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영업맨에서 시작해 사장의 자리까지 오른 남자가 있다. 일본의 경영인, 사토 아키라(56)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토는 1959년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1982년 ‘기린맥주’에 입사했다. 마케팅 부장, 규슈 총괄본부장 등을 거쳐 2014년 기린 베버리지 사장에 올랐고, 올 9월부터는 닛신식품홀딩스의 ‘프렌테’ 사장직을 맡을 예정이다.
▲ 사토 아키라 전 기린베버리지 사장. 출처=기린 |
그에게는 ‘전설의 마케터’라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그도 그럴 것이 상식을 뒤집는 콘셉트로 수많은 히트상품을 낳았기 때문이다. 콜라를 단순한 청량음료가 아닌 건강음료로 탈바꿈시킨 ‘메츠콜라’를 비롯해 캔커피 ‘파이어’, 기능성음료 ‘아미노서플리’, 무알코올 맥주 ‘기린프리’ 등의 인기상품들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말하자면 맥주·음료업계의 ‘미다스 손’인 셈이다.
원래 사토는 맥주회사 기린의 영업사원이었다.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강한 추진력으로 입사하자마자 전국 ‘톱글래스’ 영업사원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1987년 경쟁업체인 아사히맥주가 공전의 히트작 ‘슈퍼드라이’를 출시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발로 뛰며 개척한 거래처가 순식간에 돌아서는 걸 보고 ‘상품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이후 사토는 자진해서 상품개발팀으로 부서이동을 요청한다. 27세 때의 일이었다.
당시 겁 없고 혈기왕성하던 사토는 ‘강력한 히트상품을 개발하겠다’는 의욕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신상품을 세상에 선보이기는커녕 상사의 결재조차 통과하기 어려웠다. 초조함으로 인해 출근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3년 후 상품개발부서에서 쫓겨나 마케팅부서로 인사발령을 받는다. 의기소침해 있던 사토에게 직속 상사는 “독일의 맥주공장이라도 견학하고 오라”고 용기를 북돋아줬다. 이 시찰을 기점으로 사토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독일로 떠난 사토는 뮌헨에서 한스 보르핀거라는 유명한 맥주장인을 만난다. “어떻게 하면 맛있는 맥주를 만들 수 있죠?”라고 묻는 사토에게 한스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만드는 게 아니라네. 효모가 살아 있게끔 하는 거지. 어우러져서 빚어내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사토의 머릿속에 ‘이거다!’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전까지 사토는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장인의 이 말은 상품개발에 대한 큰 힌트가 됐다. 자신이 중심이 아니라 비로소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이후 사토는 ‘팀의 힘’으로 상품을 개발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 팀원들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사토 아키라의 모습. 출처=NHK 방송 캡처 |
그는 차례차례 히트작을 선보이며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한 매체가 비결을 묻자, 사토는 “중요한 건 애정을 가지고 시장을 관찰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나의 일 방식은 정해져 있다. 고객의 불만을 철저하게 듣고, 해결책을 어떻게 상품에 투영하느냐 고민하는 것”이라고 했다. 기슭이 넓을수록 산이 높다. 부지가 넓을수록 높은 빌딩이 들어설 수 있다. 마찬가지로 “폭넓은 흥미를 가지고 타인의 말을 새겨들으면, 세상이 원하는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예를 들어, 사토가 선보인 히트상품 중 ‘솔티 라이치’라는 음료가 있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땀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고, 문득 ‘염분이 들어간 음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티 라이치 상품기획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사토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애정을 가지고, 관심의 저변을 넓혔더니 히트상품이 탄생했다. 이를테면 ‘세상’이라는 효모가 더 발효될 수 있게끔 어우러져서 노력했을 뿐이다.
그리고 2014년. 다수의 히트상품을 낳은 사토는 기린 베버리지 사장에 취임한다. 영업맨에서 상품기획자로, 마케팅 부장을 거쳐 마침내 정상의 자리까지 꿰찼다.
강윤화 외신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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