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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노포열전] ‘피양냉면의 명가’ 우래옥

2016.07.21(Thu) 12:28:45

최근 냉면을 두고 두 가지 흥미로운 조어가 생겼다. 면부심, 면스플레인.

면부심은 면(麵)+자부심이란 뜻. 면스플레인은 면+explain, 즉 설명하다는 조어다. 다른 면도 많지만 오직 냉면에만 해당된다. 면부심은 냉면 좀 먹는, 그래서 “행주 빤 것 같은 국물 맛이 천상의 맛으로 바뀌는” 경험을 가진 이를 일컫는다. 장안의 유명 냉면집을 속속들이 꿰고 있으며, 어떤 냉면집의 ‘사이드 메뉴’가 좋은지, 어떤 시간대에 가야 맛있는지, 주인의 계보도는 어떤지 다 알고 있다(또는 안다고 믿는다).

면스플레인이란 냉면 먹는 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려드는 이를 말한다. 냉면에 대해 완고하고도 완벽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어서, 외전이나 이방을 용서하지 못하고 ‘지적질’에 나서는 걸 뜻한다. 아이들이 쓰는 말로 ‘설명충’이라는 게 있는데, 유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냉면을 올리지 않으면 미식가연하지 못하는 풍조다. 냉면광시대의 도래다. 냉면은 일제강점기에 이미 서울에서 인기를 끌었고, 지금까지 한국식 미식의 한 정점을 뜻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이미지가 더 강력해졌다. 적어도 70, 80년대에 문을 연 전통의 명문가 외에 신흥 명문가들이 이토록 많이 등장한 것도, 이런 내용이 언론에 크게 기사화된 것도 특이하다. 봉피양, 진미식당, 능라도, 진미평양냉면, 정인면옥…. 불과 몇 해 사이에 등장한 신흥 집들이다. 날씨가 더워지자, 전통의 냉면집들은 물론 새로운 집들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 맛 없는 맛, 우래옥의 ‘피양냉면’

그렇지만 전통의 명가는 명가다. 우래옥에 가면 그 진가를 느끼게 된다. 오전 11시 반, 이미 줄이 길다. 그 줄 선두에 엄격한 표정에 완벽한 양복을 입은 노인 한 분이 서 있다. 우래옥의 주인 같다. 알고 보니 직원이다. 김지억 전무. 올해 여든넷. 그는 54년째 이 냉면집(정확히 말하면 이북식 식당)의 홀을 지켜왔다. 필자가 <백년식당>이라는 책에 이분에 대한 긴 인터뷰를 싣고 나서 알아보는 이가 많아졌다. 사진촬영을 요청받는 경우도 늘었다. 근로소득세를 가장 오래 내고 있는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그의 냉면에 대한 첫 설명은 이랬다.

“냉면은 아무 맛이 없어. 그게 피양냉면이야.”

아무 맛이 없는 맛의 맛. 이 위대한 한 그릇의 역설. 우리는 지금도 ‘아마 맛이 없어서 오히려 맛있는’ 냉면을 진짜 냉면이라고 믿는다. 고기를 우린 맑은 국물, 슬쩍 향이 지나가는지 어떤지 모를 메밀면, 약간의 고명. 단순해서 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이상한 요리. 외국인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3대 요리에 들어간다는 한국인의 전설.

우래옥은 1946년에 문을 열어 이 자리를 지켜왔다. 서울시 중구 주교동 우래옥 자리는 거의 변함이 없다. 지금 주차장으로 쓰는 땅에 본디 식당이 있었다. 70년대에 현재의 자리로 개축하여 왔다.

“한때 하루에 2300그릇 넘게 판 적이 있어. 말이 안 되지. 그때는 지금처럼 면 뽑는 기계가 자동도 아니었거든. 세 명이 수동으로 하루 종일 면을 뽑았어요. 놀라운 옛날이지.”

김 전무의 눈이 가늘어진다. 매일 엄청난 양의 메밀면을 뽑고 육수를 말았다. ‘창경원 벚꽃놀이’가 있던 시절이다. 서울의 전차 노선 중에 돈암동에서 출발하여 삼선교-창경원-종로4가를 거쳐 을지로 4가가 종점인 것이 있었다. 바로 그 종점이 이 냉면집 앞이다.

“벚꽃구경 마친 인파가 전차를 타고 끊임없이 내렸어. 다 우리집 냉면을 먹으러 오는 게야. 그때 외식거리, 놀거리가 어딨어. 창경원 벚꽃, 피양냉면, 이 두 가지면 최고였지.”

한때 냉면에 미쳐 살았다. 중국여행 자유화 이전, 안기부의 적성국가방문자 사전교육까지 받고 북중 접경지역의 북한투자식당에 간 적도 있다. 날카로운 ‘복무원’의 접대를 받으며 북한식 냉면을 먹었다. 일본 북부의 한적한 도시 모리오카에 있는 평양냉면집들도 가봤다. 재일동포의 한 역사로 만들어진 냉면집들이 눈물겹게 일본의 시골 도시에서 맥을 잇고 있던 현장이다.

냉면은 사람을 은근하게 이끈다. 그러나 결코 놓아주는 법이 없다. 한번 빠지면 미궁이다. 그리하여 사계절 냉면을 ‘탐구’하는 수행의 과정에 빠뜨린다. 냉면교 교주들이 그래서 서울에는 꽤 많다. 메밀을 갈아 면을 내고, 육수를 말아내는 이 단순함의 극치가 불러오는 탐미적 욕망이랄까.

지금도 우래옥은 냉면을 만든다. 여름에는 면이 퍼지므로 전분의 함량을 조금 높인다. 메밀 70퍼센트. 오직 한우 쇠고기로 만드는 명징한 국물. 더러 순면을 시킬 수도 있다. 메밀 100퍼센트. 익반죽해서 내야 하고, 따로 반죽을 해야 하므로 업소에선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주문이다. 그래도 시켜보시라. 한 다발의 냉면을 수북이 집어 입에 넣는다. 거칠게 씹는다. 목으로 넘어가는 물리적 통각이 주는 쾌감. 그게 냉면의 본령이다.

   
 

박찬일 셰프

서울에서 났다. 1999년부터 요리사로 살면서 글도 쓰고 있다. 경향에 <박찬일셰프의 맛있는 미학>, 한겨레에 <박찬일의 국수주의자>(문자 그대로 국수에 대한 연속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단행본으로 한국의 오래된 식당을 최초로 심층 인터뷰하고 취재한 <백년식당>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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