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은 입구를 지나면 ‘인간계’와는 잠시 이별. 그리고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그 끝에는 ‘해리 포터의 마법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유니버셜스튜디오재팬(USJ)의 부활을 가져온 해리 포터의 마법세계. 출처=USJ |
2014년 여름.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유니버셜스튜디오재팬(Universal Studios Japan, USJ)’이 사활이 걸린 중요한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판타지소설 <해리 포터>를 충실히 재현한 공간, 일명 ‘해리 포터의 마법세계’를 개관한 것이다.
새로운 도전은 적중했다. 구름떼처럼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그야말로 대성공. 도산 위기에 빠졌던 지방도시의 테마파크가 일본 전국, 아니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는 테마파크로 거듭났다. 어떤 이는 “마법에 홀린 듯하다”며 놀라워했고, 어떤 이는 “USJ가 위험한 도박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표현했다. 건설 투자액만 450억 엔(약 4850억 원). 이는 당시 USJ의 매출액만 놓고 봤을 때 “엄청난 모험을 감행한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정확한 평가는 아니다. USJ의 성공 뒤에는 ‘마법’이 아니라 통계라는 수학적 마케팅 전략이 있었다. 더불어 위험한 도박이 되지 않도록 성공 확률을 높이는 전략을 진두지휘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USJ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모리오카 쓰요시(43)다.
유니버셜스튜디오재팬의 최고마케팅책임자 모리오카 쓰요시. 출처=USJ |
“수학이 쓸모없다고 말하는데, 완전히 틀린 이야기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확률과 통계는 제대로 공부하는 편이 좋다.”
모리오카는 일본 경제지 <주간다이아몬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덧붙여 “USJ가 극적인 부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수학의 힘이 컸다”고 전했다. 대체 어떤 사연일까. 좀 더 구체적으로 USJ의 재건 과정을 살펴보자.
2001년 오사카에 문을 연 USJ는 손님이 줄면서 한때 도산 위기에 빠졌다. 재건을 위해 USJ가 선택한 ‘구원투수’는 모리오카 쓰요시. 그는 P&G 등 외국계 기업을 거치며 경력을 쌓아온 마케팅전문가였다. 솔직히 당시의 USJ로 말할 것 같으면, 적자의 늪에 빠져 부활과는 거리가 멀었던 상황. 그러나 모리오카는 자신이 구상한 전략을 펼치는 것이 가능한 회사를 찾고 있던 터라 ‘여기가 딱이다’ 싶었다. 2010년 6월, 이제 막 USJ에 입사한 모리오카의 머릿속은 온통 ‘확률’로 가득 찼다.
우선 성공 확률이 높은 아이디어를 순차적으로 정리하고, V자 회복을 위한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첫 번째가 해리 포터라는 ‘대형 로켓’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커다란 장벽이 존재했다. 자금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450억 엔이라는 어마어마한 투자액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이다. 모리오카는 대형 로켓에 앞서 즉효성이 있는 ‘소형 로켓’을 여러 개 발사하는 작전을 세운다.
통계를 바탕으로 USJ의 약점이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부족하다는 것에 착안, 스누피와 헬로키티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로 꾸민 ‘원더랜드’ 구역을 만들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관광객을 끌어모으겠다는 전략이었다. 또 통계학적 회귀분석을 통해 절규머신(스릴 넘치는 놀이기구)에 대한 성장 잠재력도 발견했다. 자료를 분석했더니, 흥미롭게도 방문객의 분포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나타난 것이다.
스누피와 헬로키티 캐릭터를 활용해 가족 관람객을 끌어들인 원더랜드. 출처=USJ |
모리오카는 절규머신을 확대 설치하고, 할리우드 테마 일색에서 벗어나 <에반게리온>, <진격의 거인>, <원피스> 등 일본 인기 만화를 접목시킨 새로운 공간도 마련했다. 더 많은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였다. 확률과 통계를 활용한 모리오카의 아이디어는 모두 히트를 쳤고, 그의 계획대로 ‘소형 로켓’들이 해리 포터를 위한 현금제조기로 착착 자리 잡기 시작했다.
동시에 모리오카는 해리 포터라는 ‘대형 로켓’의 발사 성공률 예측을 추진했다. 사실 확률과 통계를 통해 수요예측을 산출한 뒤라서, 투자 회수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 붙은 상태였다. 하지만 회사의 존망을 좌우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자기와는 다른 각도로 성공 확률을 분석한 자료가 필요했다.
유명한 시니어 애널리스트에게 해리 포터의 수요 예측을 의뢰했다. 그 결과, 모리오카의 예측은 240만 명, 애널리스트의 예측은 210만 명이었다. 애널리스트가 실패를 염려해 보수적으로 추산한 것임에도 놀라운 숫자가 나온 것. 주위에서 모두 “관람객 200만 명은 어림없다”고 우려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그동안 “해리 포터 테마존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맹렬히 반대하던 사내 여론도 급격히 돌아섰다.
다만, 관람객 200만 명 달성 시나리오에는 ‘브랜드 인지율 90%’라는 요소가 안전장치로 뒷받침돼야 했다. 요컨대 “일본 남녀노소 대부분이 USJ에 해리 포터 테마존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때 모리오카가 떠올린 묘책은 관련 저서를 집필하는 것이었다. 위기를 맞았던 USJ가 어떻게 V자 회복을 달성했는지를 담은 책을 출판했고, 보기 좋게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면서 매스미디어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2014년 7월에 개관한 해리 포터 테마존. 출처=USJ |
더욱이 인지도 90%를 달성하기 위해 최고난도의 마케팅에도 도전했다. 2014년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캐롤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 대사를 초청해 ‘해리 포터 테마존’ 개관일자를 발표하게 한 것이다. 민간 테마파크인 USJ가 ‘일본 관광업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제의한 결과, 일본 정부가 이에 응하면서 성사된 ‘충격의 마케팅’이었다.
해리 포터 테마존 개관일. 수많은 언론과 인파가 몰렸다. <주간다이아몬드>에 따르면, 2001년 USJ가 개장했을 때보다 10배 이상의 홍보 효과를 누린 것으로 추정된다. 인지도는 90%를 넘었으며, 관람객 200만 명 달성도 거뜬히 달성했다. “불확실한 비즈니스 환경의 최종병기는 수학”이라는 모리오카의 말이 입증된 순간이었다.
강윤화 외신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