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계열사들의 갑질 의혹으로 고사 위기에 몰렸거나 도산했다고 주장하는 전 협력업체들이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의 중재로 롯데 측과 협상에 나섰지만 최종 결렬됐다.
롯데 전 협력업체들이었던 신화·가나안·성선(보성)청과는 롯데 측이 협상과정에서도 ‘갑질 DNA’를 그대로 드러냈다고 성토한다. 사태 해결에 대한 본질을 외면한 채 사탕 하나 던져주기 식 제안들로, 안하느니만 못한 협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서울 소공동 롯데쇼핑 본사. 비즈한국DB |
신화와 가나안은 지난 3월 대·중소기업 간 갑을 문제에 대해 수차례 합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서민민생대책위를 찾아 롯데 측 담당자들과 만났지만 지난 5월 이후 사실상 협상 결렬 상태다.
우선 육가공업체 신화는 지난 2012년 7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롯데마트와 거래했다.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신화는 현재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를 밟고 있고 법원 의뢰로 외부 회계법인의 정밀 감사를 받은 결과 109억 원 규모의 순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화는 롯데마트가 자체 행사에 대해 30~50% 이하로 납품단가를 후려쳤고 납품대금에서 물류비로 8~10% 차감, 세절비 전가, 컨설팅 수수료 차감 등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신화는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공정거래조정원에 조정을 신청했고, 공정거래조정원은 지난해 11월 롯데마트에게 48억 1700만 원을 신화에게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롯데마트가 불복하면서 공정위는 지난해 12월부터 이 사건을 조사 중이다.
이런 가운데 서민민생대책위는 올 3월 롯데마트 측에, 신화에게 40억 원을 우선 변상하고 납품을 재개할 것을 제안했다. 김순환 서민민생대책위 사무총장은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에겐 신속한 사태 해결이 우선이다. 신화의 납품 재개에 대해 롯데마트, 신화, 서민민생대책위 3자가 합의서를 작성할 계획이었다. 서민생대책위가 보증을 서 이전 같은 롯데마트 갑질 논란이 재발되면 강력히 문제를 삼기로 했지만 입장차로 인해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윤형철 신화 사장은 “지난 2002년 회사 설립 이후 롯데마트와 거래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적자를 본 해가 없다. 공정거래조정원 지급금액 결정조차도 불복하는 게 롯데다. 서민민생대책위도 시민단체인 이상 더 적극적으로 국회에 문제제기, 기자회견, 시위, 롯데 상품에 대한 불매 운동을 전개하기를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협상과정에 참석했던 롯데 관계자는 “자신은 언론과 기자에게 어떠한 입장도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만 밝혔다. 이 관계자는 올해 1월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롯데마트의 신화에 대한 ‘삼결살 갑질’을 취재하자 윤형철 사장을 만나 “방송이 나가는 것을 포기하면 10억 원을 주겠다”고 제안한 인물로 드러났다.
도정업체였던 가나안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롯데상사의 협력업체였다. 가나안은 롯데상사의 약속 불이행과 상거래 위반으로 세무서 신고 금액만 144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가나안 전 주주 5명 중 4명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상태다.
롯데상사와 가나안에 따르면 양사는 2004년 한국 내 최첨단 라이스센터를 건립해 연간 3만 톤, 연매출 100억 원 이상의 쌀을 가공해 유통시기로 협업을 결정했다. 하지만 2006년까지 롯데상사가 가나안으로부터 공급받은 쌀 결제 대금은 4억 원에 불과했다. 롯데상사는 협업 조건으로 공장 설립과 기계 설비를 수입하기로 했지만 이를 가나안에 떠넘겼다. 또 2008년에는 갑자기 S 사라는 벤더를 통해야만 가나안이 납품할 수 있도록 거래조건을 바꿨다. 심지어 결제대금을 롯데상사 담당자와 S 사가 횡령한 사실도 경찰 수사에서 확인되었다.
서민민생대책위는 롯데상사 측에, 가나안에게 10억~15억 원의 금전보상을 하고 양곡 납품 재개와 김영미 가나안 전 사장이 현재 취급 중인 일본 고급비누를 롯데마트와 롯데홈쇼핑에 납품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협상자리에 참석한 롯데 측 관계자들은 가나안에게 “가능한 방법을 찾아 보겠다”고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롯데는 비누를 롯데마트 4개 매장에 시범적으로 납품하고 반응이 좋을 경우 납품 매장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김영미 전 사장은 “롯데마트 매장과 계약을 체결하고 비누를 납품하는 것은 개별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롯데 측이 협상에 나서자 기대를 했지만, 롯데 측의 태도는 사탕 하나 주고 달래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협상에 참석한 롯데 동반성장위원회 관계자는 “당시 최선을 다해서 입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하지만 비누는 홈쇼핑에서 취급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다. 그리고 유통업체는 납품물품의 성과를 보며 취급 매장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매장 모습. 비즈한국DB |
김정균 사장은 2009년부터 2013년 6월까지 성선청과로, 2014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보성청과로 롯데슈퍼(전신 CS유통 포함)와 거래했다.
서민민생대책위는 롯데슈퍼가 김정균 사장에게 3000만 원을 지급하고 납품 재개를 하도록 하는 방향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김순환 사무총장은 “김정균 사장이 정확한 피해액을 증빙할 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제안했다. 할인과 횡포가 없는 납품관계로 손실을 보전해나가는 방향을 모색했다. 그리고 합의서에 납품 재개 이후 롯데슈퍼의 횡포가 있다면 서민민생대책위에서 보증을 서서 강력히 문제 삼기로 했지만 입장차로 결렬됐다”고 말했다.
김 사장이 공정위와 법원에 문제를 제기하자 롯데슈퍼는 공정위와 법원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급조한 것으로 보이는 계약서를 제출했다. 지난 4월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을 받은 롯데슈퍼는 CS유통 시절 성선청과와 2009년 3월 13일 맺은 상품공급계약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급조된 흔적이 보인다. 사업자명이 ‘성선청과’가 아니라 ‘성성청과’로 기재돼 있고, 사업자등록번호 역시 틀렸다.
지난해 공정위 분쟁조정 과정에서 롯데슈퍼 측은 성선청과와 25% 수수료로 계약한 2013년 3월 29일자 특정매입거래계약서 등을 제출했다. 그러나 김 씨는 이 계약서는 자신은 물론 명의자 송 씨 또한 본 적도 없고, 날인한 사실도 없다고 한다. 즉 롯데슈퍼가 송 씨의 인감도장을 임의 날인해 서류를 위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사장은 롯데슈퍼를 상대로 지난해 11월 민사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올해 5월 소진세 롯데슈퍼 총괄사장과 세 직원을 사문서 위조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 이에 롯데슈퍼 측 변호사나 직원들이 김 사장 측 변호사나 직원들에게 5000만 원을 줄 테니 법원 소송을 취하를 제안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거래방식은 성선청과가 납품하면 롯데슈퍼 매장에서 판매 대금 15%를 공제하고 지급하는 수수료 매장 형태였다. 수수료마저 자신도 모르는 새 일방적으로 더 인상되었다는 것이 김 사장 주장이다. 적자에 허덕이던 김 사장은 2013년 롯데슈퍼 측에 납품계약 해지를 요구하며 사업을 정리하려던 과정에서 약정 수수료 15%가 아닌 최고 25%를 롯데슈퍼에서 일방적으로 차감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이 문제를 제기하자 2015년 8월쯤 롯데슈퍼 담당 상무는 2013년 4월부터 6월까지 약정된 수수료율보다 과다 차감한 2139만 원을 김 씨에게 지급하겠다는 확인서를 적어줬다. 롯데슈퍼는 이 금액만 피해금액으로 주장하는 실정이다.
김 사장은 “산지농가, 과일 도매상 등에게 제값을 치르고 롯데슈퍼에 납품해도 롯데슈퍼로부터 판매금액의 일정 부분만 수수료를 받았다. 그러나 팔수록 적자였다. 롯데슈퍼와 거래하면서 과로로 건강에 이상이 와 12번이나 수술했고 현재도 암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다. 문제는 내가 납품한 물건들이 팔리지 않을 경우 매장 손실처리에 악용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했다는 점이다. 이를 증언해줄 전직 롯데슈퍼 직원들과 과일도매상들이 있다. 롯데슈퍼는 있지도 않은 계약서까지 조작했다. 협상과정에서도 롯데슈퍼 쪽 담당자는 매장에 납품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지만 실제 납품은 매장이 결정할 일이라고 해 어처구니가 없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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