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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현자타임] 중요한 건 ‘지여인’보다 끊임없는 노력이다

2016.08.19(Fri) 18:59:16

지난 8월 4일 <중앙일보>는 이메일 일문일답을 통하여 정은혜 전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의 근황을 전했다. 정 전 부대변인은 지난 봄 하버드대 존 F. 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의 입학 허가를 받아 곧 시작하는 가을학기에 앞서 여름학기 수업을 듣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근황을 전하는 과정에서 나온 정 전 부대변인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적지 않은 대중의 지탄을 받고 있다.

   
출처=하버드 공공정책대학원

“나는 한국에서는 지방대, 인문계를 나온 여성, ‘지여인’이다. 한 번도 정규직 직업을 가져본 적 없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위치인 나를 미국 하버드대에서는 인정해주었다. 그들은 내가 연봉을 얼마 받고,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에 관심이 없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내가 끊임없이 꿈을 추구해왔다는 것이다.”

이 발언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정 전 부대변인은 지방대, 인문계를 나온 여성으로서 자신이 하버드대학교에 입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끊임없이 꿈을 추구해왔던 자신의 노력’이라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입학원서에 동봉된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추천서 두 장이 하버드대학교 입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원의 입학 당락은 추천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연봉과 학교를 묻지도 않는 ‘탈 스펙’ 사회를 주장하며, ‘끊임없는 꿈의 추구’를 통해 일궈냈다고 주장하는 하버드 합격 또한 기득권만이 손에 쥘 수 있는 고유한 스펙을 활용한 결과일 뿐이므로, 오히려 자신의 자리에서 꿋꿋히 꿈을 쫓고는 있지만 박원순 시장이나 이해찬 전 총리와 친분이 있을 리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전 부대변인의 발언은 되레 상처가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합당하려면 다음과 같은 전제가 필요하다. 박원순 시장이나 이해찬 전 총리의 추천서가 정 전 부대변인의 노력없이 공짜로 얻어진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만약 이 두 사람과의 친분이 부모님의 인맥이나 사금으로 만든 자리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그 두 장의 추천서 또한 당연히 기득권을 대물림하는 방편이 된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이나 이해찬 전 총리와의 친분이 본인의 정당한 사회활동의 결과로서 얻어진 것이라면 그 두 장의 추천서만큼 끊임없이 추구한 꿈을 보증해주는 증표도 없다.

그렇다면 정 전 부대변인은 둘 중 어느 쪽이었을까? 같은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정 전 부대변인은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의 캠프 부대변인을 맡았으며, 더불어민주당 전 부대변인 자리는 이해찬 전 대표가 직접 임명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정 전 부대변인은 민주정책연구원 미래기획실 인턴연구원, 민주통합당 제19대 총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투표참여운동본부장, 제18대 대통령선거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선거캠프 청년정책단장,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청년위원회 운영위원 등의 자리를 두루 거쳤다.

물론 이 모든 타이틀에 정 전 부대변인이 진실로 열과 성을 다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가 2004년부터 10년간 민주당의 선거운동에 꼬박꼬박 참여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한 우물 파듯 10년간 한 단체에 봉사했는데 그 단체의 지도자들이 그 봉사자에게 추천서를 써주지 않는다면 그 지도자들이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당연히 박원순 시장이나 이해찬 전 총리의 추천서는 정 전 대변인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 정당히 얻은 결과물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 전 부대변인의 발언이 모든 비판에서 마냥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정 전 부대변인의 발언 중 “대한민국에서 이런 (지방대, 인문계, 여성, 비정규직) 위치인 나를 미국 하버드대에서는 인정해주었다”는 발언은 경솔한 발언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정 전 부대변인은 본인 말대로 지방대, 인문계 출신 비정규직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도 대한민국에서 제1 야당 부대변인까지 오르며 인정받지 않았는가. 

애초에 정 전 부대변인이 합격한 하버드대 존 F. 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 프로그램은 국제개발을 위한 차세대 리더를 양성하는 2년 석사과정으로 최소 3년간 정부 관련 일을 한 사람들이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해당 학위 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70%가 개발도상국에서 온 유학생들이다. 해당 대학원은 정 전 부대변인의 지난 10년간의 당원 경력,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연세대학교 정치학과 석사 학위 획득, 위의 노력들로 얻은 부대변인이라는 타이틀과 이러한 이력들을 보증하는 박원순 시장과 이해찬 전 대표의 추천서를 고려하여 정 전 부대변인의 입학을 허가한 것이지, 대한민국에서 부정당한 ‘지방대, 인문계, 여성, 비정규직’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출처=하버드 공공정책대학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는 사실은, 하버드 공공정책대학원 합격으로 이끈 눈부신 ‘스펙’이 한때는 ‘지여인’이었던 정 전 부대변인 본인의 끈임없는 노력으로부터 성취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인식할 때에, 현재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뭇 ‘지여인’들도 정 전 부대변인의 발언을 ‘알고보니 금수저’라는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 전 대변인 또한 어설픈 ‘사회적 약자 공감 마케팅’적 발언보다는, 지여인으로서 대기업 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제도권적 삶의 목표를 수용하지 않고 자신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위치를 끊임없이 고민해왔던 노력에 대해 소박하게 말하는 것이 더 호소력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민성 국방과학연구소 전문연구요원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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