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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노포열전] 청진옥, 뜨끈한 해장국의 위로

2016.07.12(Tue) 08:59:20

필자가 <백년식당>이라는 책을 내자, 어느 기업에서 강연 요청이 왔다. 책에 쓴 저자 서문을 보고 ‘느낀 바 있어’ 한 요청이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썼다.

“백년식당에 준하는 오래된 노포의 공통점이 있다. 직원 근속기간이 아주 길다는 점, 상당수 식당은 정년 없이 장기근속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제 우리는 두 가지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인구 절벽과 노인 노동의 현실화다. 사람이 없으니 노인이 일하고, 부양해줄 청년세대가 없으니 또 일해야 한다. 이런 현실이 닥치기 전에 이미 노년 고용을 실천하고 있는 곳이 이른바 노포(老圃)이고, 백년식당들이었다. 첫 회에 쓴 우래옥이 그랬고, 지금 쓸 청진옥이 그렇다.

   
청진옥의 옛 모습. 1937년부터 지금까지 ‘솥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영업해왔다. 사진=청진옥 제공

청진옥 최준용 사장(47세, 3세 경영인)은 내게 이런 자료를 내밀었다. 직원근속 기간 요약이었다. 직원 12명, 평균 나이 58세, 근속기간 18.5년(작년 기준). 여기에는 놀라운 인물들이 많다.

우선 주방장이다. 59세인 그는 3형제 연속 근무로 유명하다. 맏형이 근무하다가 나이 들어 퇴직하고, 둘째형이 그 자리를 이었다. 그리고 막내인 그가 다시 자리를 이은 것이 이미 43년째다. 한 마디로 ‘말이 안 되는’ 집안의 장기 근무다. 1952년생인 박춘○씨는 16세에 입사, 67세인 현재까지 49년을 근무하고 있다. 중간에 몸이 아파 2년간 휴직한 것을 뺀 연수다. 야간 지배인을 맡는 이상○씨(43년생)는 45년째 근무 중이다. 이런 직장이니 잘 안 돌아갈 리가 없다. 모두 베테랑이요, 모두 주인이다. 장기근속 직원이 있다는 건, 그만큼 가게가 잘 되었다는 뜻이다. 망한 가게는 장기근속이 불가능하니까.

청진옥을 이렇게 직원 근속 건으로만 보는 건 부당(?)하다. 우리 요식업의 맛, 서울의 맛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청진옥은 부엌 가마솥의 불을 끄지 않는다. 6·25동란 때도 대구에서 불을 피워 해장국을 팔았다고 한다.

청진옥은 최동선, 이간난 부부가 1937년 현재의 자리 근처에서 창업했다. 청진동 가까운 곳, 그러니까 지금 종로세무서 자리에 나무장이 아주 크게 있었다고 한다. 서울 사람들이 대개 나무를 때던 시기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나무꾼들과 짐마차가 여기에 몰려 왔겠는가. 그들은 집짐 부리고 한 그릇의 해장국을 들었다. 바로 청진옥 해장국이었다. 서울의 대표음식으로 설렁탕과 해장국이 자리 잡은 것은 이런 노동문화와 관련이 깊다. 서울은 많은 자원을 소비하는 전형적인 소비도시였고, 노동 음식도 잘 팔렸다.

   
뜨끈한 한 그릇의 위로, 노동자의 음식 청진옥 해장국.

다음 세대인 최창익, 김재인 부부에게 이어진 가게는 최 씨의 작고로 현재의 준용 씨에게 넘어왔다. 소뼈를 고고 채소와 선지를 넣어 맛을 내는 전형적인 서울식 해장국이 지금도 청진동에서 끓고 있다.

“아버지 유언이 ‘절대 솥의 불을 끄지 말라’였어요. 그래서 상중에도 영업은 했습니다.”

청진옥이 단순히 음식 파는 식당이 아니라 서울의 어떤 상징, 노동하는 이들의 유산이라는 걸 명확하게 보여주는 일화다.

옛날 해장국의 맛은 어땠을까. 어려서부터 해장국을 먹으며 자라온 최준용 사장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 말한다. 소가 먹는 사료와 재료가 달라지고는 있겠지만, 청진옥에서는 최선을 다해 과거의 맛을 이어가려고 한다는 뜻이다.

취재를 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았다. 옛날에는 해장국을 먹으려면 대개 손님이 밥을 ‘휴대’하고 왔다고 한다. 가게에서 다량의 밥을 짓기도 어려웠고, 쌀도 귀했다. 가져온 밥에 국만 사서 훌훌 마시는 경우가 흔했다. 찬밥을 가져오니 자연히 토렴을 해야 했다. 토렴은 찬밥에 가마솥의 국물을 몇 번씩 헹궈 넣으면서 밥을 데우는 방식이다. 숙달된 기술이 필요하다. 요즘은 따끈한 밥을 제공할 수 있고, 따로국밥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 점차 사라지고 있는 ‘민속 조리기술’이다.

   
청진옥의 해장국은 소뼈를 고고 채소와 선지를 넣어 맛을 내는 전형적인 서울식 해장국이다.

청진옥은 몇 번의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우선 70년대 고고장 문화다. 고고장에서 놀고 온 사람들이 주린 배를 채우는 공간이었다. 그 새벽시간은 심야노동을 한 말단노동자와 새벽출근을 하는 이들이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다음으로 전두환 정권의 통금폐지였다. 경제 활황으로 24시간 생활 사이클이 생겨난 것도 한몫했다.

여전히 청진옥은 몇십 년 단골과 시내에서 새로 유입되는 젊은 청년층이 뒤섞여 밥을 먹는 희한한 현장이 된다. 한 그릇의 따끈한 해장국, 고난의 시대를 해쳐온 이들에게는 역사의 음식이며, 새로운 세대는 대를 이어 받은 전통음식 문화다. 언제든 청진옥을 들르시라. 절대 솥의 불이 꺼지는 일이 없으니까. 늘 뜨거운 해장국으로 우리를 위로해줄 테니까.

   
 

박찬일 셰프

서울에서 났다. 1999년부터 요리사로 살면서 글도 쓰고 있다. 경향에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한겨레에 <박찬일의 국수주의자>(문자 그대로 국수에 대한 연속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단행본으로 한국의 오래된 식당을 최초로 심층 인터뷰하고 취재한 <백년식당>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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