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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샌들 ‘아바이아나스’는 어떻게 국민샌들이 됐나

2016.08.10(Wed) 17:45:42

브라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라고 하면 아마 축구 또는 삼바일 것이다. 그런데 브라질 사람들은 곧잘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곤 한다. 바로 브라질의 국민 조리샌들인 ‘아바이아나스(havaianas)’다(‘아바이아나스’란 포르투갈어로 ‘하와이 사람’이란 뜻이다).

   
브라질의 국민 조리 아바이아나스. 출처=아바이아나스 인스타그램

여름철이면 특히 해변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런 조리 모양의 샌들은 디자인이 단순하기 때문에 사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두 엇비슷하다. 심지어 너무 단순해서 브랜드가 뭐가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아바이아나스’는 브라질 국민들의 자부심이요, 상징이며, 또 효자 수출품이다. 브라질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들 ‘아바이아나스’ 한 켤레쯤은 갖고 있으며, 저소득층이건 고소득층이건 구분하지 않고 5달러(약 5500원)짜리 이 고무 샌들을 즐겨 신고 있다. 축구, 삼바와 함께 빈부 격차와 무관하게 누구나 소유하고 즐길 수 있는 ‘사회적 평등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심지어 브라질 정부는 물가를 조정하는 데 사용하는 생필품 목록에 쌀, 콩과 함께 ‘아바이아나스’ 샌들을 포함시켜 놓기도 했다.

현재 ‘아바이아나스’는 남미는 물론이요, 북미,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매일 1만 3000개 이상 생산되고 있다.

지금은 흔한 디자인이 됐지만 조리 모양의 고무 샌들을 패션 아이템으로 정착시킨 것도 바로 이 ‘아바이아나스’였다. 1962년 상파울루의 ‘알파르가타스’사가 일본의 전통 신발인 조리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것이 시작이었다. 일본의 조리 바닥이 볏짚으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아바이아나스’의 조리샌들은 볏짚 대신 고무를 사용했다. 때문에 신었을 때 편안하고 내구성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볏짚에서 착안해서 디자인한 ‘아바이아나스’ 바닥의 쌀알 무늬는 현재 가품과 진품을 구별 짓는 중요한 모양이 됐다.

   
아바이아나스가 영감을 얻은 일본의 조리. 출처=아바이아나스

‘아바이아나스’를 처음 즐겨 신기 시작했던 것은 저소득층 노동자들이었다. 농장에서 일하는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아바이아나스’를 신고 다녔으며, 때문에 ‘아바이아나스’의 외판원들은 낡은 밴을 몰고 브라질의 시골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노동자들에게 신발을 판매하곤 했었다. 그런가 하면 허름한 구멍가게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됐던 까닭에 ‘가난뱅이들의 조리샌들’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이런 인식에도 불구하고 ‘아바이아나스’는 매일 수천 켤레씩 팔려 나가면서 성공을 거두었다. 성공에 고무됐던 ‘알파르가타스’사는 이듬해 ‘아바이아나스’의 디자인을 특허 등록했다. 일본의 조리에서 모방했기 때문에 발가락 사이에 얇은 끈을 끼우는 디자인에 대해서는 특허를 신청할 수 없었지만 ‘아바이아나스’ 특유의 말랑말랑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고무 바닥은 달랐다. 아무리 비슷한 조리샌들을 만들어내도 ‘아바이아나스’의 고무 바닥을 흉내내는 업체는 없었다. 때문에 이 고무 바닥을 ‘아바이아나스’가 성공한 핵심 요인으로 꼽는 사람들도 있다. 이 밖에 아무리 오래 신어도 쉽게 늘어나거나 모양이 변하지 않는 내구성도 ‘아바이아나스’가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 들어 비슷한 제품을 생산하는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짝퉁이 활개를 치기 시작하자 매출은 서서히 감소했다. 이에 1994년 ‘아바이아나스’는 과감하게 브랜드 이미지를 백팔십도 전환하기로 결심했다. 저소득층 외에 중상류층 소비자들에게도 어필하기 위해 ‘패션 아이템’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아바이아나스’는 먼저 디자인에 변화를 주었다. 끈과 바닥의 색상을 하나로 통일한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했고, 이와 동시에 유명인을 광고 모델로 등장시켜 유쾌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런 변화는 보란듯이 적중했다. 사회 지도층과 유명 연예인들(제니퍼 애니스턴 등)이 너나할 것 없이 신기 시작하자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도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는 노동자 뿐만 아니라 누구나 신을 수 있다는 인식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브라질의 중상류층들은 아무리 ‘아바이아나스’를 갖고 있어도 조리샌들을 신은 채 거리를 돌아다니지는 않았으며, 혹은 신는다 해도 집에서 해변까지 잠깐 이동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미용실을 갈 때나 데이트를 나갈 때 혹은 개를 산책시키거나 바비큐 파티에 갈 때 등 일상생활에서도 두루 신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바이아나스’는 일부 하층민들이 신는 신발이 아니었다. 이제는 누구나 편하게 신는 패션 아이템이었다.

   
1998년 월드컵 기념 스페셜 에디션이던 ‘브라질’ 모델. 출처=아바이아나스

‘아바이아나스’가 브라질 국민 샌들을 넘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였다. 월드컵을 기념하는 스페셜 에디션이었던 ‘브라질(Brasil)’ 모델이 그야말로 대박을 친 것이 기폭제가 됐다. ‘브라질’ 모델은 역대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이자 가장 사랑받는 모델로, 끈 부분에 작은 브라질 국기가 장식되어 있는 모델이다.

그후 이 모델은 ‘아바이아나스’의 대표적인 상징이 됐으며, 이때를 기점으로 ‘아바이아나스’는 국경을 넘어 전세계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브라질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반드시 쇼핑해야 할 필수 품목으로 자리잡았고, 저렴한 가격 덕에 한 무더기씩 사가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아바이아나스’가 50년 넘게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런 지속적인 변화에 있었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끊임없는 제품 개발과 혁신이야말로 ‘아바이아나스’의 장수 비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장 폴 고티에, 미소니, 존 갈리아노, 월트 디즈니 등 유명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한 제품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변화를 꾀했고, 2003년 아카데미 시상식부터는 후보들에게 제공하는 선물용 패키지에 자사의 신발을 포함시켜 인지도를 높였다. 그런가 하면 브라질 자연생태 보호 연구소인 ‘IPÊ’와 협력 제작한 커스텀 조리 샌들의 경우, 매년 판매액의 7%를 연구소에 기부하는 식으로 사회공헌을 하고 있다.

   
할리우드 셀렙들의 아바이아나스 사랑을 보도한 잡지 기사. 왼쪽부터 모델 바 라파엘리, 배우 힐러디 더프, 메건 폭스, 주드 로, 귀네스 팰트로, 블레이크 라이블리.

고무바닥에 끈 두 개가 전부인 조리샌들이지만 고객의 취향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했던 점도 주효했다. 가령 기후가 서늘한 나라에서는 발등을 덮는 신발 디자인을 새롭게 선보인다거나 발목에 끈이 달린 샌들을 출시하는 식이었다. 또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디자인을 선보여 고객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켰고, 여성 고객을 겨냥한 ‘슬림 디자인’을 출시해 여심을 잡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나라마다 진행하는 마케팅 방식도 서로 달랐다. 가령 프랑스에서는 라코스떼, 장 폴 고띠에, 디올 등 고급 브랜드와 나란히 판매해 매출을 끌어 올렸고, 미국의 대학생들에게는 과대광고를 하지 않고 신뢰를 쌓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처럼 잘 계획된 마케팅 덕분에 ‘아바이아나스’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고, 여기에 성실함과 창조성, 그리고 혁신적인 이미지는 고객들의 마음을 두드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바이아나스’의 성공이 브라질 국민들에게 시사하는 보다 중요한 점은 어쩌면 따로 있을지 모른다. 오래전부터 ‘아바이아나스’의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었던 하층민들에게 ‘아바이아나스’가 갖는 남다른 의미가 그렇다. 브라질의 빈곤층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아바이아나스’를 구입하고 있으며, 이제 이들에게 ‘아바이아나스’ 없는 일상은 생각할 수 없게 됐다. 더욱이 직장 상사가, TV 스타가, 그리고 심지어 멀리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신과 똑같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남모를 자부심도 갖게 됐다. ‘아바이아나스’를 통해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바이아나스는 다양한 디자인과 혁신적 이미지로 브라질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출처=아바이아나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한 여성은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아바이아나스를 신었다. 지금은 내 아이들에게 사주고, 나도 사서 신는다. 아바이아나스 없이 사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브라질 국민들이 ‘아바이아나스’를 사랑하고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김민주 외신프리랜서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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