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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노포열전] 짬뽕은 원래 하얗다, 인천 신일반점

2016.08.08(Mon) 15:09:28

인천 중구 신흥동. 한 중국집에서 사십 몇 년 전 유년의 기억을 떠올렸다. 주인네가 주방에 중국어로 주문을 외치고, 나는 다시 어린 소년처럼 다소곳이 앉아 짜장면을 기다린다. 신일반점. 인천의 화교 역사에서 빠뜨리면 안 되는 노포다.

개업 65년을 헤아리는 신일반점이 여기 있다. 이 집을 지키는 건 노요리사 임서약 옹(85)이다. 이제는 요리를 안 하지만 늘 식당에 나와 만두 빚는 일은 돕는다. 그는 전형적인 화교다. 한국어가 어눌하다.

   
신일반점은 만두를 팔던 호떡집으로 시작했다.

신일반점은 호떡집으로 출발했다. 원래 화교들의 요식업이 지금처럼 중화요릿집인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 만두 등을 파는 간이음식점이었다. 이런 집을 호떡집이라고 불렀다.

“그때 호떡집 호떡은 아주 맛있었어요. 미군이 버린 도라무깡(드럼통) 안에서 시멘트로 공구리를 치고 화덕을 만들어요. 거기다가 석탄이나 장작을 때서 호떡을 굽는 거죠.”

며느리 왕 씨의 설명이다. 호떡은 원래 달콤한 설탕이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산둥지방 요리인 센빙(전병)은 밀가루 반죽을 구운 후 파와 장을 말아서 먹는, 어쩌면 피자에 가까운 음식이다.

임서약 옹의 고향은 산둥이다. 산둥은 한발과 양쯔강의 범람으로 농사를 망치는 때가 많았다. 그 때문에 외국에 많은 인력이 빠져나가서 살게 되는데, 조선반도도 그 대상이었다. 고향과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일부가 이 땅에 남아서 화교 사회를 이루게 된다.

신흥동은 과거 도립병원이 있었고, 더 멀리는 일제시대에 이미 발전한 지역이었다. 잘 알다시피 일제는 조선의 쌀을 수탈했는데, 수인선 열차를 놓아 경기도 곡창지대의 쌀을 수집해서 인천항을 통해 반출했다. 이 수인선의 인천 종점이 바로 신흥동이다. 일제 때는 정미소가 많아 흥청거리는 지역이었다. 쌀이 곧 돈이던 시절, 이 근처에 미국취인소, 즉 쌀선물시장이 있었다. 전국의 돈이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가루 연탄을 때서 요리했지. 물에 개어서 때는 거야. 코가 새카매져. 아침 일곱 시부터 불을 때. 연기 많이 나고 힘들어. 그 전에 호떡집 할 때는 누우면 하늘에 별이 보였어. 이 건물 짓고 나서 아주 좋았어.”

임 옹의 설명이다. 장사가 잘됐다. 해삼요리가 특히 인기가 있었다. 산둥 출신 요리사들은 해산물을 잘 다루고, 해삼이 특히 유명하다. 그래도 우리가 듣고 싶은 건 짜장면과 짬뽕의 옛 모습이다.

“첨면장(춘장. 짜장의 재료로 산둥지방의 된장이다)은 다 자기가 만들어서 했어. 콩이랑 밀가루 섞어서 만들어서 항아리에 두고 썼어. 그런데 나라에서 못하게 해. 비위생적이라고. 법률에 없다는 거야. 그래서 좋은 장이 없어졌어.”

자가제조를 금하는 식품위생법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캐러멜 넣은 달큰하고 까만 장이 공급되고, 손님들도 좋아하게 되면서 점차 역사적인 산둥식 짜장면은 사라지게 된다.

“돼지기름을 썼어. 짜장 볶을 때. 돼지비계를 깍두기처럼 두툼하게 썰어서 볶는 거야. 고소하고 아주 맛있었어. 이것도 식용유에 밀려서 안 쓰게 됐어.”

짬뽕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원래 산둥식 짬뽕은 ‘차오마미엔’이라고 부르는 국수가 원류다. 일제시대에 일본어인 짬뽕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고, 점차 양념하는 방법도 변하게 된다. 하얀색의 차오마미엔이 현재의 빨간색 짬뽕으로 변한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 짬뽕이 언제부터 빨개졌어?”

   
국물이 하얀 산둥식 ‘원조 짬뽕’.

“응. 내가 삼십대 중반일 때부터 빨개진 것 같아. 처음에는 고춧가루를 넣은 게 아니고 그냥 빨간 고추를 넣었어. 그러다가 고춧가루 넣고 빨개진 거야.”

그러니까 60년대 중후반부터 빨개지고 매워졌다는 얘기다. 그 원류가 되는 짬뽕을 이 집에서는 아직도 판다. 하얀색의 국물, 볶은 돼지고기. 차오마미엔의 그림이 그려진다.

“옛날 짬뽕은 먼저 돼지기름에 대파를 볶고 채소와 돼지고기를 볶았어. 그리고 육수를 부어서 면을 넣고 완성하는 거야.”

시원하고 진한 맛의 짬뽕이다. 내 입으로 긴 역사가 들어오는 셈이다.

“짜장도 많이 변했어. 장이 아주 적었어. 이제는 아주 많아.”

옛날에는 무거운 사기그릇에 면을 담았다. 고무신 신고 짐자전거에 나무로 된 배달통을 싣고 다니느라 힘들었다고 임 옹은 말한다. 이제 짜장면은 더 이상 역사적인 음식이 아니고, 귀하지도 않다. 신일반점은 그 역사의 와중에 살아남아 있다. 시원하고 매운 하얀색 짬뽕을 먹으면서 세월을 느끼게 된다.

박찬일 셰프

   
 

서울에서 났다. 1999년부터 요리사로 살면서 글도 쓰고 있다. 경향에 <박찬일셰프의 맛있는 미학>, 한겨레에 <박찬일의 국수주의자>(문자 그대로 국수에 대한 연속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단행본으로 한국의 오래된 식당을 최초로 심층 인터뷰하고 취재한 <백년식당>을 썼다.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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