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개인정보 유출 건이 터졌다. 인터파크였다. 해커 조직에 의해 1030만 명의 정보가 외부로 빠져나갔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가 올라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도 사고 관련 안내 메일이 도착했다. 메일은 늘 그래왔듯 뻔한 내용이었다.
“항상 인터파크를 이용해주시는 고객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로 시작, 고객의 개인정보 보호에 최선을 다했지만 안타깝게도 막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 당신의 이름, 생년월일, 휴대폰번호, 이메일, 집주소가 몽땅 털리긴 했지만 비밀번호는 암호화되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더 잘하겠다던 마지막 다짐은 김연우의 발라드 <사랑한다는 흔한 말>의 노랫말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 지난 몇 년간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학습했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기업들은 고객들에게 그 어떤 금전적인 보상도 약속하지 않았다. 그저 미안하다 말할 뿐이었고, 기업의 대표가 비장한 표정으로 허리 숙여 인사할 뿐이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만큼이나 수많은 질타가 쏟아졌지만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개인정보에 대한 고객의 소유권을 너무나 가벼이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 포털사이트, SNS 등이 관리하는 대형 서버들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하에 고객의 개인정보를 취합하고 관리한다. 그들은 고객들에게 말한다. 단 몇 번의 클릭이면 공짜로 SNS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고, 공짜로 블로그, 카페 등을 운영할 수도 있으며, 또 공짜로 수많은 제품들의 가격을 비교할 수 있다고,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가입을 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절대 공짜가 아니다. 그들은 SNS를 통해 고객의 취향을 분석하고, 고객이 업로드한 콘텐츠를 통해 광고 수익을 창출한다. 심지어 고객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페이지에 머물러 있다 해도 상관없다. 웹 또는 모바일에서 고객이 행하는 모든 움직임은 서버가 실시간으로 행하는 거대한 통계작업의 일환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서버로부터 서비스 받고 있는 수준 이상의 비용을 서버에 지급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입 시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에 대한 동의’ 항목에 체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상황을 전부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의 정보가 모여서 빅데이터가 형성된다. 재런 러니어의 책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에서는 이처럼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빅데이터를 추출해내는 서버들, 그중에서도 특히 영향력이 강한 서버들을 통틀어 ‘세이렌 서버’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페이스북, 구글,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곳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 노예들의 값싼 노동력이 지주들의 곳간을 가득 채워준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의 값싼 정보력은 세이렌 서버의 계좌를 가득 채워주고 있다.
만약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세이렌 서버가 경제를 독점해 나간다면, 서버를 소유하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황폐해져갈 것이다.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은 인간을 노동의 영역에서 밀어내게 될 것이며, 이는 곧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기계가 돈을 벌고, 서버를 위해 돈을 쓰는 세상에서 우리 인간은 과연 무엇을 더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책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를 통해 저자는 제안한다. 세이렌 서버의 시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빅데이터의 원료를 제공하는 것뿐이라면, 그리고 그 영역만이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일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마지막 보루만큼은 절대 쉽게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정산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각 개인이 빅데이터 형성에 기여한 만큼 세이렌 서버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제 올린 SNS 한 줄이 내일 먹을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다 상상해보자. 나는 ‘좋아요’ 버튼에 인색한 사람이지만, 이러한 상황 앞에서라면 ‘좋아요’ 버튼을 수십 번도 더 누를 의사가 있다.
책의 제목처럼,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물음에 우리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저자는 세이렌 서버와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를 상상했지만, 우리가 그걸 실제로 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자면 미래는 ‘공존’보다 세이렌 서버의 ‘독식’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책의 내용이 미래가 되기 위해서는 혁명에 가까운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값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 개인정보의 가치를 우습게 여기는 기업들에게는 응징이 필요하다. 혁명도 빅데이터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가 모일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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