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을 검찰에 고발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자연스레 검찰이 한진그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골인(기소)시킬 수 있는 기본 혐의가 있다면, 첩보를 더해 수사하는 게 최근 검찰 수사의 흐름이다. 게다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최성환)는 이미 진경준 검사장 처남의 회사에 100억 원대 일감을 준 한진그룹 사건을 쥐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과 각종 ‘갑질’ 이슈로 국민적 공분이 충분한 만큼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공정위가 대한항공의 일감 몰아주기를 문제 삼으면서 검찰의 한진그룹 수사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
공정위가 포착한 대한항공의 이슈는 일감 몰아주기. 공정위 작성 보고서에 따르면 조원태 부사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 남매를 위시한 대한항공은 자회사인 유니컨버스와 싸이버스카이에 일감을 몰아줬다.
유니컨버스는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현아·현민 삼남매의 지분이 100%인 자회사다. 싸이버스카이 역시 지난해 삼남매가 33.3%씩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가 전량을 대한항공에 매각한 오너 일가 소유의 ‘자회사’였다. 안정적인 매출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은 고스란히 조양호 회장 등 오너 일가에게 돌아갔다.
검찰 고발 가능성이 제기되자 공정위 측은 “공정위 사무처가 한진그룹에 관련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며 “다만 사건의 위법성 판단과 고발 등 조치 여부 결정은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이뤄지므로 아직 고발 여부에 대해 확정된 방침은 없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전원회의는 이르면 9월 말 열리는데, 공정위원 9명은 공정위 사무처의 심사보고서 의견과 사측 반박을 들은 뒤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공정위의 조치와 관계없이 검찰이 한진을 수사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진그룹의 경우 검찰이 수사를 할 때 따지는 여러 필요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이기 때문. 그 까닭은 이렇다.
먼저 ‘동력’이 충분하다. 검찰이 ‘특혜성 일감 몰아주기’를 빌미로 오너 일가의 비자금 등 각종 불법 행위들로 수사를 확대하더라도, 국민들이 검찰을 응원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최근 홍만표 전 검사장, 진경준 검사장의 각종 비리 사건으로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검찰 입장에서 ‘국민적 응원’은 수사 아이템을 선택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별도의 사건이지만 조양호 회장의 제수인 최은영 한진해운 전 회장이 비공개 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매각한 사건 역시 여전히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에서 여전히 수사 중인 상황. 최은영 전 회장에 대해 한 차례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뒤 검찰은 수사에 정중동하고 있지만, 이 사건으로 ‘한진’이라는 그룹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더 확산됐다.
둘째로 2년 전 땅콩회항 논란 당시 첩보가 대량 수집됐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랴’는 말처럼 조양호 회장 등 한진그룹 오너 일가 관련 각종 첩보들이 검찰로 대거 접수됐다. 평소 조양호 회장 등을 모셨던 일부 임원들의 뒷얘기가 검찰 정보망에 걸린 건데, 대검찰청 범죄정보 수집 파트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확인되지 않은 다양한 내용들이 풍문을 타고 들어온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셋째 수사 실패 가능성이 낮다. 공정위가 고발하는 것을 전제로 놓고 본다면, 검찰이 가장 중시하는 ‘명분’이 있다. 외부 기관의 고발에서 수사를 시작했다고 하면 수사의 공정성은 물론, 결과를 놓고도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비자금 등 다른 혐의로 수사를 확대하지 못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기소할 수 있는 혐의를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여기에 공정위 고발 결정까지는 한 달가량 여유 시간이 있어, 공정위 조사 건에 대한 수사 성공 가능성, 각종 첩보에 대한 내사도 미리 다져 놓을 수 있다.
비슷한 사례가 올해 롯데그룹 수사인데,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공정위가 롯데그룹을 조사해 고발한 건을 앞세워 수사에 착수했다. 사실 공정위가 조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검찰은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범정 파트 등을 통해 입수된 각종 롯데 관련 첩보들에 내사를 진행했던 상황. 서울중앙지검 특수수사 라인은 현재 롯데 수사로 바쁘지만, 추석 전후로 기소가 끝나며 다음 수사 타깃으로 한진그룹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진은 가장 소소하면서도 결정적인, 검찰의 ‘괘씸죄’를 받고 있다. 이금로 특임검사팀은 앞서 진경준 검사장 주식 대박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진경준 검사장이 한진그룹에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한 정황을 포착했다. 한진그룹은 “알아서 내놓으라”는 진경준 검사장의 협박에 굴복, 100억 원대에 달하는 일감(청소)을 진 검사장의 처남 회사에 몰아줬는데, 검찰은 이미 한 차례 서용원 한진그룹 대표이사 사장을 불러다가 조사를 마쳤다.
땅콩회항 사건 때 사과하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한진그룹 입장에서는 피의자 진경준 검사장 협박에 겁먹은 ‘피해자’이겠지만,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친 검찰에게는 “조직에 흠집 낸 비리 조직”으로 비칠 수 있다. 검사장의 ‘협박’에 굴복하는 게 이상해 보이지만,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부탁을 받은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문 의원 처남을 대한항공 관련 미국 기업에 이름만 올려 8억여 원 규모의 월급을 줬다는 사실은 문 의원과 처남의 민사 재판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검찰은 이미 “진경준 검사장 사건을 조사하는 특임검사팀이 한진그룹까지 수사를 할 수 없다”면서도 “특임검사팀에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인원이 있지 않느냐”며 특임검사팀 해체 후 서울중앙지검에서 한진그룹을 계속 수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상황.
특수 수사에 밝은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에게 범죄 혐의보다 중요한 것이 수사 착수 명분이다. 당장은 롯데 수사를 하느라, 공정위가 고발하더라도 배당하는 선에 그치겠지만, 국민적인 공분이 가득하기 때문에 언제든 수사 아이템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며 “홍만표, 진경준 사건을 통해 검찰의 신뢰도가 바닥이고 국감을 앞둬 정치인 수사를 할 수는 없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을 수사해야 한다면 한진그룹이 주요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라고 귀띔했다.
남윤하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