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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주노와 주피터의 데스티니

2016.07.17(Sun) 18:33:55

“너는 내 Destiny / 날 끄는 Gravity / 고개를 돌릴 수가 없어 / 난 너만 보잖아…”

지난 봄 발표된 걸그룹 ‘러블리즈’의 노래 <나의 지구(Destiny)> 가사의 일부분이다. 중력에 사로잡혀 지구만 바라보는 달의 심정이 담긴 노래인데, 그 지구는 또 태양만 바라보고만 있으니 애절하다. 이 노래는 여러 중고등학교의 과학시험에 지문으로도 출제된 사진들이 인터넷에 올라와 네티즌들 사이에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 노래가사처럼 중력이 누군가를 사로잡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 2011년 8월 지구를 떠난 목성 탐사선 주노가 올해 7월 4일(미국 기준) 목성의 궤도에 도착했다.

5년이나 걸린 이 여행에서 주노가 목성으로 곧장 나아간 것은 아니다. 지구와 목성의 중간쯤을 한 바퀴 돌고(여기까지 2년 걸렸다), 다시 지구 근처로 돌아온 주노는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속력이 빨라졌다. 힘을 얻은 주노는 방향을 바꾼 후, 다시 3년을 날아 목성에 도착했다.

   
주노의 경로. 출처=NASA/JPL

이렇게 어떤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우주선의 속력을 빠르게 하는 것을 ‘플라이-바이(Fly-By)’라고 한다. 투포환 선수가 줄에 매달린 포환을 돌리다가 던지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주노는 목적지가 목성이므로 지구의 중력을 이용했지만, 태양계 바깥을 향하는 우주선은 대개 목성을 이용해 플라이-바이를 한다. 태양계 행성 중에서 제일 큰 목성의 강한 중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주노의 비행경로는 아래 유튜브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노는 플라이-바이를 이용해서 목성까지 가는 데 필요한 추진력의 절반을 얻었다. 만약 로켓만을 이용해서 주노를 목성으로 보낸다면 훨씬 더 큰 로켓과 더 많은 연료가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플라이-바이를 하는 동안 지상의 엔지니어들은 주노가 목성에서 해야 할 일을 리허설하면서 여러 사항과 기기들을 테스트할 수 있었다.

주노가 목성 가까이 도착했을 때의 속력은 시속 26만km가 넘었다. 이때는 역추진 로켓을 이용해 속력을 줄이고 자리를 제대로 잡아야 목성의 주위를 돌 수 있다. 목성의 중력에 끌려가 떨어지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두기 위해서는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방향으로 정확한 시간 동안 주노의 엔진이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주노는 약 35분 동안 시속 2천km 정도를 감속하는 것에 성공해 목성 주위를 도는 궤도에 일단 안착했다. 그리고 오는 10월에 임무를 위해 목성 구름 위 5천km 높이의 궤도로 옮겨가 약 17개월 동안 목성을 관찰하게 된다. 목성이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거대한 오로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등이 주노의 관측을 통해 과학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들이다.

   
목성 상공의 주노 상상도. 출처=NASA/JPL

가스형 행성인 목성의 짙고 깊은 구름을 뚫고 주노는 목성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목성의 영어 이름인 주피터(Jupiter)는 그리스의 최고신인 제우스의 로마식 이름이다. 자신의 부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안개와 구름을 몰고 다닌 주피터는 유명한 바람둥이다. 과학자들이 60개가 넘는 목성의 위성에 대부분 주피터의 연인 이름을 붙일 정도이다. 주피터의 정실인 주노(그리스 이름은 헤라)가 이번 탐사선의 이름인 이유가 여기 있다. 주노에게는 남편이 만든 안개와 구름을 뚫고 살펴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연인들을 위성으로 거느리고 있던 주피터에게 아내 주노가 이제야 도착했다. 과학자들은 주피터를 샅샅이 살펴볼 마음에 주노를 보냈지만 연인들과 함께하고 있는 남편을 만난 주노의 심정이 달가울지는 의문이다. 짓궂게도(?) 주노가 임무를 마치면 생물학적 오염을 피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주노를 목성에 충돌시켜 불태울 계획이다. 지구의 중력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그 지구의 중력으로 힘을 얻고, 바람둥이 남편을 만나 남편의 중력권에서 돌던 아내의 최후가 남편의 중력에 끌려가 그 품에 영원히 안기는 것이라니. 마지막 순간의 주노는 이 얄궂은 운명(Destiny)이 참으로 미울 터이다.

정인철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

   
 

중앙대학교에서 물리를 전공했고, 지금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물리를 강의한다. 친구랑 수다 떨듯 과학을 이야기하는 과학 알림꾼으로서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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