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짐)
# 100년 전, 서양식 건축과 양반 가옥을 찾아 광주의 어느 골목으로
이제 잠시 마음도 추스를 겸, 시간을 36년 전 그날이 아닌 그보다 훨씬 더 이전으로 되돌려 여행을 이어간다. 그 여정은 역시나 옛 전남도청에서 머지않은 곳에서 시작된다. ‘서양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남구 양림동 일대다.
1904년에 창립된 붉은 벽돌의 그림 같은 양림교회. ‘서양촌’에 자리 잡고 있다. |
양림동은 110여 년 전 기독교 선교사들이 광주를 전라 지역 선교의 거점으로 삼으며 모여들었던 마을이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흔적 덕분에 이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근대문화유산 걷기 여행지가 되었다. 1904년 유진 벨, 오웬, 어비슨 등의 선교사들이 정착하면서 병원을 개설하고 학교(수피아여고 등)와 교회를 세워 그 영향력을 넓혀갔다. 이어 그들이 만든 이 동네의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배출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이가 시인 김현승이다.
양림동 문화 예술 걷기 여행은 주민센터를 기점으로 아직 개발의 손을 덜 탄 마을길로 걸어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904년에 창립된 붉은 벽돌의 그림 같은 양림교회와 교회 부지 안의 오웬 기념각(1914년 건립)을 비롯해 어비슨 기념관, 1920년대에 지어져 광주에 남은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이면서 앞뜰의 푸른 잔디가 너무나 이국적인 우일선(윌슨) 선교사 사택 등이 이 시간여행에 함께한다.
특이한 것은 지어진 지 100년은 가뿐히 넘긴 이 건물들이 단순한 유적으로 남지 않고 여전히 다양한 구실을 하며 사람들을 맞이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더 번듯하게, 마치 지어졌을 그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한 흔적은 별로 없이 그 오랜 시간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있다.
서양식 근대 건축물에 더해 근대식 양반 가옥인 이장우 가옥 등도 들러볼 만하다. 고급스러우면서도 푸근한 정경이 내려앉은 정원을 바라보며 대청마루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인 김현승의 자취를 따라가보는 여정을 이어가도 좋겠다. 작은 동네이지만 이국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정취가 가득해 요즘 들어 꽤 많은 이들이 양림동 골목길을 드나들고 있다.
# 옛 터전 위에 새롭게 해석된 송정역시장
광주 시간여행의 마지막 여정은 103년의 시간이 다시 해석되어 사람들의 분주한 발길을 이어가는 공간이다. 호남선 KTX 개통으로 2시간도 채 안 걸리는 광주행의 관문인 광주송정역 바로 건너편에 자리한 ‘1913 송정역시장’이다. 이름 그대로 1913년에 세워졌던 이 오랜 시장이 새롭게 바뀐 모습으로 올해 선보이면서 (혹은 예의 창조경제의 대표적 모델로 부상하면서) 요즘 광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로 떠올랐다.
1913년에 세워진 송정역시장은 리모델링되어 젊은이들도 많이 찾는다. |
옛 정취를 살리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시장으로 달라진 이곳은 우선 재래시장 하면 떠올리는 틀에 박힌 풍경을 적당히 남겨놓되, 국내 한 카드사의 디자인이 가미되어 제법 세련된 풍경을 갖추었다. 시장의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던 가게에는 그 역사와 주인을 소개하는 간판이 설치되었고, 상인들이 떠나 비어 있던 자리에 젊은 여행자들도 반길 고로케, 롤케이크, 국수, 수제 어묵, 드립 커피 등을 선보이는 공간이 대신했다. 이제는 이름마저도 가물가물해진 의상실이 여전히 성업 중이고, 어르신 몇 분이 담소를 나누는 청과 점포도 어색하지 않다. 103년부터 이어오던 전통적인 시장의 이야기에, 흥미롭고 인상적이며 현대적인 정취가 더해진 것이다. 이색적인 간판의 글씨체와 색감 등은 그 자체로 볼거리 가득한 디자인 요소가 되어 젊은 여행자들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평일 낮에도 ‘장을 보러온’ 이들이 시장 구석구석을 오가고, 갓 구운 빵을 사러 가게 앞에 긴 줄을 드리우며, 수제 양갱과 다양한 간식거리를 맛본다. 기차에 오르기 전 속을 든든하게 채워줄 푸짐한 장국밥도 인기 있다. 시장을 찾는 세대의 폭이 넓어지고 그저 보기 좋게 꾸미는 게 아니라 지역 주민의 생업을 위한 대안도 되니 벌써부터 성공적인 도시재생사업으로 소문이 나면서 이를 배우려는 이들의 견학도 심심찮다.
무엇보다 이 시장을 둘러보는 사이 과거가 어떻게 현대적으로 멋지게 재해석되고 있는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양림동에서, 옛 전남도청에서, 금남로에서 오래된 것은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개발 시대를 지나 온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그 옛 시간과 공간들을 놓쳤는지 절로 질문이 떠올려진다. 36년 전 이 도시와 한반도에 몰아닥친 폭력의 역사와 100여 년을 무시로 넘나드는 흔적을 함께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곳. 광주를 떠나올 즈음 꽤나 오랜 시간 이 도시에 머물다 돌아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옛 가게들과 새로운 가게들이 공존하는 1913 송정역시장. |
광주 여행정보
광주문화관광포털: utour.gwangju.go.kr / 광주관광협회: www.gjtravel.or.kr
남기환 여행프리랜서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