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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청자와 다산, 그리고 바다, 전남 강진

2016.07.08(Fri) 13:47:21

제주에서 올라오는 말이 배에서 내려 처음 땅을 밟았던 곳이자 고려 시대에는 송도(개성)의 궁궐로 최고의 청자를 만들어 올렸던 곳. 바다가 깊고 산이 높아 아늑한 풍광에 기름진 흙으로 다져진 고장.

전라남도 강진은 우리 민족 최고의 보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고려청자의 진수와 한 실학자의 고독한 삶, 그리고 넉넉한 바다의 풍경을 더불어 경험하는 여행을 이끌어 줄 것이다.

 

고려 문화 예술의 절정, 청자의 이야기를 따라서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전라남도 강진은 그 지형부터가 꽤나 독특한 걸 알 수 있다. 마치 두 다리를 살짝 벌리고 선 사람의 하체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 다리 사이로 좁고 깊은 강진만이 너른 남도 바다와 이어진다. 바다는 안온하고 갯벌이 깊으니 비옥한 땅이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다. 청자를 만들기 위한 질 좋은 흙이 강진에서 났으리라는 생각도 뒤따른다.

서울을 출발해 5시간은 족히 걸려 도착한 강진의 첫 여행지는 단연 강진 고려청자의 역사와 뛰어난 미감을 확인하는 ‘고려청자박물관’일 것이다. 박물관이 세워져 있는 강진군 대구면은 물론 인근 칠량면 일대에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약 200개에 이르는 청자 요지가 분포했다고 하니 고려청자 최고의 산실이면서 그야말로 그 자체로 보물창고라 할 만하다.

   
1 청자박물관, 2·3 청자빚기 체험, 4 강진청자축제(강진군청 제공) 모습.

박물관 정문을 지나 본 전시관으로 들어서기 전에도 박물관 앞뜰에는 청자를 테마로 한 갖은 볼거리들이 풍부하다. 도공의 모습을 표현한 동상들이며, 깨어진 청자 파편인 사금파리로 가득 채워진 조형물이 특히 눈길을 끈다.

그뿐만 아니다. 앞뜰 곳곳에 청자 작품들이 무시로 놓여 있고 가로등 기둥마저 청자로 빚어 만들어 놓아 이채롭다. 박물관의 외관 벽면과 지붕도 청자로 마감해 놓아 박물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청자 작품인 셈이다. 옛 고려 왕궁이 청자기와(청기와)를 얹었다는 사실을 재현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어 한참을 쳐다보게 한다. 아이의 손을 잡고 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만져보며 산책을 할 수 있어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자꾸만 지체되는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된다.

박물관 안에는 고려청자의 역사와 뛰어난 기법, 그리고 강진의 청자 요지에 대한 풍부한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어 찬찬히 둘러보기 좋다. 그렇지만 역시나 이곳의 진가는 숱한 고려청자 전시품들에서 빛을 발한다. 청자양각연판문발과 청자상감매로학접문사이호, 청자상감연국모란절지문과형주자, 청자상감국화문임신명 접시 등 우리 전통의 ‘명품’이자 ‘보물’들이 펼치는 향연이 관람객들의 발목을 붙든다. 청자를 실어 나르던 목선의 모형과 당시의 시대를 짐작할 수 있는 많은 유물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으니 이만한 역사 공부가 없을 듯하다.

재미있는 것은 전시관을 둘러보기 전 박물관 1층 로비에 진열되어 있던 많은 도자기 작품들이다. 알고 보니 매주 토요일이면 인근 공방과 도요지에서 만들어진 작품들로 박물관에서 경매가 열리는데, 그 주의 경매품을 미리 볼 수 있게 배려한 것이란다. 실제로 이곳의 도자기 경매는 미술품 애호가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명하다.

강진의 고려청자박물관은 진귀한 보물을 전시하고 그 역사를 들려주는 역할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야외에 고려청자 가마터를 복원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별관에서는 관람객들이 손수 도자기를 만들어 보는 체험을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실제 도공들이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찬찬히 둘러볼 수도 있다. 미리 신청하면 도자기 빚기 체험에 참가하게 되는데 간단한 코일링에서 완성된 그릇에 무늬나 그림을 새겨 넣어 완성하는 조각, 그리고 물레 빚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 특히 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은 고려청자의 본고장에서 좋은 추억 거리 하나, 그럴싸한 도자기 작품 하나 완성하고 돌아갈 수 있어 의미와 재미 모두를 챙겨보게 될 것이다.

고려청자박물관 정문을 나오면 건너편으로 옛 도자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듯 크고 작은 공방과 전시실, 도자기 판매점 등이 하나의 마을을 이룰 만큼 규모 있게 조성되어 있다. 현대적으로 해석된 청자와 전통 도자기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 이곳들을 찬찬히 둘러본다면 고려청자박물관에서 경험했던 1천년의 미감 못지않게 흥미로운 시간이 될 듯하다.

 

다산의 10년 유배와 방대한 저술의 산실, 다산초당

강진에서 고려청자의 역사와 전통을 경험한 뒤 향한 곳은 다산 정약용 유배지인 ‘다산초당’이다. 강진만이 한눈으로 굽어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 와 머물렀던 공간이다.

   
다산초당. 초당 마루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저 멀리 강진만을 바라보자.

다산은 1801년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이어 황사영 백서사건이 벌어지자 유배지를 강진으로 옮겼는데, 첫 8년이 지난 후 1808년 봄 이곳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된(유배가 풀린) 1818년 9월까지 꼬박 10여 년을 살았다. 그러는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고 동문들과 교류하며 세월을 보냈는데, 특히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다산을 대표하는 저서들을 포함한 6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이 이루어진 공간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산 중턱 길을 20여 분 올라가면 포근한 느낌이 감도는 작은 터에 초당이 마련되어 있다. 원래 시간의 풍파에 무너졌던 것을 1957년에 최대한 옛 모습대로 복원한 건물들인데, 주변 산세와 먼 바다의 풍경과 더불어 선생의 10년 세월을 더듬어 보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초당 앞에 조성된 연못 한가운데 ‘연지석가산’이라는 이름의 작은 돌산을 쌓은 풍경이며,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이 공간의 이름에 걸맞게 차를 즐겼던 흔적(차를 끓이던 반석인 다조와 약수인 약천 등)도 자연미 가득한 미감을 품은 볼거리이다.

둘러보는 사이 잠시 여유를 부려 초당 마루에 앉아 보길 권한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초당 주변의 대나무를 훑어 지나는 소리가 들리고 저 멀리 강진만이 보이는 이 순간은 어쩌면 다산이 10년 세월을 이곳에서 머무를 수 있었던 크나큰 위로가 되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어우러진 초당의 면면은 옛 현인이 남긴 흔적이 2016년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끈이 되어 줄 것이다.

 

제주의 말을 건네주던 다리였던 항구, 마량항

다산초당을 나와 강진 앞바다의 매력을 즐겨 보면서 강진 여행의 추억 하나를 더하고 싶다면 맑은 바다가 넉넉하고 푸근한 느낌을 전하는 마량항 일대가 좋을 것이다. 이 항구의 이름에는 제주의 말이 배에 실려 먼 바닷길을 건너 온 뒤 육지에 첫 발을 디뎠던 옛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7세기 즈음부터 제주를 오가는 주요 길목이자, 조공으로 바치기 위해 부려진 말들을 잠시 기르고 먹이던 곳이 바로 마량항 일대이고 강진이었다. 그러니까 마량에는 ‘제주와 한양 사이에서 말을 건네주는 다리’라는 뜻과 ‘말을 잘 먹이고 기른다’는 뜻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연을 기념하기 위해 마량항 한쪽에 제주에서 기증한 돌하르방이 세워져 있어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노을이 물드는 마량항.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생기 넘치는 아름다운 항구다. 

마량항은 남도의 여러 항구들 가운데서도 특히나 조용하면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번잡하지 않지만 생기가 넘치는 항구의 풍경도 좋고, 바다를 향했을 때 마주 보이는 까막섬과 고금도, 약산도가 다도해의 진경을 수묵화처럼 펼쳐 낸다. 그리고 토요일이면 유난한 생기와 즐거움이 가득한 항구가 된다. 토요일마다 항구 일대에 ‘마량놀토수산시장’이 열리는데, 갖은 수산물과 먹을거리가 펼쳐지고 방파제를 따라 조성된 3곳의 무대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예술의 전통과 현인의 흔적,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에 더해 생기 넘치는 삶의 한순간을 어울려 경험하는 사이 강진이 얼마나 살갑고 넉넉한지를 오롯이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의 느낌은 강진을 떠나온 뒤에도 꽤나 자주 떠오르며 남행을 재차 결심하게 할지 모른다.

남기환 여행작가

 

여행정보

강진 가는 길(서울 출발, 승용차 기준):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방면→목포에서 서영암IC 지나 남해고속도→강진IC에서 나와 강진군 진입

 

고려청자박물관 이용 정보

관람 시간: 화요일∼일요일 09:00∼18:00(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매주 월요일 휴관(청자빚기 체험장은 무휴)

관람 요금: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061-430-3755, www.celadon.go.kr

 

* 청자빚기 체험

운영 시간: 09:00∼18:00(연중무휴, 단 오후 17:00까지 현장 접수 가능)

체험 인원 및 예약: 1회 체험 70명(71명 이상은 조 편성후 순차 실시), 체험 3일 전까지 온라인과 전화 예약 가능, 현장 접수는 당일도 가능

접수 및 예약 방법: 현장 접수 및 온라인·전화예약

체험 비용: 프로그램에 따라 5000∼1만 5000원 선

문의: 061-430-3735

 

강진 관광 정보

강진군 문화관광, www.gangjin.go.kr/culture, 061-430-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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