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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방 무산, 탁상행정에 4차 산업혁명도 없다

‘안 된다, 없다, 하지마라’ 규제 되레 급증…“기업 경쟁력 떨어뜨리는 요인”

2016.07.14(Thu) 15:20:54

지난 6월, 국내 첫 ‘가상현실(VR)’방 출시를 앞뒀던 와우인사이트가 돌연 출시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기기 전파인증과 게임등급물 심의 규제를 넘지 못했기 때문. 와우인사이트는 사업 방향을 돌려 VR 플랫폼 스타트업으로 재도전하겠단 의사를 밝혔다. 이에 정보·통신(IT) 및 프렌차이즈 업계는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VR방은 삼성 ‘기어VR’과 같은 VR기기를 쓰고 게임 등 체험 콘텐트를 즐기는 공간이다.

   
삼성 갤럭시 기어VR을 체험하는 모습. 출처=삼성전자

지난해 8월 호주 멜버른에서 세계 최초의 VR방 ‘제로 레이턴시’가 문을 연 이후 중국 상하이 등 전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PC방 대국인 한국에서 VR방이 등장하면 관련 시장이 성장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던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모든 전자기기는 국내 전파인증을 거쳐야 한다는 정부의 완고한 입장 탓에 한국은 VR분야에서 한걸음씩 뒤처지기 시작했다. 오큘러스의 창업자 팔머 럭키는 ‘오큘러스 리프트’의 1차 출시 제품을 한국에 선보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정부 규제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셈이다.

SK E&S가 지난해 10월 준공한 하남 열병합발전소. 하남시 등 관계 당국이 발전소 설계 단계부터 배관 설치 구간을 일일이 간섭하는 바람에 당초 예정보다 1년 늦은 2014년 10월에야 첫 삽을 떴다.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발전소 위치도 엉뚱한 곳으로 바뀌었다. 발전소 건설이 지연되면서 입주를 시작한 위례신도시에 열을 공급할 수 없었다. 이에 수백억 원을 들여 열 공급용 보일러까지 들여놔야 했다. 당국의 간섭으로 일이 여러모로 꼬여버렸다.

이 탓에 이 발전소는 현재 자본잠식상태에 빠졌으며, 올해도 200억 원의 영업손실을 볼 전망이다. SK E&S로선 당국의 공연한 간섭에 피해만 입은 셈이다.

한 IT 스타트업 관계자는 “규정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다는 논리로 새로운 사업을 가로막고, 또 막상 규정을 만들면 그 틀 안에서만 기업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려고 한다”며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2010년부터 불기 시작한 스타트업 열풍이 한국에는 왜 4년 뒤에나 상륙했는지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정부의 탁상 행정과 간섭 탓에 한발을 내딛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빅데이터·드론·전기자동차·자율주행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이 일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먼발치에서 해외의 시장 변화만 바라보고 있다. 기업들은 산업 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발 빠르게 대응하려 하지만, ‘관련 규정이 없다’거나 ‘규정에서 어긋난다’는 정부의 입장에 막혀 새로 일을 벌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부의 규제개혁안에 따르면 1998년 규제 등록제도 도입 이후 감소하다가 지난 5~6년 전부터 증가 추세다. 규제를 행위 단위로 계산한 첫해에는 규제 수가 1만 185개였던 것이, 2000년에는 6912건으로 감소했고, 2007년엔 5114개로 급감했다. 그러다 2009년 규제 등록 방식이 변경되면서 1만 2878개로 급증했고, 2013년에는 1만 5269건으로 불어났다. 현 정부는 당초 올해 말까지 규제를 1만 3069개로 줄인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규제 철폐에 실패하며 규제 건수 관리제를 지난해 도입 17년 만에 폐기했다. 규제개혁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규제는 왜 줄지 않고 불어나기만 할까. 전문가들은 한국의 정부 주도형 산업 정책과 인·허가제,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 방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국경 없는 무한 경쟁시대에 국제기준과 맞지 않는 갈라파고스 규제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며 “국가경제 차원에서 규제에 따른 비용과 편익을 비교해 규제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왼쪽)이 3월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의 아이디어룸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일례로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미국은 인가제로 운영하고 있어 여러 기업들의 참여와 다양한 서비스, 실험적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타 업종의 은행업 진출’을 전제로 관련 법령을 개정해 총 6개의 인터넷전문은행이 성업 중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은행업은 허가제인 데다, 은행법이 열거주의에 기초하고 있어 법이 명시하지 않은 업무는 추진할 수 없다. 신산업의 등장 및 산업 혁신에 대처할 때마다 행정부의 입법예고와 법제처 심사, 국회 공청회, 상임위원회·본회의 의결 등 지난한 입법 절차를 밟아야 한단 뜻이다.

정부는 지난 5월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빅데이터·O2O(Online to Offline) 4개 분야의 규제 53건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규제개선을 위해 유사·중복과제를 통합, 기업의 신사업 추진에 날개를 달아주겠단 것이다. 다만 규제 개선 내용이 △전파 출력기준 상향 △신규 주파수 추가 공급 △요금제 개선 △공공채용정보 사이트 저작권 문제 개선 등 미시적인 사업 활성화 대책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불필요한 정부 허가나 인증 절차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는 읽히지 않는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공무원들로선 퇴임 후 일자리 확보나 업무 편의 등을 위해 기업 규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공무원의 전관예우 금지와 같은 강도 높은 대책이 없는 이상 규제 완화를 이루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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