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꿈꿔온 순간이 여기 지금 내게 시작되고 있어. 그렇게 너를 사랑했던 내 마음을 넌 받아주었어."
해마다 여름이면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듀스(DEUX)의 <여름 안에서>. 이현도와 김성재로 구성된 듀스는 국내에서 당시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힙합 등 흑인 음악을 시도하고, 생고무 같이 유연한 흑인들의 춤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시대를 앞서간 듀오였다. 그들은 불과 2년 정도 짧고 굵게 활동했지만 지금까지도 이른바 '듀시스트(DEUXIST)'로 불리는 수많은 마니아를 형성한 한국 힙합의 전설이다.
듀스 멤버 고 김성재(왼쪽)와 이현도. 출처=듀시스트
“일본에서 전학 온 학생이 있다고 들었다. 패션 감각이 남다른 친구의 모습이 들어왔다. 바지 뒷주머니에 손수건을 꽂고 있었는데 바로 (김)성재였고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됐다.”이현도는 김성재와의 고교시절 첫 만남에 대해 방송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모두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현도와 김성재는 상문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고교시절부터 특출한 댄스 실력으로 서울 강남 등 유명 나이트클럽을 휩쓸고 다녔고, 강압적이던 학교의 입시 분위기를 박차고 전학을 택할 만큼 각별한 우정을 쌓아왔다.
그들이 연예계에 발을 디딘 것은 ‘현진영과 와와’ 2기 백업 댄서로서였다. 하지만 현진영의 대마초 사건으로 좌절한 두 사람은 결국 그들만의 그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팀 명은 프랑스어로 둘을 뜻하는 ‘DEUX’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듀스’로 정했다. 곱상한 얼굴의 이현도가 대부분의 노래를 작사·작곡·편곡하며 보컬과 랩을 맡았고, 김성재 역시 보컬과 랩에 댄스 및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로 패션 등 비주얼을 담당했다.
듀스는 1993년 4월 1일에 데뷔앨범인 를 통해 <나를 돌아봐>를 타이틀곡으로 발표하지만 초기 반응은 냉담했다. 이러던 중 SBS의 PD가 듀스의 곡을 높게 사면서 SBS 프로그램들에 출연하면서 선풍을 일으켰다. 이현도와 김성재가 추는 텀블링, 다리 찢기, 브레이크 댄스 등 흑인 춤은 단번에 대중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들의 비트박스와 속사포 같은 랩은 앞서 나온 서태지와 아이들 또는 현진영이 선보였던 랩과는 차이가 확연했다.
듀스의 흑인 음악은 2집 <듀시즘(Deuxism)>에서 더욱 진화한다. 타이틀곡 <우리는>은 리듬 앤드 블루스와 힙합이 결합된 곡으로 강한 리듬과 춤추기에 좋은 템포의 뉴 잭 스윙의 전형이었다. 앨범의 또 다른 곡 <약한 남자>는 미국 남부 힙합 장르인 마이애미 힙합 곡으로 날카로운 전자음, 강한 리듬으로 반복하는 중독성과 자극성 있는 반주가 특징적이었다. 특히 이 곡은 멜로디 부분 없이 시종일관 100% 랩만으로 구성된 한국 최초의 곡이었는데 당시로선 파격 그 자체였다. 이 앨범에는 다른 흑인 음악장르인 슬로 잼과 아카펠라 곡도 있어 당대 흑인 음악 트렌드의 결정판으로 꼽힌다.
1994년 리믹스 앨범인 에 실린 곡이 <여름 안에서>와 장혜진의 피처링이 돋보이는 <떠나버려>다. <여름 안에서>는 2003년 여고생 가수 서연이 리메이크하는 등 여름이면 가장 사랑받는 가요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세 번째 정규 앨범 <포스 듀스(Force Deux)>에선 이들은 음악적 깊이와 넓이를 확보했다. 펑크 스타일의 곡 <굴레를 벗어나>, <의식혼란>, 재즈 힙합인 <반추>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 행해졌다. 이 앨범은 한국 100대 명반에 선정됐다. 하지만 이들은 3집 활동 중에 기획사와 갈등을 겪다 활동 2년여 만에 고별 콘서트를 끝으로 해체하게 된다. 동양인의 신체적 특성상 소화해내기 힘든 흑인 춤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몸에 무리가 왔던 것도 해체 이유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다.
김성재의 의문사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는 대목이다. 김성재는 팀의 해체 이후 솔로 활동 준비를 마치고 2005년 11월 19일 SBS를 통해 <말하자면>으로 컴백했다. 그러나 그는 불과 하루 뒤인 11월 20일 한 호텔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여자친구는 1심에서는 무기징역형을 받았으나, 2심에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로 풀려났다.
이현도는 친구를 잃은 아픔을 딛고 솔로 활동을 하다가 동료나 후배들의 음악을 만들어주는 작곡가겸 프로듀서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앨범과 곡으로는 룰라의 <3!4!>, 지누션 <말해줘>, 유승준의 <열정> 등이 있다.
듀스의 음악스타일은 독창성 측면에선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듀스는 뉴 잭스윙, 힙합, 즈, 펑크, R&B와 같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발표하며, 흑인음악을 한국적으로 소화해 발전시킨 위대한 산맥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한 뮤지션임에는 이의를 달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 음악계에서 힙합이라는 장르는 듀스 이후 업타운, 드렁큰타이거, 타샤니, 다이나믹 듀오, 리쌍 등으로 이어지며 만개하고 있다.
또 듀스는 베이비붐 세대 바로 이후 세대로 무관심·무정형·기존 질서 부정 등을 특징으로 하는 X세대(1965년∼1976년 출생)의 총아로 기억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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