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이 강력하다. 지난 5월 발생한 ‘옥시사태’에 대한 불매운동 얘기다.
현재 대형마트 3사는 전 지점의 옥시 제품 철수를 결정했고, 중소 상점들과 편의점도 자발적으로 옥시제품을 축출한 상태다. 여전히 옥시 제품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곳이 있지만 이번 움직임은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자신에게도 직접적인 해악을 미칠 수 있다는 의식이 이번 불매운동의 성공비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불매운동 불모지’로 불리는 국내에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도대체 뭘까.
남양유업은 ‘갑질논란’ 이후 발생한 불매운동으로 업계 2위 자리를 경쟁사에 빼앗겼다. |
#남양유업 사례: “대리점주의 절실함과 소비자의 쉬운 참여가 비결”
남양유업 불매운동은 지난 2013년 한 젊은 영업사원이 나이가 지긋한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퍼붓는 음성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되며 시작되었다.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며 비난의 화살은 부도덕한 개인에서, 할당물량을 대리점주에게 떠넘기는 남양유업의 ‘밀어내기식’ 영업으로 향했다.
효과는 강력했다. 막강한 업계 2위였던 남양유업은 불매운동 이후 매출이 급감했고 결국 경쟁사인 매일유업에게 밀려났다.
그러나 작년 남양유업은 흑자전환에 성공하였고, 올 상반기에는 작년 대비 2배 가까운 영업이익을 내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최근 매출에 난항을 겪고 있지만, 이는 불매운동의 영향이라기보다 전반적으로 유제품 업계가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점점 약해지는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남양유업 불매운동은 윤리적 소비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남양유업 방지법(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 통과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받는다.
남양유업 불매운동은 피해 당사자인 대리점주들과 일반인이 주도한 ‘아래로부터 운동’의 전형이다. 당시 CU, GS25, 세븐일레븐 등의 점주단체연합회는 남양유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진행하겠다는 공식성명을 낸 바 있다. 또 대리점주들은 최근까지 남양유업의 갑질을 규탄하는 시위를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일반인들은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남양제품 불매를 선언·인증하고 청원운동을 벌였다. 유제품의 경우 선택의 폭이 넓고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 일반인들도 큰 불편함 없이 불매를 실천할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이두찬 초록소비연구소 소장은 “소비자 운동의 역사가 긴 나라에서는 사회운동을 일종의 ‘캠페인’으로 인식하고 때로는 유쾌하게 풀어낼 줄 아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불매운동도 작정하고 해야 하는 것으로만 인식한다”며 “남양유업 사례는 불매운동의 참여가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을 이끈 사례”라고 말했다.
폭스바겐은 배기가스 조작 논란 이후에도 각종 프로모션으로 매출이 급증했다. |
#폭스바겐 사례: “소비자 입장에선 저렴한 가격이 최우선”
독일 자동차업체 폭스바겐의 사례는 기업의 윤리보다 경제적 이득이 구매에서 중요하게 고려되는 경우의 전형이다. 폭스바겐은 지난해부터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 문제로 전 세계적인 논란을 가져왔다. 더불어 소음 보고서 조작 등의 추가 위법 사실이 알려지며 지난달 미국에서는 18조에 달하는 배상을, 독일에서는 370만 대 이상의 차량 리콜을 시행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반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측은 국내 피해자들에게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많은 폭스바겐 차량 소유주들과 시민단체 등에서 한국 소비자를 우롱하는 폭스바겐의 태도를 꾸준히 지적해왔지만 사측은 “보상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었다.
그러는 사이 폭스바겐의 매출은 논란 이전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폭스바겐 ‘티구안’은 올해 상반기 누적 판매량이 4164대로 전체 베스트셀링카 1위를, 골프는 3061대 판매돼 3위를 차지했다. 한 개인의 사건에서 대대적인 불매운동으로 번진 남양유업 사태 때와는 비교되는 점이다.
이러한 기현상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경제적 유인이 가장 중요한 평가 잣대임을 보여준다. 폭스바겐은 사태 이후 전 차종 60개월 무이자 할부, 현금 구매 시 최대 1772만 원 할인 등의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해왔다. 외제차를 저렴한 값에 갖고 싶다는 욕망이 환경오염, 기업의 윤리성이라는 가치보다 앞선 것이다.
온라인상에는 이런 현상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한 네티즌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빈약한 사회적 자산은 연대의식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또 의지하면서 ‘인간으로서의 나’를 끊임없이 증명하는 과정이 연대의식이며 이는 곧 사회적 성숙함과 연결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폭스바겐의 경우 아직 불매운동을 운운할 단계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교수는 “소비자 의식의 부족이라기보다 차량의 경우 액수가 크기 때문에 우선 불매보다는 직접적인 피해를 본 소비자에 대한 보상에 관심이 쏠려 있는 것 같다”며 “보상 결과에 따라 항의시위나 불매운동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폭스바겐은 지난 7월 25일부터 34개 차종, 79개 모델에 대해 자발적으로 판매를 중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폭스바겐이 판매 중단된 차량에는 개정 법률을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동차 인증 취소에 따른 과징금을 축소하려는 의도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남양유업과 옥시의 불매운동이 비교적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대중이 직접적인 위협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반면 폭스바겐의 경우엔 자신의 소비가 타인과 환경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소비의 외부효과’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기에 제대로 된 불매운동이 일어나지 못했다. 외부효과에는 둔감한 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만 집중하는 건 분명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사회운동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본 경험의 부족과 그에 따른 동기부여 실패, 쓴소리를 ‘반(反)기업적인 태도’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 소비자단체 등의 주도자 부족은 국내 불매운동을 저해하는 요소들”이라며 “기업들이 문제에 대한 징후가 감지될 때 신속하게 대응하는 태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