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가 충격적인 내용의 동영상을 공개한 것은 지난 7월 21일 밤. 동영상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젊은 여성들에게 돈 봉투를 건네고, 성매매를 의미하는 대화들을 주고받았다. 동영상이 공개되자 삼성은 “이건희 회장 개인의 일이라 잘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고, 서민민생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은 이건희 회장과 자택 계약 명의자인 김인 삼성SDS 고문 등을 성매매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뉴스타파>가 공개한 동영상 속 이건희 회장으로 추정되는 인물. 출처=뉴스타파 캡처 |
대검찰청은 고심 끝에 지난 27일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서울중앙지검은 전문 부서인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이정현)에 배당했다.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사실관계를 확인할 것”이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현재 상황을 감안할 때 실제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게 검찰 내 중론이다.
검찰이 사건을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 배당한 것은 ‘공인, 유명인을 떠나 통상의 경우처럼 다루겠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의도적으로 천명한 셈이다. 하지만 지금 검찰의 모습을 감안할 때 ‘통상의 사건’과는 다른 듯 다루면서, 빤한 결론을 낼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우선 사건부터 다시 짚어보자. 여론은 이미 동영상 내용만으로도 “성매매를 했다”고 평가하지만 법리적으로 보기엔 부족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직접적인 성매매 장면이 담겨 있지 않고, 동영상을 찍은 의도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원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받아들이기엔 부족하다. 혹여 공갈협박을 목적으로 했다면 “성매매를 했다”고 진술하더라도 배척될 수 있다. 때문에 실제 성매매가 있었는지, 아니면 유사 성행위 수준이었는지에 대한 추가 증거가 필요하다.
결국 ‘진술’이 나와야 한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과 이를 찍은 인물, 또 성매매 장소의 명의자인 김인 고문 등의 진술 확보를 위한 조사가 불가피하다. 이건희 회장이 언제, 누구의 집에서, 누구의 소개와 누구의 돈으로 성매매를 했는지 사실관계가 명백하게 입증돼야 한다. 그런 뒤 ‘피의자 이건희 회장’을 불러 조사하는 것이 통상의 수사 순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건희 회장은 현재 몸 상태가 좋지 않다.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의식이 제대로 회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의사 표현이 불가능하다면 검찰 조사도 어렵다. 피의자를 조사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처벌하기도 어렵다.
결국 검찰이 할 수 있는 처분은 ‘시한부 기소중지’밖에 없다. 피의자나 주요 참고인이 외국에 있거나 소재 불명일 때 수사를 일시적으로 중지하는 검사의 처분인데, 피의자의 몸 상태가 수사 불가능한 상태일 때도 적용한다. 형사 수사에 밝은 부장검사는 “통상 피의자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해 있고, 병원의 방문 조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의사소통조차 안 된다면 기소중지를 걸어놓는다”며 “이건희 회장 역시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소중지 조치를 내리더라도 그 전에 성매매 여부는 확인할 가능성이 높다. 정운호 사건, 진경준 사건 등을 거치면서 검찰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엄정한 수사’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적어도 기소중지 결정을 밝힐 땐, 성매매 여부 등에 대해 사실관계는 확인해 줘야 한다. 앞서의 부장검사는 “이건희 회장은 공인이자 유명인이지 않느냐”며 “기초적인 사실관계는 모두 확인해서 검찰이 이건희 회장에 대한 수사 의지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줘야 기소중지 처분이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건희 회장의 몸 상태가 회복되더라도 처벌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건희 회장이라서가 아니라, 일반인이더라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성매매 혐의로 입건된 초범 일반인에게는 성교육을 일정 시간 받는 조건으로 (조건부) 기소유예 조치를 내린다. 한 번의 ‘반성’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성매매를 하다가 현장에서 적발된 국세청과 감사원 직원 4명 역시 성매수자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조건을 기소유예 조치를 받았다. 이건희 회장에게 일반인의 기준을 적용하고, 몸이 좋지 않은 고령의 환자인 점까지 감안할 때 성매매가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기소유예를 처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검찰 내에서는 지배적이다.
역설적이게도 ‘이건희 회장’이라는 점이 변수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도 검찰에게는 신경 쓰이는 부분. 때문에 검찰이 벌금형에 약식 기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힘 있는 사람에게 더 엄벌을 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 대검찰청 관계자는 “성매매 사실 확인과 몸 상태 회복이라는 두 가지 가정을 전제로 했을 때,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회복하려면 강도 높은 처벌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통상의 사건처럼 할 것”이라곤 하지만 검찰은 이건희 회장 사건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 경찰에 수사 지휘를 내려 보내지 않는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어차피 똑같은 결론(기소중지)을 내릴 것이라면 경찰 손을 빌리지 않고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모양새로 하기 위해서”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다만 성매매 장소로 지목된 서울 강남구 논현동 빌라의 전세 계약자로 이름을 올린 김인 고문의 경우 조금 상황이 다르다. 성매매 장소를 제공한 사람도 처벌 대상이기 때문이다. 성매매 정황이 사실로 드러나고 이를 알고 있었다면 먼저 별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수사를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도 동영상 속 여성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매매가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수사의 시작이다.
검찰이 ‘기교적’으로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동영상 촬영자이자 성매매 일당도 타깃으로 삼는 방법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삼성 입장에서는 동영상으로 협박을 당했다는 부분을 어필해서 이건희 회장이 피해자이기도 했다는 점을 보여주려 할 것”이라며 “협박의 수준이 악질이었을수록 이건희 회장의 처벌 수위가 낮아질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는 점도 검찰이 만지작거리는 카드 중 하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윤하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