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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핏에서] 왜 항공사는 아픈 사람들의 탑승을 거절할까

2016.08.19(Fri) 14:20:04

[하늘을 나는 비행기. 상상하면 여행의 기쁨에 신이 나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테러의 위협, 사고 가능성 때문에 겁이 나기도 합니다. ‘칵핏에서’는 비행기의 조종석 칵핏(cockpit)에 앉아서 조종하는 현직 조종사들이 비행기, 항공사, 조종사 등 사람들이 항공업계 전반에 갖고 있는 오해와 편견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는 코너입니다. 실제 조종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왜 항공사는 아픈 사람들의 탑승을 거절할까? 사람이 몸이 아프면 아무래도 말이 통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서 치료를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선진국이라면 만만치 않은 치료비와 외국어 울렁증 때문에 그럴 것이다. 후진국이라면, 열악한 의료시설을 본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어서 빨리 의료보험이 잘돼 있는 한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 한국말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국적기를 타고 싶은 생각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외국항공사에 비해 비싼 항공료를 냈으니까 이제 그 덕 좀 보자는 마음도 생길 수 있다. 그런 여러 가지 마음으로 공항에 와서 대뜸 내가 컨디션이 안 좋으니까 좀 편한 좌석 좀 달라고 했다가 갑자기 일이 꼬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지금부터 오해하지 말고 잘 읽으시길. 이 글은 결코 아플 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거나, 아픈 것을 감추어야 비행기를 탈 수 있다거나 뭐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항공사 직원으로서, 왜 환자를 관리하는 데 그리 어려운 절차가 생기는지 이해를 돕고자 쓴 글이다.)

일단 국적기 탑승거부를 검색해보면, 2011년 5월 시애틀발 인천행 항공기에 유방암 4기 환자인 당시 62세 크리스털 김 씨 사례가 제일 첫 번째로 나온다.

당연히 가족들은 비행기를 탑승해도 좋다는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고, 항공사 직원에게 특별히 잘 돌봐달라고 부탁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담당 직원은 이때부터 아주 복잡한(?!) 승인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일단 상급자, 보통은 지점장에게 보고를 한다. 그럼 지점장은 본사에 보고를 하고 탑승을 시켜도 되는지 승인을 받아야 한다. 본사에는 통제센터라는 부서가 있는데, 여기에는 의사가 별도로 근무하지는 않는다.

즉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듯이(?!) 9시부터 5시까지만 근무를 한다. 2011년에는 비행기가 몇 시에 출발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하계 스케줄 기준으로 하면 오후 2시 15분에 출발한다. 환자라면 다른 사람보다 서둘렀을 테니까 3시간 전쯤에 공항에 도착했다고 하면 아마도 11시 정도에 도착하지 않았을까. 여름에는 미주지역이 서머타임이 적용되니 한국과 15시간 차이가 나니까 한국은 새벽 3시 정도 됐을 것이다. 자, 그럼 통제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새벽 3시에 집에서 한창 잠에 빠져 있는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잠을 깨워야 할 것이다. “저기, 유방암 4기 62세 환자라고 하는데 탑승을 시켜도 될까요?”

   
 

신문기사에 의하면, 당시 승객은 비행기에 탑승해도 좋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잠시 관점을 옮겨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병원에 가보면 꼭 그런 경우가 있다. 혈액 검사한다고 피도 뽑고 엑스레이 찍는다고 해서 다했는데, 큰 병원 가면 처음부터 전부 다시 해야 한다. 아마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 다른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6년 9월 로마에서 49세의 여성이 8박 9일의 이탈리아 단체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국적기에 탑승 후 사망했다. 탑승 수속 당시 여행 중 기력을 많이 소진한 데다가 전날 음식(라면)을 잘못 먹고 체해 몹시 탈진한 상태였다. 병색이 완연했고, 부축이 없이는 걷기도 어려웠다. 결국 휠체어를 타고 탑승했다.

이륙 후 1시간 40분 정도 지나면서부터 병세가 악화됐다. 매우 위험한 상태를 보였고 기내에서 수액과 링거 주사, 심장마사지 등 응급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8시 55분(한국시각)쯤 깨어나지 못하고 결국엔 사망했다. 이후 이 사망사건을 가지고 유족과 항공사 및 해당 여행사 가이드 간에 복잡한 소송과정을 거쳤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후속기사가 없어서 필자도 잘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 이렇게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처리가 되는지, 항공사 승무원 입장에서 설명을 해드리고 싶다.

일단 승객에게 이상증상이 발견되면, 제일 먼저 객실승무원이 응급조치를 하면서 기장에게 보고한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조종사는 결코 조종석을 떠나면 안 된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객실 사무장과 의사 간에 내용을 전달하는 기장은 자기 눈으로 환자의 상태를 보지 못하고, 모든 것을 사무장을 통해 듣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가장 좋은 경우는 닥터페이징이라고 해서 기내방송을 해서 혹시라도 있을 의사를 찾아보는 것이다. 의사가 있으면 좋은데, 없으면 이거 야단난다. 간혹 객실 승무원중에 응급구조사 자격증 또는 간호사자격증을 가진 승무원들이 있는데 많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는 숨넘어가고 있다. 사무장은 응급 조치를 하면서 인터폰으로 기장에게 보고한다. 기장은 SATCOM이라고 해서 비싼 위성전화로 통제센터나, 급하면 의사 집으로 직접 전화해서 상황을 중계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게 의사의 전공이 환자 병과 맞으면 상관없겠지만, 안 맞으면 또 뺑뺑이를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지시하면, 사무장에게 지시해서 EMK라고 하는 기내에 비치된 비상의료장비를 꺼내서 처치에 들어간다. 이걸 또 기장은 인터폰으로 사무장에게 전달하고, 사무장은 또 객실승무원에게 설명해야 한다.

두 가지만 명심하자. 조종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의사·간호사 자격증이 없다. 그래서 몇 단계나 거쳐서 설명해야 한다. 어릴 적 방학숙제로 종이컵에다 실을 연결해 전화기를 만들어 이야기하던 것을 생각해보라.

   
 

두 번째로 다행히 환자의 상태가 조금 호전됐다고 하자. 이제 결정을 해야 한다. 목적지까지 10시간을 계속 비행해서 갈 것인지, 다시 출발지인 로마공항으로 내릴 건지. 일단 기술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항공기에는 최대착륙중량(Maximum Landing Weight)이라는 제한사항이 있다. 만약 이보다 무게가 더 나가는 상태에서 비행기를 착륙시키려고 하면, 바퀴(Landing Gear)가 접지 시 항공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아주 심한 경우, 충격에 의해 바퀴가 날개를 뚫고 나올 수도 있다.

올해 5월 27일에 하네다 공항 이륙중지로 비상탈출한 것에 대해 필자가 쓴 글(어느 기장의 글 우린 세월호 선장이 아니다”)을 읽어보신 분들은 기억을 더듬어보시라. 날개에는 휘발력이 아주 강한 비행기의 연료가 실려 있다.

결국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무게를 줄이려고 연료를 꽉 채워서 이륙한 비행기의 연료를 공중에 버리거나, 다 소모하고 내려야 한다. 유럽·미주 같은 장거리 비행은 승객도 거의 만석이기에 연료도 최대로 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준 무게를 맞추기 위한 연료 소모하는 데만도 거의 1시간 가까이 걸린다. 결국 승무원의 손에, 신의 은총이 함께해서 환자의 상태가 좋아졌다 해도, 1시간 안에는 못 내린다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그러면 안 되겠지만, 환자가 불행히 사망했다고 가정하자. 공식적으로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망선고는 의사만 할 수 있다. 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내에 의사가 없다면 법적으로 기술적으로 조종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사람이 살아 있다면 누구나 그렇듯이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 회항(Divert)하게 된다. 유럽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 오기까지 공항이 많아서 기술적으로 일단 (연료만 소모한다면) 착륙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미주노선이라면 태평양 한가운데서는 보잉747이나 에어버스380처럼 비행기가 너무 크면 착륙할 수 있는 공항도 거의 없다. 앞으로 45시간 동안 착륙할 수 있는 공항이 없다면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이 죽으면 (이미 사망한 뒤이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기내에 사망선고를 내릴 수 있는 의사가 없다면 (이미 사망을 한 뒤라도) 민항기에 쓸 수 없는 연료만 제공되는 러시아의 공군기지에 내릴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런 공항에 내린다면, 다음 비행기가 올 때까지 여러분은 황량한 시베리아의 러시아 군공항에서 추위를 견뎌야 한다.

환자가 아닌 다른 승객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사람들의 인내심이 많이 사라져 10분의 시간도 손해 보는 것을 못 참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승객 중에는 몇백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으러 바이어와 상담을 하러 가는 사람들도 있고, 해외여행 한번 해보려고 몇 년 동안 계를 부은 사람도 있다. 내일 아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주일에 23번만 뜨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 포스터

지금 환자가 생겨서 출발공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면 “어허 사람 생명이 우선이지” 하면서 이해하는 사람들 그리 많지 않다. 당장 왜 그런 사람을 태웠냐고 승무원 멱살을 잡는 사람이 꼭 있다. 영화 <부산행> 한번 보시라. 사람은 그 상황에 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사망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일단 사망한 승객을 아무도 없는 곳에 격리해서 최대한 다른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게 노력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내가 탄 비행기에서 사람이 죽었고, 앞으로 67시간을 함께 가야 한다면? 더 이상의 부연설명은 필요치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굳이 공포영화를 찾을 필요가 없게 된다.

하여튼 위와 같은 이유로 비행기에 환자를 승객으로 모시고 간다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로 소송을 당하고 내 옆의 동료가 그런 일로 징계를 받았다면 누구라도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진다. 지금 개봉한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를 한번 보시라. 3성 장군부터 외무장관, 심지어 영국 총리마저도 책임을 미루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아프면 비행기를 타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처럼 해외여행 가서 이제 오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힘들어도 다 보자, 무조건 몸에 좋다니까 일단 먹고 보자” 그런 것을 조심하시라는 것이다.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챙기는 수밖에 없다. 설사 비행기에 올라 아프더라도 기내 안에서 얼마나 처치가 제한적인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리고 싶었다. 고국으로 돌아가 치료받고 싶은 환자에게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하늘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매버릭(현직 민항기 조종사)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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