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전의 축포는 박태민이 올렸으나, 축포를 올린 박태민을 꺾은 게 박성준이었다. KT-KTF 프리미어리그 2004 결승전에서 박태민을 3:2로 꺾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3위는 이윤열이었다. 그렇다. 3신이 다해먹은 리그였다. 하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MBC게임 스타리그에 비해 위상이 낮아서 그런지 우승을 딱히 쳐주지 않는 분위기다.
스타크래프트2까지 박성준의 커리어는 이어졌다. |
IOPS배 스타리그, 당신은 골프왕배 MSL에서 우승하지 못했지만 박성준은 멈추지 않았다. ‘머신’ 이윤열은 2005 EVER 스타리그의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운신’ 박태민은 4강에서 이병민에게 탈락했다. 같은 시간 박성준은 8강에서 변형태를 꺾었다. 4강에선 ‘괴물’ 최연성을 꺾은 ‘퍼펙트테란’ 서지훈이 기다리고 있었다. 1세트를 내준 박성준은 이윤열과 박태민에게 치이던 울분을 서지훈에게 풀며 2, 3, 4세트를 가져갔다. 8강, 4강에서 테란을 만난 박성준은 결승에서도 테란을 만났다. 상대는 이병민.
상대는 이윤열과 같은 팀이던 이병민. |
결승은 치열했다. 8강에서 2:0, 4강에서 3:1로 테란을 꺾었지만 결승상대 이병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서로 1세트씩 주고받았다. 그중 백미는 5경기였다. ‘네오포르테’에서 진행된 5경기에서 이병민은 빠른 조이기를 선택했다. 넓은 맵에서 박성준과의 물량전보다는 가난한 한방을 택했다. 앞마당도 가져가지 않고 테크트리를 올려 탱크 조이기를 시도했다. 박성준 역시 이병민의 러쉬에 물러섬이 없었다. 몰래멀티로 뒤를 준비하기보다는 뮤탈과 저글링으로 뚫기는 선택했다. 호시탐탐 탱크, 마린과 메딕을 끊었다. 성큰 콜로니로 시간을 끌고 참고 참아 뮤탈과 저글링으로 한점을 돌파했다. 나로호가 대기권을 돌파하기 위해서 11년이 걸렸지만 박성준의 돌파는 딱 5초면 됐다. 치열한 결승 끝에 ‘펠레스코어’ 3:2로 박성준이 우승했다.
탱크가 터지고, 결승도 터졌다. |
삼신전의 마무리는 싱거웠다. ‘운영의 마술사’, ‘운신’이라 불리던 박태민은 박성준이 우승할 때 4위를 기록했고, 이후 8강과 16강을 전전했다. ‘머신’ 이윤열 역시 IOPS배 스타리그 우승을 끝으로 거진 1년간 4강에 들지 못했다. ‘투신’ 박성준은 저그 최초로 2회 우승을 이루었으나 프로리그와 팀리그에선 우승 문턱에 가지도 못했다. 서로 경쟁하듯 결승전에서 만난 그들은 PC방 예선에서 재회했다.
다시 우승하는 데에 3년이 걸린다. |
2004∼2005년에 있던 삼신전은 올드팬들에겐 ‘본좌가 없던 시기였으나 치열함만은 본좌였던 시기’였으며 저그 유저들에겐 저그의 리즈 시절과 같다. 초기 스타리그는 테란이 지배했으며 뒤는 프로토스가 지배했다. 저그 유저의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군단의 자존심은 ‘양박 저그’가 세워줬다.
동시에 ‘완성형 저그’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차가운 이성을 바탕으로 한 숨막히는 운영의 박태민과 동물적 본능을 무기로 한 감각적인 공격타이밍의 박성준이 하나로 합쳐지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있던 시기다. 홍진호, 조용호, 박경락이 이루지 못한 ‘테란을 꺾고 우승하는 저그’를 넘어 ‘저그 본좌’를 꿈꾸었다. 실제로 박태민과 박성준은 레어 테크를 기반으로 하는 저그의 완성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하이브 운영에 있어선 둘 다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완성형 저그라기보다는 완성형 홍진호라는 평이 많았다. 박태민은 초반 전략에 약했으며, 박성준은 공격타이밍을 놓치면 힘이 빠졌다. 다시 말하면 ‘상대가 뭘하든 이긴다’라는 보장을 하지 못했다. 운영이 수동적인 저그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니라.
저그가 합쳐지면 어떨까? |
사람들은 상상했다. 홍진호가 남긴 저그의 기틀에 조용호의 ‘하이브운영’을 얹고, 박성준의 공격타이밍과 박태민의 운영을 합치면 어떨까?
상상에 한 게이머가 답했다. 지금은 이름도 말할 수 없는 볼드모트와 같은 존재, 마재윤이.
구현모 필리즘 기획자