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매튜 본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보러 갔었다. 예상대로 여자들만 그득했다. 혼자 오거나 친구와 함께 온 여자들, 남자 데리고 온 여자, 가족 데리고 온 여자 등 여자 8할에 남자 2할 정도였다. 남자는 연애할 때나 가족과 나들이 차원에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친구들끼리 공연 보러 가는 건 참 드물다. 혼자서도 가지 않는다.
▲ 매튜 본의 댄스 뮤지컬 <잠자는 숲속의 미녀>. 출처=LG아트센터 |
뮤지컬 공연뿐 아니라 오페라, 발레, 클래식 연주회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해외 유명 뮤지션의 내한공연이나 록페스티벌을 가도 여자가 더 많다. 다양성영화 혹은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씨네큐브나 아트하우스 모모 같은 영화관에서는 여자들의 수가 압도적이다. 신기하게도 남자는 혼자 또는 남자끼리 오는 경우가 드물지만, 여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럴까? 여자들은 문화예술 공연이나 전시를 좋아해서 간다. 그렇기에 데이트와 상관없이 혼자서라도 간다. 하지만 남자들은 여자와 함께 가는, 즉 데이트의 수단으로서만 문화예술 공연을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예술 공연을 도구로만 쓸 뿐, 그 속에 담긴 예술적 감성이나 취향을 소비하는 게 아니다.
과거, 성공한 남자는 정치, 경제를 화제로 삼으며, 돈 얘기와 와인이나 골프, 자동차 얘기를 했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성공한 남자는 디자인, 건축, 예술, 여행, 공연, 책, 패션 등을 경험하고 안목을 가진 남자다. 그런 남자야말로 요즘 여자들이 가장 매력 있다고 여기는 남자다. 남자의 클래스업은 비싼 차, 비싼 시계, 명품 패션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좋은 안목과 취향이 중요하다.
비싼 차나 명품으로 자신을 꾸미는 건 돈만 있으면 단기간에 할 수 있지만, 좋은 안목과 취향을 쌓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멋진 남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웃기는 사람이 필요한 것도, 특이한 무용담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서울의 뮤지컬이나 오페라 공연장에서도 남녀가 반반인 상황을 만나고 싶다. 남자도 혼자서, 남자끼리 오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나고 싶다.
싱글남이라면 문화예술 공연장에서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다. 예술영화 상영관의 마지막 상영시간에 혼자 가보라. 경험상 그 시간대에 씨네큐브나 아트하우스 모모, 혹은 CGV아트하우스를 찾으면 관객이 그리 많지 않은데, 그중에는 혼자 영화를 보러온 여자들이 많다. 그것도 꽤 멋지고 매력적인 여자들이 말이다.
로맨틱한 영화일 때도 좋고, 깊이 있는 인간적 철학을 논하는 영화여도 좋다. 영화 후 젠틀하게 말을 건다면 우연 같은 인연이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장소가 술집이나 길거리였을 때보다 분명 상대의 반응이 훨씬 호의적일 거다. 같은 공감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이나 오페라, 혹은 발레 공연은 주말 저녁시간이 좋다.
물론 이게 첫 번째 목적이어선 안 된다. 공연을 보러 왔다가, 정말 서로 운 좋게 눈빛이 통한 경우라면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셔도 좋다는 얘기다. 물론 공연과 예술에 대한 얘기로 풀어가야 한다. 차 자랑을 하거나 직업, 또는 연봉 얘기는 금물. 주변의 싱글남들에게 늘 이야기해주지만 막상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들은 없다.
이런 우연을 기대하지 않더라도 다양성 영화나 문화예술 공연을 계속 보다 보면 그만큼 안목과 취향이 생겨 결국 좀 더 괜찮은 남자가 될 수 있다. 길게 보면 매력적인 여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방법이다.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에 견줄 수 있는 게 대화가 잘 통하고 재미있는 남자다. 적어도 좋은 취향과 안목이 바탕이 된 풍부한 이야기는 외모와 돈의 가치를 상쇄할 만하다.
남자의 클래스는 곧 그 남자의 매력도를 말한다. 그 남자가 쌓은 사회적 지위가 아닌 그 남자가 살면서 쌓은 경험치와 식견, 애티튜드가 바로 매력도가 된다. 요즘 여자들은 적어도 이런 남자들을 알아본다. 이건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제 남자들도 그런 남자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멋진 남자는 비즈니스에서건, 인간관계에서건, 남녀사이에서건 훨씬 더 유리하지 않은가.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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