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7.3% 인상한 6470원으로 결정했다. 재계와 노동계 모두 불만을 터트린다. 재계는 국내외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 과도한 임금상승은 경영 부담을 키우고, 근로자의 피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에 맞선 노동계는 최소생계수준을 보장해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정훈 알바노조위원장은 최저임금 1만원을 위해 국회 앞에서 단식투쟁을 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
먼저 경제단체는 원가 증가가 가장 큰 부담이다. 국내 기업·산업 구조의 특성상 대기업의 발주를 받아 1·2차 협력사가 생산·제조를 대행하는 경우가 대부분. 협력사는 대개 파견·일용 등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근로자를 많이 쓰는데, 이들의 임금이 오르면 협력사의 재무 부담이 커지고, 이는 곧 대기업으로 불똥이 튄다.
삼성중공업 협력업체 관계자는 “부품 적재나 운반과 같은 단순 업무는 협력업체의 계약직 근로자의 손에 맡기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이들의 일당 상승은 곧 삼성중공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도 커진단 뜻”이라고 설명했다.
재계는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거나 중소·소상공인이 위험할 수 있다고 수차례 경고하고 있다. 국내 경제5단체 중 고용·노동·임금 문제를 담당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저임금이 결정된 16일 새벽, 즉각 입장 자료를 내고 불만을 표출했다.
경총은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7%가 넘는 최저임금 인상이 이뤄졌다”며 “최저임금 근로자의 86.6%가 일하는 3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매년 2조 5000억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8%를 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기업의 성장세가 꺾여 임금인상 여지가 없다는 점은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재계는 또 인건비 부담 상승은 청년·노년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비용 증가를 견디지 못한 기업이 업무 숙련도나 성과가 낮은 근로자를 대상으로 계약 해지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 우광호 한경연 노동태스크포스(TF) 부연구위원은 “노동비용이 오르면 기업은 고용을 줄이거나 숙련근로자로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져 결국 피해는 저숙련·취약계층이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전제는 내년 최저임금을 견디지 못한 대기업이 협력사의 인건비 상승을 원가부담에 반영하지 않을 경우다. 취약계층을 앞세워 속내를 숨긴 셈이다.
그렇다고 노동계가 도덕적 우위에 선 것은 아니다. 지난 19일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노조가 23년 만에 공동 파업에 들어갔고,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와 성동조선해양 노조도 20일 동조 파업에 나섰다. 금융노조도 같은 날 총파업 결의대회를 했다. 6770원의 최저임금을 둘러싼 여론도 부정적이라 파업에 들어갈 적기를 맞은 셈이다.
다만 이들이 앞세운 대의명분은 ‘구조조정’과 ‘임금·단체협상 결렬’이다. 최저임금 문제는 후순위로 밀렸다. 이들은 원청에 해당하는 발주사 소속의 근로자인 데다 고용 구조상 정규직이다. 파업에 나서는 이유가 여름 임금단체 협약을 둘러싼 힘겨루기로 비칠 수밖에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국내 고용시장의 이중구조. 노조는 그나마 고용을 보호받고 많은 급여를 받는 정규직을 대표하는 집단이다. 굳이 당장 최저임금 문제를 다룰 이유가 없다. 과거 농협중앙회 등 일부 지부에선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를 따돌리고 회의 안건조차 못 올리게 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사회의 최약층인 비정규직과 최저임금 근로자들만 책임감 없고 눈앞의 안위만을 따지는 노사에 휘둘리고 있는 셈이다.
노총 위원장을 지낸 한 노동계 인사는 “최저임금 결정은 결국 행정부 고시가 아닌, 국회의 결정 사항으로 가져와야 할 문제”라고 조언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