 중요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평생 고통을 고민한 평론가 수전 손택은 말했다. “고통 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라고.

박혜리 기자

ssssch33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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