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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서답] 이열치열 소설 읽기 ‘불타는 평원’

2016.08.18(Thu) 17:13:31

책 읽기 힘든 계절이다. 올여름은 유독 더 그렇다. 가만히 있어도 늘어진다. 책뿐만 아니라 다른 그 무엇도 하고 싶지가 않다. 올림픽에도 관심 없다. 땀 흘리는 선수들을 보면 덩달아 더워질 것 같다. 브라질까지 갈 것 없다. 요즘 내 방은 매일이 트로피컬이다. 에어컨 바람은 딱 거실까지 허용된다. 우리 집의 룰이다. 냉방 효율을 고려한 정책이다. 아무래도 전기 요금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창고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선풍기를 꺼내본들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무더위에 뒤척이던 밤, 뒤척임이 선풍기를 쓰러뜨린 이후로 미풍 외 다른 바람의 세기는 동작하지 않는다. 몸의 한계치에 다다르면 어쩔 수 없이 거실로 나가야 한다. 서늘한 곳, 그곳에는 TV가 있고 가족들이 있지만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은 없다. 올림픽이 있고 소파가 있지만 소설가와 북마크는 없다.

   
후안 룰포의 소설집 <불타는 평원>.

이따금 인터넷 서점에서 보이는 문구. “찌는 듯한 올여름, 무더위를 날려버릴 여름 소설들을 소개합니다!” 내 생각에 이건 다 개소리다. 스릴러를 읽어도, SF를 읽어도, 아니 그 어떤 장르를 읽어도 독서만으로는 무더위를 날려버릴 수 없다. 에어컨 바람 아래 있거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옆에 있어야 한다. 이 여름날 내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다는 것. 습기를 머금은 책장의 눅눅함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느낀다는 조건 하에서는 차라리 이열치열의 독서가 낫다. 진정한 의미의 4D 독서가 가능하다.

무더운 나라의 무더운 소설. 타들어가는 묘사와 찌들어가는 감정들. 꿉꿉한 느낌. 흐르는 땀방울. 갈증, 열기. 불쾌지수가 일상이 된 인간들의 폭력. 복수. 죽음. 해탈. 지난주 내가 고른 책은 멕시코 작가, 후안 룰포의 <불타는 평원>이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 9p, ‘그들은 우리에게 땅을 주었다’ 中

첫 단편 ‘그들은 우리에게 땅을 주었다’의 도입부다. 어쩌면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할지도 모를 문장이다. 이것은 개소리가 아니다. 유념하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다. 불타는 평원을 걸어가는 자들에게는 하나의 척도였다. 개가 있는 곳에 마을이 있고, 마을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있을 것이란 믿음. 믿음이라기보다는 황무지의 끝에 여전히 마을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절실함. 바람에 실려오는 개 짖는 소리는 어쩌면 환청일지도 모를 일. “아무것도 없잖어. 푸석한 모래 밖에는 없잖어.”의 상황이 펼쳐진다 한들 돌아갈 곳 없는 처지. 다시 떼어야 하는 발걸음.

<불타는 평원>은 황무지의 흙먼지처럼 뿌연 공간의 소설집이다. 20세기 초반 멕시코. 혁명과 지주들 양쪽으로부터 내팽개쳐진 멕시코 농민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총 17편이 수록되어 있다.

“더 이상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난 단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더도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를 알리자고 온 것뿐입니다. 나는 양을 치는 사람이지 다른 일은 모른다고요.” - 47p, ‘그자’ 中

이야기는 대부분 1인칭의 시점에서 전개한다. 화자들은 기억을 더듬는다. 폭력이 지나간 순간에 대해 회상하고 고백한다. 진술 속에 미화는 없다. 강렬한 인상의 단편 ‘그자’에서 우연히 복수극의 끝을 목격한 목동처럼. 단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할 뿐이다. 우리가 태양을 피할 수 없듯, 힘없는 한 개인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 없듯. 하릴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계속 읽다 보면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앞서 자신은 피해자였다 말하던 이들조차, 실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는 것이다.

   
<불타는 평원>은 황무지의 흙먼지처럼 뿌연 공간의 소설집이다. 

<불타는 평원> 곳곳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도 상당부분 이 같은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무척이나 푸석푸석하다. 타산적이다. 아버지들은 자신이 사랑했던 아내만을 생각한다. 아들에 대해서는 ‘사랑의 부산물’ 이상의 감정은 없다. 아들의 인생을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잠재적인 경쟁자일 뿐이다. 밥그릇을 놓고 언젠가는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 남자 대 남자로. 현 세대 대 다음 세대로. 이에 아들들은 거세게 반발한다. 때로는 자신의 책임을 아버지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통 모르겠네요. 아버지, 아버지가 저를 키워서, 제가 얻은 게 뭡니까? 일, 오로지 일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 저를 데려다 놓기만 하시고, 나머지는 저더러 알아서 하라고 하셨잖아요. 하물며 아버지는 제가 경쟁자가 될까 봐서 폭죽 다루는 법도 안 가르쳐 주셨어요. 얼어 죽지 않을 정도로 옷을 입히고는, 멋대로 세상을 배우라고 길바닥에 내놓았어요.” - 135p, ‘빠소델노르떼’ 中 

황폐해진 것은 토지만이 아니었다. 마치 아버지와 아들의 함수처럼(생물학적인 아버지는 한 명뿐이지만, 생물학적인 아들은 여럿이 될 수 있다.), 시대가 민중에게 휘두른 폭력은 여러 가지 문제를 낳았다. 후유증이다. 거대한 폭력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몇몇은 무기력해졌고, 몇몇은 살아남기 위해 냉혹해졌다. 작가가 그리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죄짓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죗값이야 언젠가 죽음으로 치르면 그만 아니겠나 하는 심정. 후안 룰포의 가장 유명한 작품 <뻬드로 빠라모>에서 삶과 죽음, 폭력이 혼재하는 땅, 꼬말라로 이동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느낌도 든다. (이 책의 수록 작품 중에서는 ‘루비나’가 가장 꼬말라와 근접한 공간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환상 문학이 발전했다고 한다. 이 소설집의 작가 후안 룰포는 그 ‘마술적 리얼리즘’의 선두 그룹에 속해 있다. 수많은 후배 작가들이 룰포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 <불타는 평원><뻬드로 빠라모> 단 두 권 만으로 말이다. 맨정신으로는 도무지 살아갈 수 있던 환경이 아니었기에 작가들은 환상을 만들어낸 것일까? 조금 다른 의미지만 일 년 365일이 요즘처럼 덥다면, 한국에서도 머지않아 ‘마술적 리얼리즘’이 발달할 것 같다. 사회, 정치적으로는 이미 충분한 환경을 갖추고 있지 않던가.

   
‘마술적 리얼리즘’의 선두주자 후안 룰포. 출처=후안 룰포 공식 페이지

그새 또 더위를 많이 먹었나 보다. 내 방에서 컴퓨터로 글을 쓴다는 것은, 책을 읽는 것보다 더 극한의 작업이다. 컴퓨터가 뿜어내는 열기 때문에 훨씬 더 덥다. 도대체 이 리뷰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이제 거실로 대피해야겠다.

앞서 <불타는 평원> 을 읽기 좋은 계절이라 말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열치열도 그리 좋은 독서는 아닌 것 같다(후안 룰포의 소설은 분명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여름에는 방에서 책만 읽지 말고, 극장 가서 영화를 보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자. 에어컨 틀어놓고 그냥 누워 있자. 아니다. 비나 한바탕 쏟아져라. 그게 더 낫겠다. 불타는 대지를, 내 마음을 식혀줄 그런 시원한 장대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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