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 중 하나는 글쓰기 강사인데,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보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이상하게) 쓸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더 많이 받는다. 이 역시 스트레스지만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138쪽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의 제목에서 ‘읽기’를 ‘쓰기’로 바꿔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제목 앞에 배치된 ‘정희진’이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생소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정희진’이라는 3음절 대신 ‘볼라뇨’나 ‘하루키’ 또는 ‘타부키’가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거론한 세 명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이고, 한글로 쓸 때 풀네임은 사실 모두 7음절이다.) 글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정희진처럼 읽기』에는 그녀가 읽은 80여 권의 책과 그 서평이 등장하지만, 책을 덮었을 때 기억에 남던 것은 책에 관한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의 목소리가 남아 내 귓가를 맴돌았다.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 봐도 다 같은 톤이었다. 그것은 당당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6월 한 달 동안 틈나는 대로 이 책을 꺼내 읽었다. 지하철에서도 읽었고, 화장실에서도 읽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금요일에는 맥주 한 캔과 함께 읽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져 갔다.
어느새 ‘정희진’이라는 이름은 내가 모르는 이름에서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인터넷 검색 창에 입력해보는 이름이 되었다. 내 글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그녀의 글에서는 확실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인간은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법이다. ‘정희진’처럼, 그러니까 자신이 쓴 글에서 목소리가 들리게 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발성의 기본은 호흡이다. 목소리를 크게 내려면 먼저 깊게 들이마셔야 한다. 그다음 내 몸 안쪽 깊숙한 곳에서부터 소리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얕은 호흡, 즉 목으로만 소리를 내려 한다면, 소리도 아름답지 못할뿐더러 성대를 다치게 될 확률만 높아진다. 글쓰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풋에 대한 아웃풋의 이야기이다.
주어진 글을 내 몸속 깊숙한 곳으로 들이마셨다가 내뱉어야 한다. 독자인 내가 무조건 책 속으로 들어갔다 오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내 안으로 들어갔다 나올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얕고 피상적인 독서, 책의 주장을 따라가는 독서만으로는 울림이 있는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나온 글의 대부분은 책의 목소리를 어설프게 흉내 내기 바쁠 뿐이다.
우리의 인생은 글쓰기와 말하기의 연속이다. 글에는 한 사람의 언어와 습관, 사회에 대한 인식이 모두 녹아 있다. 쓰기를 통해 고유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고유한 자세로 무언가를 읽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즉, 한 사람이 주체로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희진은 이 책을 통해 증명했다. 자신은 정희진처럼 읽고, 정희진처럼 쓴다는 것을.
이제 그다음은 이 책을 읽은 독자의 몫이다. 우리는 모두 정희진처럼 쓸 수 있다. 시작은 간단하다. ‘정희진’이라는 3음절 대신 각자의 이름을 넣으면 된다. 나는 나처럼 당신은 당신처럼. 그저 마음 솟는 대로 지껄일 수 있도록.
블로거 녹색양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