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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대호’가 돌아온다!

2016.08.01(Mon) 09:01:34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많은 옛날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마늘과 쑥만 먹고 굴속에서 버틴 곰은 사람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도중에 포기해서 사람이 되지 못한 이유가 담배를 피우지 못한 금단현상을 참기 힘들어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우리에겐 익숙하다(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지 약 400년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이 대목에선 잠시 잊자).

옛이야기에 나와 곶감에 벌벌 떨고, 토끼의 꾀에 넘어가기도 하고, 거짓말에 속아 인간에게 우애와 효도를 다하는 호랑이는 귀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그만큼 인간과의 대면이 잦았기에 친근한 캐릭터가 되었기도 하겠지만, 맹수 중의 으뜸인 호랑이가 무섭지 않을 리가 없다. 때로는 마을로 내려와 가축이나 사람까지 해치는 호랑이를 막기 위해 물리적인 방비책을 세우기도 했지만 제사를 지내거나 굿을 하는 식으로 대비를 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보호 및 복원 중인 아무르호랑이. 출처=THE AMUR TIGER PROGRAMME

<조선왕조실록>에도 호랑이는 600회 이상 등장한다. 태종에게 보고하기를 겨울과 봄을 거치는 한 해 동안 경상도에서만 호랑이에게 죽은 사람이 기백명이라는 내용을 보아 그 피해가 심각했던 것 같다. 이에 조선은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정규군사를 두고 호랑이를 잡게 하고, 호랑이를 잡았을 때의 포상을 <경국대전>에 명시해둘 정도였다고 한다.

두려웠던 만큼 호랑이는 신격화되어 산신령으로 여겨지거나 부적에 사용되기도 하고, 장수의 용맹함을 뽐내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산신과 동격으로, 또는 산신의 시종으로 호랑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나 민속도가 많았다. 이런 내용이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산해경>이라는 책에는 ‘군자국 사람들은 (중략) 큰 호랑이를 두 마리 길러서 심부름을 시킨다’는 내용마저 있다고 한다. 어이없을 정도의 과장된 이야기이지만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호랑이가 친숙한 이미지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반도에 많이 살았고 그만큼 친숙해진 한국호랑이는 다른 지역의 호랑이들과 다른 종류였을까?

한국호랑이나 백두산호랑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한국호랑이는 Panthera tigris coreensis라는 학명으로 호랑이의 여러 종류 중 하나의 아종으로 분류된 적이 있었다. 1965년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 한국호랑이를 아무르호랑이에 편입시키면서 이러한 구분법은 사라졌다.

그렇지만 남한에서는 1927년 경주에서 마지막 호랑이가 잡힌 이후로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1987년 북한에서 호랑이가 포획된 이후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사라지자 한국호랑이는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한국범보전기금이 지난 2009년 일본 도쿄 국립과학박물관과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한국호랑이의 두개골과 골격 표본을 발견하였다. 이후 DNA검사를 통해 한국호랑이가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와 유전자가 100% 일치함을 알아냈다.

비록 한반도의 야생에서 볼 수 없지만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부에 남은 아무르호랑이가 바로 한국호랑이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한국호랑이가 모두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들어온 호랑이인 이유이다.

아무르호랑이는 호랑이들 중에서도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한다. 수컷의 몸무게가 300킬로그램을 웃돌고 몸길이가 3미터를 넘는다. 이런 아무르호랑이들이 다시 한국에서도 숲과 들판을 누비는 위용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몇 년 전에는 경기도 연천군에서 고대산에 최대 66만 제곱미터의 공간에 야생상태로 호랑이를 보호하는 적응장을 만들어 지역관광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무산된 일이 있었다. 호랑이들이 적응하면 DMZ까지 적응장을 확대하겠다며 러시아에서 호랑이 6마리를 수입하려 했으나, 한강유역환경청에서 여러 이유로 그 실효성을 인정하지 않아 수입허가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조성 중인 호랑이숲. 출처=산림청

내년에 정식 개원하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호랑이숲이 조성된다는 보도가 얼마 전에 있었다.

4만 8000제곱미터의 호랑이숲은 작은 나무들, 갈대밭, 습지 등으로 조성되어 아무르호랑이의 서식지와 환경을 유사하게 꾸몄다고 한다. 중국에서 들어와 한국에서 사육되고 있는 아무르호랑이 3마리를 옮겨오는 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10마리를 들일 계획이라고 한다. 정성 들인 공간에서 안전하게 사육‧관리하여 멸종 위기의 ‘백두산호랑이’를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관계자의 인터뷰도 있었다.

하루 행동반경만 20킬로미터, 최대 활동범위가 400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아무르호랑이에게 수목원의 숲은 비좁기만 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일 게다. 중국과 러시아와 북한을 거쳐 남한까지 자유롭게 호랑이들이 넘나들 수 있도록 국경이 열리지 않는 한, 우리가 동물들의 영역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침범하지 않을 합의에 이르지 않는 한, 강을 갈아엎고 산을 잘라내는 일에 고민을 깃들이지 않는 한은 우리나라의 호랑이는 언제나 좁은 우리 안에 갇힌 아이들뿐일 것이다.

그래서 묻는다. 우리는 야생의 호랑이와 함께 살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지금이 아니라면 앞으로는?

정인철 사이언스커뮤니케이터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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